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공연 영광… 작가의 좋은 씨앗, 배우·스태프가 물 잘 준 덕”
■ 창작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연출가 박소영
남북병사 무인도 고립 스토리
2013년 초연된뒤 7번째 시즌
객석점유율 90%대 저력 과시
“신인 창작자들 지원 프로그램
흥행에만 초점 맞춰서는 안돼”
6·25전쟁이 한창이던 때, 국군 대위 영범은 인민군 4명을 포로수용소로 이송하는 임무를 부여받고 부하 석구와 함께 이송선에 오른다. 그러나 이송선은 고장 나고, 6명의 병사는 무인도에 고립된다. 유일하게 배를 수리할 수 있는 인민군 막내 순호는 전쟁 후유증으로 정신을 놓아버린다. 이때 영범은 ‘여신’ 이야기를 만들어 순호에게 들려주고, 가상의 여신님을 위한 공동의 규칙을 세운 이들은 아슬아슬한 조화 속에 살아간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창작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여신님’)의 줄거리다. ‘여신님’은 2013년 초연 후 지난해 11월부터 오는 3월까지 진행되는 10주년 기념공연까지 총 7번 무대에 올랐다. 거의 모든 공연의 객석 점유율이 90%를 넘을 정도로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다.
대형 라이선스 공연 위주인 우리나라 뮤지컬계에서 창작 뮤지컬 ‘여신님’의 성과는 귀하다. 초연부터 7번째 시즌까지 함께해 온 연출가 박소영(사진)을 지난 4일 대학로에서 만났다.
그는 ‘여신님’을 하나의 씨앗에서 피어난 꽃에 비유했다. “한정석 작가가 혼자 이 작품을 구상한 것만 2년이에요. 이후 한 작가와 이선영 작곡가가 토대를 아주 튼튼하게 잘 만들었고 정말 많은 토론과 연습을 했습니다. 좋은 씨앗을 만든 거죠. 거기에 우리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물과 햇빛을 잘 줘서 꽃이 화려하고 풍성하게 자라난 것 같습니다.”
박 연출은 그러면서 “한 작품이 10년이나 무대에 오른다는 게 어려운 일인데 감사할 따름”이라며 인기 요인으로 “참여한 모든 구성원이 단 한순간도 허투루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허투루 만든 장면이 하나도 없을 정도예요. 모든 장면에 대해 모두가 설득이 돼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으니까요. 정말 치열하게 토론하고 연습했습니다.”
7번째 시즌까지 오면서 ‘여신님’의 줄거리와 설정이 크게 바뀌진 않았으나 작은 부분들에선 변화가 있었다. ‘여신님’에 관한 묘사가 외모에 관한 것에서 인성에 관한 것으로 바뀐 것이 한 예다. “한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이 잡히면 저와 작가, 작곡가가 모여 이야기해요. 관객들이 보기에 불편할 수 있는 요소가 있는지, 차별적인 요소는 없는지. 시간이 흐르는 만큼 저희 생각도 바뀌고 시대도 바뀌잖아요. 그에 발맞추는 거죠. 그래야 되는 것 같아요. 그냥 내버려두면 고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신님’을 비롯해 ‘레드북’ ‘쇼맨’ 등 창작 뮤지컬은 물론, ‘오만과 편견’ 등 라이선스 뮤지컬 연출도 활발히 하는 그는 창작 뮤지컬을 향한 애정이 크다고 했다. “라이선스 작품은 제가 씨앗을 심을 수 없어요. 이미 빨강인데 조금 더 진한 빨강을 칠할 거냐, 흐릿한 빨강을 칠할 거냐의 문제인데 창작 작품은 제가 밑그림을 그릴 수 있거든요. 씨앗을 제가 심을 수 있어요. 훨씬 어렵지만 더 보람되고 매력 있는 일이죠. 한국 뮤지컬의 발전을 위해 창작 뮤지컬이 중요하다는 건 너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여신님’이 CJ문화재단의 신인 공연 창작자 지원 프로그램인 크리에이티브 마인즈(현 스테이지업)에 선정돼 무대에 오른 만큼, 그는 창작 뮤지컬의 발전을 위해선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도 제작사들이 작가와 작사가를 섭외해 ‘이런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해 나오는 작품이 많은데 그러면 이야기들은 다양해질 수가 없어요. 지원이 없으면 작가와 작곡가가 진정으로 원해서 나오는 작품이 더 없어질 겁니다. 창작 뮤지컬이 발전하려면 씨앗을 만드는 사람들을 존중해야 해요.”
다만 그는 현재 각 재단 등에서 신인 창작자들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지원 프로그램들이 ‘흥행’이라는 하나의 목표만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신인 창작자가 만들려는 작품의 방향성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씨앗이 무엇을 향해 나가고 싶은지를 잘 알고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요. 물론 창작자들에 대한 지원이 많고 다양한 게 밑바탕이 되어야겠죠.”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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