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종이책과 디지털 아우르는 ‘양손잡이 문해력’ 필요

최재봉 2023. 1. 6. 05: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 읽기는 어떻게 바뀔까
양자택일 아닌 이상 현실 조화 모색
소설 읽기가 성적향상에 도움된다!
가짜뉴스 가릴 디지털 문해력 강조
미취학 어린이의 경우, 독서의 목표를 고려해 종이책과 디지털을 선별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게티이미지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
종이에서 스크린, 오디오까지 디지털 전환 시대의 새로운 읽기 전략
나오미 배런 지음, 전병근 옮김 l 어크로스 l 1만9800원

전자책과 오디오북, 팟캐스트와 유튜브 같은 새로운 매체들은 독서 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왔다. 교육 현장의 변화가 특히 두드러진다. 종이책이 아닌 디지털 독서와 영상에 익숙한 세대의 등장은 학부모와 교사들을 고민에 빠뜨리고 있다. 전통적인 종이책 읽기의 가치를 고집해야 할지, 아니면 디지털 독서라는 새로운 흐름에 적극 올라타야 할지가 고민의 핵심이다. 미국의 언어학자인 나오미 배런 아메리칸대학교 명예교수의 책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이런 고민에 빠진 학부모와 교사, 도서관 사서, 정책 결정자 등에게 특히 유용할 듯하다. 읽기와 학습에 관한 다양한 조사와 연구 결과를 취합하고 자신의 논지를 덧붙여 변화하는 시대 독서와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나이 든 세대일수록 읽기를 종이책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높다. 종이책으로 읽는 것이 순수하고 본래적인 독서이고 디지털 독서는 어딘지 결함이 있는 읽기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종이책에 대한 이런 낭만화는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가령 미국 매체 < 라이브러리 저널 > 이 2020 년 1 월에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모든 연령대에서 전자책이나 오디오북보다 종이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지만, 55살~91살 사이 고령 독자들의 전자책 선호도는 오히려 젊은 세대보다 높게 나타났다. “ 특히 최고령 집단은 디지털 읽기의 주된 매력으로 글자 크기 조절을 꼽았다.”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엇갈리는 결과가 나왔다. 일반적으로 전자책을 읽을 때보다는 종이책을 읽을 때 “어른과 아이 간의 대화식 상호작용이 더 많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전자책을 읽을 때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읽기에도 더 ‘개방적’이었을 뿐 아니라, 책 내용과 관련된 말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가 이 결과와 관련된다. 종이책이냐 전자책이냐 하는 양자택일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책을 읽을 때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 미취학 아동 독서의 경우, “만약 목표가 사회적 대화라면 종이책을 택하라. 그게 아니라 책 자체에 깊이 빠져드는 것이 목표라면 디지털 책이 적절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전자책과 오디오북은 특히 난독증을 비롯해 읽기 장애가 있는 학생들에게 큰 효과를 지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외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오디오북과 텍스트를 결합하는 방식의 읽기가 적합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맥락에 따라서는 심지어 집중적인 읽기에도 디지털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음을, 특히 학습이나 읽기 장애가 있는 학생에게는 그럴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그렇지만 종이책으로 읽을 때에 비해 디지털로 읽을 때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피상화 가설’이 여러 연구 결과에서 확인된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배런 교수 자신이 노르웨이 동료와 함께 미국과 노르웨이 두 나라 교수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두 나라 모두 응답자의 다섯명 중 네명꼴로 디지털 기술이 학생들의 읽기를 얕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보았다. 학생들은 같은 분량이라도 종이책으로 읽을 때보다 디지털로 읽을 때 더 빨리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빨리 읽는 것과 반비례해서 이해력은 오히려 떨어진다는 것이 문제다. 디지털 독서는 멀티 태스킹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고 텍스트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전자책뿐만 아니라 오디오북이나 팟캐스트, 동영상 같은 경쟁 매체들에 비해 종이책이 텍스트 이해에는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 역시 여러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글로 읽은 학생들 모두 팟캐스트로 들은 학생들보다 점수가 높았다. 게다가 텍스트로 읽은 학생들이 오디오로 들은 학생들보다 더 많이 기억하고,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이 배운 데 반해, 어려움은 덜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종이의 우월성’ 가설이 이긴 것이다.”

지은이가 소개하는 ‘소설 효과’라는 용어가 이와 관련해 흥미롭다. 2009년 오이시디(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소설을 읽은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읽기 평점이 높게” 나왔다. 잡지나 신문, 만화, 논픽션을 읽었을 때에도 비슷한 향상 효과가 있었는지 확인해봤지만 답은 ‘아니오’였다. 이 연구의 결론은 분명하다. “소설책 읽기는 추론하기라는 더욱 높은 수준의 이해 기술에 독보적이면서 확실한 도움을 주는 유일한 읽기 습관이었다.” 소설과 문학 독서가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학습 능력과 성적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종이책 자체를 따분하게 생각하고 디지털 읽기와 동영상 소비 쪽으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 교재 값 폭등과 코로나 팬데믹 같은 요인들 때문에 학교 현장에서는 종이책을 디지털 교재로 대체하는 움직임이 이어진다. 디지털 읽기에 익숙해진 학생들이 종이책 역시 디지털과 같은 방식으로, 그러니까 ‘빠르고 얕게’ 읽는 습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점에서 지은이가 강조하는 것이 ‘양손잡이 문해력’이다. 상황과 필요에 따라 종이책 읽기와 디지털 독서를 융통성 있게 병행하자는 것. 그래서 지은이는 종이책이냐 전자책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전쟁에는 일단 “휴전을 선언”하고 “어떤 매체가 어떤 종류의 학습에 어울리는지 식별해내는” 데에 집중하자고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올바른 의미의 ‘디지털 문해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디지털 문해력이란 본디 기술적 차원의 이해를 포괄하는 개념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은이는 스탠퍼드역사교육그룹이 ‘시민적 온라인 추론’ 능력을 키우는 데 핵심적이라고 본 세 가지 질문을 상기시킨다. 이 정보 뒤에는 누가 있는가? 근거는 무엇인가? 다른 자료원들은 뭐라고 하는가? 쓰레기 정보와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디지털 바다에서 표류하지 않고 제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진정한 디지털 문해력을 갖추기 위해 수시로 챙겨보아야 할 질문들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