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 woman] “집에서 AI가 골라준 영양제 먹는 시대 왔어요!”
모닝커피 시장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민 스타트업이 있다. 1:1 맞춤 영양 관리 서비스를 만드는 ‘알고케어’다. “더 넓은 세상에 임팩트를 주기 위해 변호사를 그만두고 창업에 뛰어들었다”는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의 꿈과 야망.
‘CEO/FOUNDER/변호사’. 정지원 대표에게서 건네받은 명함은 그의 커리어를 세 단어로 정리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그는 잘나가는 로펌의 촉망받는 변호사였다. 서울대 법학과와 같은 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후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서 근무했다. 2018년 회사를 나온 그는 이듬해 알고케어를 설립했다. 그가 설립한 회사는 아직 시중에 제품을 선보이지도 않았을 만큼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널리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제품 박람회인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2021년 1월 '헬스 & 웰니스’ 부문, 2022년 '가정용 전자제품’ 부문, 2022년 '가정용 전자제품’ 부문 3회 연속 혁신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도 국내외 여러 기관에서 받은 수상 실적은 화려하다.
2022년 11월 15일 기준 세계 인구가 80억 명을 넘어섰다. 갓난아이부터 100세를 넘긴 노인까지, 자신의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터. 헬스케어 분야는 80억 명의 잠재 고객을 둔 거대한 시장인 동시에 거인들의 전쟁터이기도 하다. 이 치열한 시장에서 정지원 대표가 본 가능성은 무엇일까. 그를 직접 만나 물었다.
변호사 시절 '규제 대응’하며 찾은 적성
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해결사’ 역할을 자처했어요. 갈등을 중재하고, 남들 싸움에 참견하는 일이 재미있더라고요. 반장도 여러 번 했죠. 어릴 때부터 남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고 영향력을 끼치는 역할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법조인이 되기로 했죠.
어렵게 법조인이 됐는데 다시 창업을 결정했네요.
사실 영향력 끼치는 일이 좋긴 했지만 창업하기 전까지 사람에게 적성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몰랐어요. '좋아하는 일이 어딨어, 세상일은 다 힘든 거고 그냥 열심히 사는 거지’라고 생각했죠. 적성을 찾아 과를 선택한 게 아니다 보니, 학부 시절에는 많이 놀았어요(웃음). 덕분에 학교를 8년 다녔죠. 이후에는 열심히 해서 변호사가 됐고 좋은 로펌에 들어갔어요. 변호사를 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어떤 계기로 알게 된 건가요.
제가 로펌에서 건설 송무, 규제 대응 분야를 맡았는데요. 규제 대응 분야는 대개 기업이 신사업을 시작할 때 비즈니스모델이 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있는지 검토하는 일을 해요. 제가 맡은 클라이언트 중 '우버(Uber)’가 있었는데요. 우버가 한국에 진출하려던 시기에 컨설팅을 맡았죠. 당시 저희는 우버에게 한국은 택시 조합의 힘이 강력하니, 상생하는 방식으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어요.
우버가 조언을 따르지 않았군요.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도 다 밀어붙여서 성공했다’는 마인드가 강했어요. 결국 세계 최초로 검찰이 법인 대표를 형사 기소하는 지경에 이르렀죠. 그때 우버가 다시 왔어요. 제 미션은 우버와 택시 조합을 화해시키는 일이었는데, 갈등을 중재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런데 변호사는 아무래도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범위가 클라이언트에 한정돼 있잖아요.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분야를 생각해보니 정치와 창업이 있더라고요. 완고한 제 성격을 알기에 정치가 아닌 창업을 결심했죠.
한국 최대 로펌의 변호사라는 직업은 안정적인데, 망설여지지는 않았나요.
변호사는 선배님들이 닦아놓은 길을, 비록 험난하고 고될지라도 열심히 따라가기만 하면 됐어요. 창업은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망망대해에 선 느낌이죠. 그래도 세상에 임팩트를 주는 일을 하고 싶었기에 주저하지 않았어요. 사업이 제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됐고 지금 굉장히 만족해요.
많은 분이 궁금해할 것 같은데요. 직장을 다니면서 창업을 준비하는 게 가능한가요.
일이 워낙 많다 보니 제가 다녔던 직장에서는 어려웠어요(웃음). 그래서 퇴사하고 본격적으로 사업 준비를 했죠.
하루에 두 번 출근하다 찾은 육아 타협점
"혹시 이전에 만난 분들은 아이를 어떻게 키우시던가요?"
그는 인터뷰 도중 기자가 이전에 만난 여성 리더들의 육아 방법에 대해 여러 차례 물었다. 사람들이 동경하는 성취를 해왔고, 글로벌 무대에도 거침없이 도전장을 내미는 그에게도 아이를 키우는 일은 여전히 큰 고민거리인 듯했다.
회사 경영이 변호사에 비해 결코 가정에 쏟을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일하면서 육아를 프로페셔널하게 해내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저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잠은 꼭 내가 재우자’ 하고 결심했었어요. 그래서 회사 5분 거리에 집을 구하고, 오후 6시에 퇴근해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9시에 다시 출근해 새벽 3시까지 있곤 했죠.
출근을 하루에 두 번 한 셈이네요.
그렇죠. 그런데 로펌은 업무 특성상 오후 6시 이후에도 회사는 활발하게 돌아가요. 집에 가도 회사에서 지속적으로 연락이 오더라고요. 하루에 두 번 출근하는 생활을 18개월 했는데, 막상 해보니 몸도 지치고 가정에도 직장에도 충실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타협점을 찾았죠.
어떻게 했나요.
무리하지 않고 하루에 30분은 무조건 아이와 있고, 주말 반나절은 꼭 아이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목표를 바꿨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엄마가 계속 미안해하면 아이도 스스로 자기 처지를 불쌍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요. 포기할 건 포기하고, 같이 있을 때 충실하자고 결심했죠. 물론 모든 엄마에게 저같이 하라고 얘기할 수는 없어요. 다 각자 자신만의 타협점을 찾아야겠죠.
소문만 무성한 헬스케어 산업에서 가능성 찾아
알고케어는 영양 관리 기기인 뉴트리션 엔진에 사용되는 영양제 보틀,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듭니다. 작동 방식은, 사용자의 동의하에 건강검진 기록, 약물 복용 이력 등 건강 데이터와 자체 문진표를 합쳐 개인 맞춤 영양제 조합 및 용량을 정해요. 그리고 매일 피로도, 음주 등 사용자가 입력한 당일 컨디션에 맞춰 영양제를 공급하죠. 총 8종의 영양제 보틀에 30여 가지 영양 성분이 들어 있어요. 영양제는 모두 GMP 인증 시설에서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제조되고 식약처 검증을 거쳐요
전 세계 가전제품을 선보이는 박람회에서 상을 받았는데, 헬스케어 산업이 발달한 미국 같은 나라에 비슷한 사업 모델을 가진 기업은 없었는지 궁금한데요.
부분적으로 비슷한 가치를 좇는 사업 모델은 있지만, 저희처럼 사물인터넷(IoT) 영양 관리 가전과 실시간 1:1 맞춤 서비스를 조합한 기업은 없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혹시 사용하시는 헬스케어 전자제품이 있으신가요(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음… 저는 없습니다. 그나마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제품은 스마트워치 정도가 있겠네요.
헬스케어 산업이 유망하다고는 하는데, 막상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매일 사용하는 헬스케어 제품은 거의 없더라고요. 헬스케어 산업이 흔히 생각하는 바와 달리 상당히 변화가 더딘 편이에요. 30년 전 1등 하던 영양제는 여전히 1등이고요. 달라진 점은 그 영양제 판매 채널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온 정도죠. 그래서 이 분야에서 가능성을 봤어요.
국내에는 스타트업 규제가 많은 편인데, 사업에 걸림돌이 될 만한 부분은 없었나요.
알고케어와 관련된 규제는 개인정보 관련 규제, 영양제 관련 규제, 사업 모델 관련 규제가 있어요. 직업이 변호사다 보니 직접 검토했어요. 개인적으로 개인정보와 영양제 규제는 지키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대체로 규제는 사고가 터지고 후에 비슷한 일을 방지하고자 만들어진 경우가 많거든요. 비즈니스모델도 창업 이전에 식약처와 상담을 통해 수정할 부분을 반영했어요. 개인정보 보안은 각별히 신경 쓰고 있고요. 지금 저희가 우려하는 법적 이슈나 규제는 없는 상황입니다.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이행 과정이 너무 힘들 것 같아 선택지를 포기하는 경우가 더러 있잖아요. 저는 의사결정을 내릴 때 과정 때문에 합리적으로 더 효용이 큰 선택지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사업 아이디어가 생각나자마자 해외시장을 염두에 뒀고, 과정이 험난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사업 성공을 위해선 필요하다고 여겼어요. CES에 나간 것도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저희 제품을 많은 사람에게 선보이고 검증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였어요.
해외시장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는 것 같네요.
두려움이 많습니다. 저는 유학 경험도 없는 완전 한국 사람이거든요(웃음). 한국의 스타트업 중에는 해외에서 성공한 사업 모델을 벤치마킹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래서 한국에서 성공을 거둬도 해외 진출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반면 알고케어는 해외에 비슷한 사업자가 없어서 해외 진출이 더 용이해요. 또 대체로 소프트웨어보다는 하드웨어가 해외시장에 진출했을 때 성공한 경우가 많아요. 캡슐 커피 머신을 생각해보시면 될 것 같네요.
CES에서 만난 관계자들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한데요.
해외 반응도 뜨겁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국내시장보다 적은 것 같아요. 일단 도입해보고 싶다는 제의를 많이 받았어요. 대표적으로 미국에서 가장 큰 드러그스토어인 'CVS’가 저희 서비스를 오프라인 매장에서 사용하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일단은 국내시장이 우선이라 보류한 상태예요.
소비자들은 언제쯤 알고케어 제품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알고케어 앳 워크’는 지금 신청하면 내년 3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알고케어 앳 홈’은 내년 9월 중으로 출시 예정입니다.
사업 확장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해나갈 예정인가요.
당장은 영양제 종류를 더 늘릴 예정이에요. 또 알고케어가 가지고 있는 이점은 데이터 수집이 용이하다는 것인데요. 운동은 매일 하는 사람이 적은데, 영양제는 매일 챙겨 먹거든요. 날마다 데이터가 축적되는 거죠. 또 현대인에게 심각한 문제는 수면과 정신 건강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이 분야에서도 많은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최근 금리인상으로 스타트업 업계가 어려운데, 투자 유치에 문제는 없나요.
개인적으로는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전 시장이 말도 안 되게 좋았다고 생각하고, 외부 환경이 변하더라도 저희가 좋은 상품을 만들면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희가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외부적인 요인보다는 우리 제품이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를 줄 수 있을지 여부예요.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사람들이 매일 아침 커피 대신 뉴트리션 엔진에서 '영양 조합 한 컵’을 받아 먹는 풍경이 일상이 됐으면 합니다. 알고케어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헬스케어 서비스로 만들고 싶어요. 과도하게 혁신성을 앞세우기보단, 알고케어가 소비자들이 실제로 효용성을 느끼는 헬스케어 서비스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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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홍중식
오홍석 기자 lumie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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