[금융의 새 질서]④ 뷔터 컬럼비아대 겸임교수 “주요국 기준금리 6%대까지 오를 것… 금융위기 가능성은 낮아”
“신흥국 위기·대출 미상환 문제 터지겠지만 2008년 재연되지는 않을 것”
“선진국 기준금리는 6%대까지 진입할 것입니다. 경제는 지금보다 더 침체될 것입니다. 대외 수요가 감소하면서 주요 수출국 경기도 악화될 것입니다. 하지만 대규모 위기가 발생하는 등 극적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플레이션이 상당 부분 일시적인 요인 때문에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신흥국에서 국가 채무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윌렘 뷔터 미국 컬럼비아대 겸임교수는 지난달 영국 런던 홀본의 한 호텔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한동안 경기가 더 나빠지면서 신흥국 위기나 부동산 부문의 채무불이행과 같은 사건이 벌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지만 급격한 신용 경색이나 금융 시장 붕괴 등의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거시 경제에서 공급 충격이 한꺼번에 겹쳐 벌어진 사건이기 때문에 시스템 위기까지는 번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이어 경제 여건이 쉽게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고령화 문제나 미·중 무역 장기화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구조적인 문제들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일종의 L자형 내지 U자형의 장기 침체 국면을 예상한 셈이다.
뷔터 교수는 학계와 금융계 양쪽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는 거시경제학자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영국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프린스턴대,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런던정치경제대(LSE)에서 교수를 지냈다. 2010~2019년 시티그룹의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일했다. 영국은행의 통화정책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뷔터 교수는 지금의 인플레이션에 대해 “여러 공급 충격이 한꺼번에 겹쳤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에 대응한 각국 정부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중 무역갈등, 보호무역주의 대두로 인한 탈세계화(deglobalization) 같은 요인들이 연쇄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얘기다.
뷔터 교수는 이러한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양적완화와 같은 과거 대규모 유동성 공급 정책을 되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선진국의 경우 기준금리가 5%대까지 오를 것이란 시나리오가 제시되는 데, 6%대로 상승할 가능성도 크다”며 “일본도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를 상회하는 상황이라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어 “이로 인해 기축통화국이 아닌 선진국과 신흥국도 강도 높은 긴축적 통화정책을 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뷔터 교수는 몇몇 신흥국에서 정부 부채발(發)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선진국 주택 대출 시장에서 대규모 디폴트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럼에도 대규모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선진국 금융 산업의 대차대조표가 2007~2008년보다 양호하다는 게 근거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여전히 중앙은행은 ‘헬리콥터 머니’로 불리는 대규모 양적 완화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뷔터 겸임교수와의 일문일답.
아르헨티나 관련 일로 영국을 방문했다고 들었다. 지금의 금융불안정이 신흥국에서 위기를 야기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미국을 비롯한 주요 기축통화국에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른 선진국과 신흥국도 발맞춰서 높은 강도의 긴축적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
금리 인상과 유동성 축소 속에서 신흥국이 재정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스리랑카가 제한적으로 디폴트를 선언한 것처럼 말이다. 초저금리 국면에서 늘어난 국가 채무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을 비롯해 캐나다, 뉴질랜드에서 주택 가격이 급등하고 관련 대출도 대폭 늘었다. 자산 가격 급락은 어느 정도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하나.
“부동산 쪽에서 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이 문제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택 담보 대출이 자국 통화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대외채무를 갚지 못해 발생하는 국가 수준의 문제로 번질 가능성은 작다.”
대규모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을 낮게 보는 것인가.
“경제는 지금보다 침체 국면에 접어들 것이다. 긴축적 통화 정책 기조가 계속될 것이다. 수요가 줄면서 주요 수출국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성장에 감속이 있다고 해도 극적인 사건이 벌어지진 않을 것이다. 선진국 은행들의 대차대조표 상황은 2007~2008년보다 훨씬 양호하다. 기준금리 인상을 야기한 인플레이션은 상당 부분 일시적인 요인 때문에 발생했다. 단기라면 모르겠지만 중장기 관점에서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율을 각자의 목표치 내에서 통제하지 못할 것으로 보는 건 타당하지 않다.
경기침체가 심할 경우 정부가 다시 양적완화 등 돈 풀기에 나설 수 있는 여력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대규모 위기가 발생할 것이라며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은 계속되고 있다.
“2020년 3월부터 (코로나19에 대응해) 대규모 재정 투입과 유동성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책이 있었다. 이 때문에 정부와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는 엄청나게 확장됐다. 그리고 공급 측면에서 여러 충격이 겹쳐졌다. 큰 폭의 금리 인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영국은행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3%대 기준금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했는데, 비현실적이다. 기준금리 고점을 5.2%로 보는 시나리오도 있는데, 그보다는 높은 수준까지 올릴 것으로 본다. 6% 기준금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4% 이상까지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본다. 그들은 미국, 영국의 뒤를 쫓아가고 있다. 일본도 긴축적 통화정책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의 인플레이션 수준이 이제 목표치를 웃돌고 있기 때문이다. 기축통화국 이외의 선진국이나 신흥국은 가파른 금리 인상 이외에 선택지가 없다.”
1~2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스타일의 디플레이션과 저성장에 대한 우려가 높았다. 코로나19 종식국면에 인플레이션과 불황 국면이 조성된 이유는 무엇인가.
“총공급에서 여러 충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사건들을 먼저 거론할 수 있다.
중국, 한국을 비롯해 선진국에서 고령화 등 인구문제나 탈세계화, 미국 등 서방세계와 중국·러시아 등이 서로 다른 경제권으로 갈라서기 시작한 것도 구조적인 요인이다.
이러한 역공급충격(adverse supply shock)을 지나칠 정도로 일시적인 것으로 본 것이 경기를 잘못 판단하게 했다. 그리고 공급 충격은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했다. 이들 충격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중앙은행들이 상황을 통제할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나.
“여전히 필요하다면 금리를 올릴 수 있고, 대차대조표를 축소할 수 있다. 관건은 그들이 그렇게 할 의지가 있고 여건이 조성돼 있느냐는 것이다.
가령 유로존에서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의 경우 금리가 오르면 국채 원리금 부담이 늘고 차환 발행이 어려워진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상승이 다른 나라보다 굼뜬 양상을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재정적으로 취약한 나라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에도 금리를 큰 폭으로 끌어올릴 경우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고, 자산가치 하락으로 연금을 비롯해 투자 상품에 큰 타격이 가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영국은 국채 가격 폭락으로 부채연계투자(Liability-Driven Investment) 전략을 편 연기금이 큰 손실을 보자 양적완화 축소를 몇 주 동안 연기하기도 했다.”
가상자산 등 초저금리하에서 호황이었던 자산 시장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가상자산은 대규모 조정을 더 받겠지만, 결국 다시 돌아올 것이다. 암호화폐나 탈중앙화 금융(Defi)과 별개로 분산원장 기술은 금융 IT 인프라의 일부분이 될 것으로 본다.
하지만 다른 가상화폐나 알고리즘에 의해서 가치가 유지되거나, 과도한 레버리지를 안은 채 거래하는 식의 가상자산은 향후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등은 적절하게 규제받을 필요가 있다.”
현재 세계 경제가 당면한 가장 큰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가.
“미국과 중국 간의 대립이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도 중대한 리스크 요인이다. 글로벌 경제가 미국 블록과 중국 블록을 쪼개지고 있는데, 이는 그동안 구축된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를 의미한다.
정치와 안보 요인이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환경요인까지 더해져서 자국중심주의적인 경향을 만든다. 미국에서 보호무역주의 정책이 도입, 강화되는 과정은 이를 잘 보여준다.”
[런던=조귀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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