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사는 '붙이고' 빅파마는 '떼고'
해외 빅파마, 사업부 분사 등 구조조정
"국내 업계도 선택과 집중 필요" 지적도
전 세계 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국내외 제약바이오 업계에도 찬 바람이 불고 있다. 다만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이 위기 상황을 돌파하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국내에선 제약바이오 기업이 과거 독립시켰던 자회사나 그룹 내 계열사를 합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반면 글로벌 제약사(빅파마)는 수익성이 떨어진 사업부를 떼어내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분할 자회사 재합병 활발
6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보령은 최근 항암제 연구개발 자회사 리큐온 흡수합병을 마쳤다. 리큐온은 지난 2021년 12월 보령이 5억원을 출자해 설립한 기업이다. 당초 보령은 활발한 투자 유치 등을 목적으로 리큐온을 독립시켰으나, 자금 조달 환경이 어려워지자 재합병으로 방향을 바꿨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리큐온은 매출은 0원, 순손실은 41억원을 냈다. 보령 측은 "중복되는 사업을 통합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리큐온을 흡수합병 했다"고 밝혔다.
JW중외제약도 계열사 JW바이오사이언스의 의료기기 사업을 148억원에 인수했다. 의료기기 사업 관련 자산 154억원, 부채 39억원, 기타 권리 등을 양수하는 내용이다. JW바이오사이언스는 2016년 JW메디칼에서 분할해 설립한 진단기기 기업으로, 설립 이후 적자를 지속하고 있다. 2021년 기준 JW바이오사이언스의 매출은 405억원, 순손실은 98억원이었다.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JW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JW중외제약이 지원 사격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에이프로젠제약 역시 지난달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 흡수합병 절차를 완료했다. 에이프로젠제약과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는 에이프로젠의 자회사였다. 에이프로젠제약은 합성의약품 제조 및 판매를,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 의약품 연구개발 및 생산을 담당해왔다. 두 기업 모두 적자를 내고 있었지만, 2021년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가 완전자본잠식에 빠지면서 에이프로젠제약이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의 흡수합병을 결정한 것이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선 모회사의 특정 파이프라인을 떼어내 관련 연구개발에 매진하는 자회사를 설립하는 경우가 많다. 신약 개발 사업 부문을 자회사로 분할하면 전문성을 높이는 동시에 자금 조달도 수월해진다. 자회사 설립 시기부터 상장을 염두에 두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각국 중앙은행의 가파른 금리 인상, 까다로워진 바이오 기업 상장 심사 등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모회사가 독립시켰던 자회사를 다시 합병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다. 자회사의 생존을 위해 모회사가 돈줄 역할을 맡은 셈이다.
구조조정 나선 빅파마…"선택과 집중 필요"
상황이 어려운 건 해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빅파마의 행보는 국내와 정반대다. 다수 빅파마가 수익성이 떨어진 사업부를 분사하거나 매각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비핵심 사업부에 투입되는 비용은 과감하게 절감하고 이를 핵심 사업부에 투자하겠다는 목표다.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지난해 7월 컨슈머 헬스케어 사업부를 분사했다. 건강기능식품(센트룸), 치약(센소다인) 등 헬스케어 제품을 판매하는 GSK컨슈머헬스케어를 떼어내 새 법인 헤일리온으로 공식 출범시켰다. GSK는 혁신 신약 및 백신 개발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스위스 노바티스도 제네릭(복제 의약품) 의약품 및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사업부 산도스를 분사했다. 항암제와 세포치료제 등 혁신 신약 개발에 더욱 힘을 쏟기 위해서다. 프랑스 사노피 역시 체질 개선을 위해 컨슈머헬스케어 사업부와 원료의약품 사업부를 각각 분사했다. 또 미국 존슨앤드존슨(J&J)도 올해 안에 컨슈머헬스케어 사업부 분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미국 머크(MSD)도 2020년 여성 질환 치료제 및 특허 만료 의약품, 바이오시밀러 사업 부문을 새 법인 오가논으로 분사한 바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자회사 재합병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판단하긴 어렵다. 신약 개발은 대규모 자금이 꾸준하게 투입돼야 하는 영역이다. 재무구조가 불안해진 자회사가 모회사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연구개발을 지속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일각에선 바이오 산업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선 국내 기업도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에도 당분간 시장 불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성공 가능성이 높은 파이프라인에 몰두해 자금 유출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산업의 특성상 현금 흐름이 막히면 산업 근간이 흔들릴 수 있기에 바이오 기업에 대한 대형 제약사의 투자와 지원은 중요하다"면서도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거나 여러 파이프라인의 연구개발을 동시에 진행하는 건 오히려 신약 개발의 성공 확률을 낮출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자금 조달 비용이 많이 드는 시기엔 플랫폼 기술(모달리티)이나 특정 질환군 등에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차지현 (chaji@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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