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합의 '효력 정지' 때 가능한 군사조치는…'심리전' 부활 등 거론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정부가 북한의 연이은 무력도발을 이유로 지난 2018년 서명한 '9·19 군사 분야 남북 합의서'의 효력을 정지하는 방안을 본격 논의하고 있다.
정부 내에선 9·19합의에 따라 위축됐던 전방 지역 정찰·훈련 강화 등 군사적 조치와 함께 북한 정권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심리전' 부활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5일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킬 경우 우리도 9·19합의를 파기하지 않더라도 효력을 정지하고 상응조치를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국가안보실과 국방부·합동참모본부·국방과학연구소(ADD)로부터 북한 무인기 대응 전략을 보고받은 뒤 내린 지시에 따른 것이다.
우리 군은 북한의 도발이 반복될 경우 '침략행위'란 비판을 듣지 않는 수준에서 '자위권 행사'로 설명할 수 있는 조치를 먼저 취할 것으로 보인다. 9·19합의 이전엔 일상적으로 이뤄지던 군사행동이 대표적이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건 접경지 군사활동 재개다. 남북은 9·19합의에서 군사분계선(MDL) 일대의 포사격 등 군사적 적대 행위를 금지하기로 했다. 또 비무장지대(DMZ)에서 남북으로 10~40㎞ 이내에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하고, 공중정찰 활동을 금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 군은 지난달 26일 북한의 소형 무인기 5대가 MDL 이남으로 침투하자 유·무인 정찰기를 DMZ와 이북 지역으로 보내 북한 주요 군사시설을 촬영했다. 일각에선 우리 군의 이 같은 정찰기 투입이 9·19합의 위반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앞서 우리 군은 2020년 5월 강원 철원 MDL 내 육군 제3보병사단 감시초소(GP)를 향한 북한군 총격에 따른 대응사격, 2022년 11월 북한의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미사일 도발에 따른 미사일 대응 등 조치를 취한 사례가 있다.
이와 관련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9·19합의는 우리만 지키라고 있는 게 아니다"고 선을 말했다.
우리 군 당국은 최근 북한 무인기 사건 대응과 관련해서도 남북한의 한국전쟁(6·25전쟁) 정전협정 준수 여부를 관리·감독하는 주한유엔군사령부 측에도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9·19합의로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되면서 우리 정찰기 투입이 불가능해졌던 부분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군사적 차원에서 큰 실익이 없을 수 있고 북한의 반응도 봐야 하기 때문에 확정은 아니다"고 전했다.
MDL 일대에서의 육군 실기동 훈련 정상화와 NLL 일대 해군 함정 기동 및 포사격 등도 9·19합의 효력 정지 때 취할 수 있는 조치들로 거론된다.
문재인 정부가 9·19합의 뒤 폐쇄했던 강원도 고성 마차진사격장은 이미 작년 말 운영이 재개된 상태다. 이곳은 MDL로부터 11㎞ 떨어져 있어 'MDL 5㎞ 이내 포사격 금지'란 9·19합의와도 무관하다.
9·19합의에 따른 DMZ 내 최전방 GP 11곳 시범적 철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도 원상복구될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이 경우 우리 군은 물론 북한의 DMZ 내 병력 운용이 지금보다 확대되고 JSA 내에서 남북한 병력이 다시 총을 들고 대치하는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9·19합의 효력 정지 땐 비행금지구역과 적대행위 금지구역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북한이 또다시 남북군사합의를 위반하는 도발을 할 경우 전방지역에서 정찰비행뿐만 아니라 사격훈련이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 국장은 "북한의 도발에 수세적 대응은 안보불안으로 이어지는 만큼 군이 공세적으로 대응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9·19합의 효력 정지'가 현실화될 경우 접경지 일대에서 남북한 간의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단 우려도 제기된다. 북한의 도발에 비례적 수준을 넘어 '압도적으로 대응'하란 윤 대통령의 지시가 오히려 추가 도발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군 소식통은 "군사적 긴장 완화가 필요하단 9·19합의 정신엔 의미가 있고, 모든 것은 북한의 행동에 달려 있다"며 "북한이 의도적으로 9·19합의 파기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는 만큼 북한이 원하는 상황은 결코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 내에선 대북 확성기 방송이나 대북 전단 살포 등 '비군사적 조치' 재개도 적극 검토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5일 "남북관계발전법 23조에 따라 9·19합의의 효력 정지가 이뤄질 경우 24조에 명시된 '남북 합의서 위반 행위의 금지'에 해당하는 행위를 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법적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남북관계발전법 24조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북한에 대한 확성기 방송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북한에 대한 시각매개물(게시물) 게시 △전단 등 살포 등이 '남북 합의서 위반 행위의 금지' 사항으로 명시돼 있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위원은 "우리가 무인기를 북한에 보내는 등의 행동을 해도 북한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요한 건 9·19합의를 남북이 유지할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류 위원은 "합의 서명 이전에 있던 북한이 싫어하는 행동을 우리가 다시 해주면 된다"며 "비대칭 전력, 소위 말하는 심리전 활동을 벌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hg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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