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고 좋은 종목은 없어요…주주행동으로 밸류 높여야죠"
"주주대표·증권집단 소송·증거개시제도 필요"
(서울=뉴스1) 강은성 이기림 기자 = "주식시장에서 '싸고 좋은' 종목이 과연 있을까요. 사실상 없다고 봐야죠. 저평가 돼 있는 기업은 분명히 이유가 있어요.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비로소 주가가 오릅니다. 한국시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저평가 종목이 허다해요. 그런데, 이런 종목을 사놓고 그저 '인디언 기우제' 지내듯 마냥 기다린다고 주가가 오를까요. 고통의 시간만 길어질 뿐입니다. 기업의 밸류에이션(실적대비 주가수준)을 끌어올리려면 '행동'을 해야죠."
주식투자를 할 때 가장 성공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은 '싸고 좋은' 기업(종목)을 찾는 일이라고 숱하게 들어왔다. 때문에 투자한 종목의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비싸게 샀거나 아니면 이 기업이 '좋은 기업'이 아니라고 체념하기 십상이다.
'행동주의 펀드'로 주목을 받고 있는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의 이창환 대표는 이런 생각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 종목이 저평가 된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서야 주가가 오를리 없다는 것이다. 만약 저평가 된 원인을 해결한다면 주가는 '드라마틱'하게 상승할 수 있다고 이 대표는 강조했다. 제 아무리 하락장이라 해도 말이다.
◇코스닥 23% 추락할때 에스엠 22% 급등 비결은 '주주행동'
얼라인파트너스는 국내 주식시장이 20% 이상 급락한 지난해, '주주행동'을 통해 기업의 주가를 끌어올린 실제 사례가 있다. 국내 3대 연예기획사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 얘기다.
지난해 1월 7만3600원으로 출발했던 에스엠은 같은달 28일에 장중 5만4500까지 하락하며 연저점을 기록했다. 그러다 2월에 다시 6만원대를 회복하더니 주주총회 직후인 4월1일엔 장중 9만원이라는 에스엠 사상 최고가 기록을 썼다. 2022년 한해동안 에스엠이 상장된 코스닥 지수가 약 23%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가파른 상승이다.
이 기간 얼라인파트너스는 에스엠에 거버넌스(지배구조) 문제 해결을 위해 주주가 추천한 감사를 선임하라는 '주주제안'을 했다. 이는 주총에서 통과돼 현재 곽준호 감사가 에스엠에서 활동하는 중이다. 또 주주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이익환원도 요구했다. 이에 에스엠은 지난해 2월, 사상 첫 배당을 실시하기도 했다.
주주제안에 따른 감사 선임과 배당확대까지 이끌어낸 얼라인파트너스는 에스엠 기업가치를 결정적으로 누르고 있는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다.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불거진 이수만 프로듀서 개인회사 라이크기획과의 프로듀싱 계약을 종료하라고 촉구했던 것.
얼라인파트너스의 지분은 1.1% 수준에 불과했지만 얼라인파트너스의 요구가 에스엠 기업가치 상승은 물론 주주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소액주주들이 결집했다. 에스엠은 백기를 들고 라이크기획과의 결별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런 발표들이 있을 때마다 에스엠의 시가총액은 껑충 뛰었다.
◇상장기업이 주주환원 외면하는 건 '이자 연체' 행위
"기업공개(IPO)를 한 기업은 상장으로 한번에 막대한 자금을 수혈하게 되죠. 그 돈은 불특정 다수의 주주들에게 '대출'을 받은 돈이에요. 대출을 받았으면 당연히 이자를 지급해야죠. 이자가 바로 배당금이나 자사주매입&소각 같은 주주환원 정책입니다. 이자 지급을 제대로 안하고 대주주가 기업의 이익을 착복한다면 이는 악의적인 '연체'에요. 주주들은 이자를 지급하라고 강력하게 기업에 요구해야 해요."
행동하는 주주가 결국 기업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주주환원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이창환 대표는 강조했다.
그는 "대주주들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구조적으로 본인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오던 관행이 있었다"며 "소액주주들도 주가의 상승하락엔 관심이 많지만, 정작 주주로서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이 주주에게 이익을 환원하는 것을 소홀히 여기고 이익잉여금, 자본금 등을 (대주주의) 쌈짓돈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주들이 분산된 힘을 모아 의결권을 행사하고, 회사를 공동경영한다는 생각으로 경영진과 기업을 이끌어간다면 기업이 감히 주주의 권익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출을 받고 이자를 내지 않는 기업이 있다면 금융회사는 그 기업의 자산을 차압하거나 강제 매각해 원금을 회수한다. 그런데 우리 자본시장은 주주의 권익을 무시하는 기업이 너무 많고, 주주들도 이를 무기력하게 받아들이거나 오히려 대주주 편을 드는 사례가 많다. 이런 것들이 모이다보니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고질적인 병폐도 낳았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내에 저평가된 주식은 많지만, 저평가 된 분명한 이유가 있다"면서 "에스엠 사례처럼 주주 행동을 통해 저평가 요소를 해결하니, 코스닥이 400포인트나 빠지는 하락장에서도 에스엠 주가는 상승세를 보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주행동 하려면 주주대표소송·증거개시제도 필요
주주행동을 하기 위해선 기업 이사회의 독립성을 기르는 것이 첫번째 단계라고 이 대표는 강조했다.
현재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 등이 있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다고 이 대표는 지적했다. 감사 등 기업의 문제를 감시할 수 있는 기능도 기관 등이 나서지 않기 때문에 투명하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제일 좋은 것은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를 확실하게 바꾸는 것"이라며 "주주대표소송과 증권집단소송 실효성을 제고하고, 증거개시제도를 도입한다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물적분할로 모회사 주주들에게 큰 손실을 끼친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선진 자본시장이라면 천문학적인 소송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사례라고 이 대표는 꼬집었다.
주주대표소송을 통해 주주라면 누구나 기업의 잘못된 의사판단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주주를 보호하는 법적 장치인 셈이다.
일개 개인인 소액주주가 기업이 주주이익을 훼손했다는 '증거'를 모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주주소송이 많지 않은 현실도 이 때문이다. 이에 이 대표는 '증거개시제도'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나아가 회사 관련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상사법원'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민사법원이 대부분 송사를 담당하고 있는데, 전문성이 떨어지다보니 오히려 소액주주가 아닌 대주주 편을 들어주는 어이없는 판례도 속출한다는 것이 이 대표의 지적이다.
이 대표는 "장이 안 좋을 때 기업체질을 개선하는 등 행동주의 펀드가 활동하기 좋을 수 있다"며 "그 활동으로 주가가 오르면 기업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행동주의가 겁나는 기업이라면 주주가치를 제고하면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esth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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