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누구의 삶을 훔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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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집을 정리하려고, 인테리어 사이트를 둘러보았다.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집 안에 숨었던 여자는 최애 아이돌의 열애 상대가 되고 싶고, 신입 사원 남자는 늘 비교되는 멋진 동기의 삶을 훔치고 싶다.
이 소설집 속, 남의 삶을 베끼려 한 사람들의 선택은 각각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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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캣 식당
범유진 지음 l &(2023)
새해를 맞아 집을 정리하려고, 인테리어 사이트를 둘러보았다. 매 상품 판매 페이지의 후기란에는 예쁘게 꾸민 집들의 사진이 가득하다. 클릭해보면, 나와 비슷하지만 다르게 깨끗한 삶들이 펼쳐진다. 그렇게 한참 들여다본 후에 깨닫는다. 내가 갖고 싶은 건 그 사이트에서 파는 물건만이 아니라, 타인의 사진 속 빛나는 삶이라는 것을. 기나긴 인터넷 서핑의 끝에는 이런 작은 시기심이 남는다.
남이 지닌 재능, 재산, 그리고 행운, 아무리 덤덤한 사람이라도 이에 초연해지기가 어렵다. 그때 그의 삶과 나의 삶을 바꿔치기할 기회가 온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범유진의 <카피캣 식당>(&, 앤드)은 현대인이 느끼는 시기심을 영혼 바꾸기라는 판타지로 풀어낸 소설이다. 당면한 현실이 지겨운 이의 눈앞에 갑자기 “김밥지옥”이라는 이름의 식당이 나타난다. 식당의 유리 벽에는 “카피캣 식당 OPEN TIME 666”이라고 쓰였다. 식당 주인은 북구 신화의 신과 이름이 똑같은 로키라는 악마이다. 손님이 훔치고 싶은 상대의 영혼의 레시피를 알아 오면, 로키는 그 음식을 만들어주고, 그걸 먹으면 두 사람의 인생은 바뀐다.
소설은 대체로 전래 동화 같은 전개이다. 인간의 손톱을 주워 먹은 쥐처럼, 타인의 영혼 깊숙이 기억된 음식을 먹으면 그 사람이 될 수 있다.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집 안에 숨었던 여자는 최애 아이돌의 열애 상대가 되고 싶고, 신입 사원 남자는 늘 비교되는 멋진 동기의 삶을 훔치고 싶다. 빼앗긴 걸 찾고 싶어서, 죽음에서 벗어나려고, 나보다 운이 좋아 보이는 사람의 삶을 원한다. 상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다면, 그 사람이 될 수 있다.
회귀, 빙의, 환생으로 요약되는 현재 장르 소설의 키워드에는 이런 현대인의 심리가 녹아 있다. 자본주의는 에스엔에스(SNS)를 채널 삼아 시기심을 부추긴다. 광고 알고리듬에 갇힌 나는 온라인으로 전시되는 멋진 삶을 부러워하고, 그를 닮으려 같은 상품을 구매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더 갖고 싶어 하는 건 물건보다 타인의 경험이다. 현실에선 어렵기에 소설 속에서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고, 다시 태어난다. <카피캣 식당>은 장르 소설의 이런 유행 안에서 인간을 몰아붙이는 심리적 동력을 솔직하게 잡아낸 우화적 작품이다.
이 소설집 속, 남의 삶을 베끼려 한 사람들의 선택은 각각 다르다. 하지만 결말에 다다르면, 그리스 비극 <아가멤논>에 등장하는 대사가 떠오른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불행으로 고통당하는 동시에, 남의 행복을 보고 탄식하기 마련이니까요.”(<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61쪽, 천병희 옮김, 숲). <카피캣 식당>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겉으로 행복해 보였지만 실은 괴로운 삶을 감내하던 사람이었다. 그가 영혼의 레시피로 꼽은 달걀말이는 현재의 그에게는 오히려 고통의 원인이 된다. 그럼에도 그는 타인의 행복을 보고 탄식하기를 그만두고, 달걀말이의 추억을 지키려 한다. 그것이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의 삶이기 때문이다. 카피캣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면, 불행이든 행복이든 나의 삶에 집중해야 한다. 이제 타인의 집 창 너머로 기웃거리기를 끝내야 한다. 클릭 한 번으로 연 창은 다시 클릭 한 번으로 닫을 수 있다.
박현주/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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