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아빠’는 바보다, 거지다, 대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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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작가의 단편 '썸머의 마술과학'의 화자는 16살 이봄과 10살이 안 된 여동생 이여름이다.
때로 불안해하는 동생에게 "난 절대 너 때문에 화를 내지 않아", "엄마 아빠에게 야단맞을 때보다 썸머(여름)가 실망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때 더 진땀이 나고 조급해진다" 따위 봄의 말은 다짐이자 여름의 믿음에 대한 복창이고, 그 밖의 세계에 대한 비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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긋닛 2호: 기후위기
김홍중·우다영·정지돈·최진영 지음 l 이음 l 1만2000원
최진영 작가의 단편 ‘썸머의 마술과학’의 화자는 16살 이봄과 10살이 안 된 여동생 이여름이다. 지켜야 할 이름으로 부모가 지었을 터, 정작 그 어른들의 삶은 위태롭고 때로 무책임하다.
2022년 ‘아빠’는 매주 참석하는 모임 ‘토해술’에서 얻은 정보로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3억이 넘는 사기를 당한다. 아빠는 엄마와 다투고, 봄은 반평생 마스크를 쓴 탓에 마스크로 안전함을 느끼는 여름의 귀도 슬며시 닫아준다. 사기 뒤에도 그저 태연한 아빠에게 봄은 독하게 따진다. “아빠가 하는 건 투자가 아니라 도박이야. 그리고 아빠는 부자가 아니야… 근데 왜 자꾸 부자인 것처럼 말을 해?…” “아빠가 차라리, 앞으로 이십 년 동안 매달 얼마씩 갚아야 해결될 거라고 말했으면 나도 그러려니 했을 거야. 그래도 뭔가 대책이 있구나 생각했을 거고… 아빠 욕심으로 벌인 일에 왜 우리 핑계를 대냐고…”
봄의 일방적인 힐책을 지켜본 여름은 이렇게 (소설 화자로서) 구술한다. “아빠 얼굴이 밟힌 홍시에서 자동차 바퀴에 여러 번 깔린 홍시로 변해갔다.” 라면과 소주를 싱크대에 들이붓고 집을 뛰쳐나가기 직전.
자매가 번갈아 화자가 되어 제 시선들로 이야기를 교직하는 장치의 영특함은, 기후 문제를 다 아는 척 천연스레 후대에 더 많은 부담을 떠넘기는 기성세대를 풍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대 간, 나아가 더 촘촘한 세대-자매간에도 노정되는 기후 문제에 대한 인식, 위악과 위선을 오가는 행동 격차를 체감시키며 가장 적실한 비전을 모색하려는 데 있다. 말인즉, “그만하라고” 해도 “그게 안 되”는 어른들 더 추궁하려기보다, 여름을 끔찍이도 아끼는 봄의 마음이라도 옹근 간수해보려는 절박함이랄까. 때로 불안해하는 동생에게 “난 절대 너 때문에 화를 내지 않아”, “엄마 아빠에게 야단맞을 때보다 썸머(여름)가 실망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때 더 진땀이 나고 조급해진다” 따위 봄의 말은 다짐이자 여름의 믿음에 대한 복창이고, 그 밖의 세계에 대한 비토다.
“(토해술) 거기서 건지는 정보가 얼마나 많은데. …금값보다 비싼 정보를 술술 말한다니까. 술은 촉진제 같은 거지”(아빠) 같은 어른세대의 거짓은 귀 닫자는 툰베리식 조롱. 아, 토해술은 ‘토요일 해장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전날 과음한 이들의.
정치사회 특정 현안을 소설로만 다루겠다며 지난해 말 창간된 잡지 ‘긋닛’의 최근 2호엔 위 단편 외, 인간의 탐욕, 불신으로 바투 세계의 종말을 기대하는 악마에 맞서 최후의 신뢰를 찾아내기까지의 메시아적 고행을 그려낸 작가 우다영의 ‘기도는 기적의 일부’, 모든 기억과 언어조차 종전의 의미를 잃게 되는 대정전의 시기를 비틀어 그린 정지돈의 ‘자가 수술을 위한 구부러진 공간에서’ 2편이 실렸다. 공히 ‘기후위기’를 주제로 썼다. 심각할수록 구태의연해지고 마는 현안의 역설에 문학이 저항하는 방식. 기획이 아니었다면 혹 쓰이지 않았을 이야기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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