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 되게 신나", 가슴으로 곱씹는 '더 글로리'의 명대사

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2023. 1. 6.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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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더 글로리', 사진제공=넷플릭스

배우 송혜교가 주연을 맡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극본 김은숙, 연출 안길호)가 2023년 서두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이 드라마의 소재는 '학교 폭력'(학폭)이고, 주제는 학폭 피해자의 사적 복수다. 물론 사적 복수는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대중은 피해자의 반격에 응원을 보내고 또 공감한다. 

8부까지 공개된 '더 글로리'는 시즌1이다. 진짜 복수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는 복수를 위해 준비를 해가는 문동은(송혜교)의 서사에 집중했다. 그 와중에 그가 던지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는 폐부를 찌른다. 곱씹을수록 맛이 배어나는 '더 글로리' 속 문동은의 대사를 통해 이 드라마의 흐름을 짚어봤다.

'더 글로리', 사진제공=넷플릭스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 우리 꼭 또 보자, 연진아"

학폭을 견디지 못해 자퇴한 문동은은 가해자들의 우두머리인 박연진(임지연)을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이 때만 해도 박연진은 몰랐다. 십수년이 흐른 후 자신에게 돌아올 복수의 씨앗이 잉태되고 있다는 것은. 얼핏 듣기는 여고 동창생들의 우정 어린 대화 같지만, 이 말을 내뱉는 문동은의 혀에는 피와 증오가 어려 있다.

"타락할 나를 위해. 추락할 너를 위해."

문동은의 복수는 긴 시간을 걸쳐 준비됐다. 힘없고 가난한 여인이 권력과 돈을 가진 여인을 제압할 방법이 무엇일까? 문동은은 교사가 되길 택했고, 그의 계획대로 박연진 딸의 담임이 됐다. "2015년 그해 봄이 난 참 좋았어. 난 두 번의 도전 끝에 임용에 붙었고, 넌 고맙게도 엄마가 됐으니까. 건배도 내가 했어. 타락할 나를 위해. 추락할 너를 위해." 이 말은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일종의 신호탄과 같다. 문동은은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박연진을 세상 바닥으로 '추락'시키려 한다. 하지만 '타락'할 본인도 그로 인한 죗값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잃을 것이 없는 이의 신념보다 무서운 건 없다.  

'더 글로리', 사진제공=넷플릭스

"앞으로 이 교실에서 다음 세 가지는 아무 힘도 없을 거야. 부모의 직업, 부모의 재력, 부모의 인맥."

담임 교사로 부임한 문동은은 아이들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표면적으로 볼 때는 참 교사의 모습이다.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문동은이 학폭 피해를 입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 아무도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 박연진의 부모의 직업, 재력, 인맥이 담임 교사, 경찰의 눈과 귀를 막았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문동은은 이 모든 것을 박연진으로부터 제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세 가지를 거세당한 박연진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오는 3월 공개되는 '더 글로리' 시즌2의 관전 포인트다.

"여기까지 오는데 우연은 단 한 줄도 없었어. 나의 체육관에 온 걸 환영해, 연진아."

교사가 돼 박연진과 재회한 문동은은 이렇게 말한다. 갑작스러운 문동은의 등장에 박연진은 당황한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 턱이 없다. 하지만 이는 문동은이 만든 필연이다. 박연진 입장에서는 피할 수 없는 덫이다. 게다가 체육관은 학창 시절 문동은이 학폭을 당하던 주요 장소다. 십수 년이 흐른 후, 그 공간 안에서 관계 역전이 벌어졌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쾌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박연진의 간담은 서늘해졌을 것이다.

'더 글로리', 사진제공=넷플릭스

"사과하지 마. 사과받자고 10대도, 20대도, 30대도 다 걸었을까? 넌 벌 받아야지. 신이 널 도우면 형벌, 신이 날 도우면 천벌."

통상적으로 권선징악 드라마는 가해자의 반성과 피해자의 용서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더 글로리'는 그런 뻔한 결말을 거부한다. 박연진은 언제나 그랬듯 돈으로 이 상황을 무마하려 한다. 하지만 문동은에게 돈 따위는 필요없다. 또한 사과를 받을 생각도 없다. '형벌'은 인간이 주는 벌이고, '천벌'은 신이 주는 벌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박연진이 죗값을 피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푼돈으로 방금 내가 쟤 하늘이 됐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각 캐릭터에 감정이 투영돼야 한다. 김은숙 작가는 몇몇 대사를 통해 가해자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응징받아 마땅한 인물로 남겨둔다는 뜻이다. 기상캐스터로 일하는 박연진은 돈을 주고 원고를 쓰는 작가를 부린다. 그러면서 툭 내뱉는 한 마디는 박연진이 도무지 고쳐 쓸 수 없는 뼛속까지 속물임을 드러낸다. 

'더 글로리', 사진제공=넷플릭스

"놀아주니깐 아직도 친구인 줄 알지?" "우정만으로 우정이 되니?"

문동은은 혼자고, 가해자들은 다수다. 권력과 재력을 가진 가해자들이 여전히 유리한 싸움이다. 하지만 그들 안의 균열은 있다. 더 돈이 많고 힘이 센 가해자는 이같이 말하며 또 다른 가해자들을 업신여긴다. 이는 향후 그들 역시 서로를 향해 칼 끝을 겨눌 단초가 된다. 가장 무서운 건 내부의 적이다. 문동은을 가해하던 과거를 모두 알고 있는 그들 내부에서 자중지란이 일어나면 문동은에게 유리한 상황이 조성된다. 김 작가는 이를 위한 여러 복선을 깔고 있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글쎄, 그건 너무 페어플레이 같은데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 법전의 원칙이다. 물건을 훔친 자의 손을 자르고, 거짓말을 한 자의 혀를 뽑는다. 그리고 타인을 죽인 자는 생명을 앗아간다. 현재 법체계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복수 형태다. 하지만 문동은은 그마저도 거부한다. 가해자들은 문동은의 몸을 뜨거운 고데기로 지지고, 때리고, 성적 학대를 하며 정서적으로 짓밟았다. 과연 그 이상의 물리적 복수는 무엇일까? 상상 이상의 끔찍한 장면이 나올 수 있다. 분명 눈뜨고 보기 힘든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가해자들의 행태를 지켜보며 분노한 시청자들은, 단죄를 원한다. 그래서 "하루 빨리 시즌2를 보길 원한다"는 아우성이 이어지고 있다.

'더 글로리', 사진제공=넷플릭스

#"나 지금 되게 신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신남'이다. 학폭으로 피해를 입고, 그로 인해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는 상처는 문동은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그 빚을 돌려줄 기회가 왔다. "나 네가 시들어가는 이 순간이 아주 길었으면 좋겠거든. 우리 같이 천천히 말라 죽어보자, 연진아." 문동은은 계속 살아갈 생각이 없다. 그의 삶의 이유는 복수 그 자체다. 가해자들을 단죄한 후에는 자신 역시 삶을 포기할 태세다. 그래서 '우리 같이 말라 죽어보자'고 말한다. 그 결말은 모두의 파국이다. 하지만 문동은은 말한다. "나 지금 되게 신나." 한 번도 행복한 적 없었던 문동은의 꿈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가해자들이 불행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유일하게 자신의 행복이라 여긴다. 슬프다. 하지만 그게 문동은의 행복이다. 김 작가는 과연 문동은에게 어떤 구원의 빛을 내릴까?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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