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설렘 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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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뉴스를 보니 여고동창 희숙이가 사는 지방에 눈이 많이 내렸단다.
커피를 마시다 희숙이 생각이 나서 문자를 보냈다.
"희숙아, 눈도 오고 날씨도 찬데 평화로운 하루 보내렴. 널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친구가 있다는 걸 잊지마."
내 문자에 희숙이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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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뉴스를 보니 여고동창 희숙이가 사는 지방에 눈이 많이 내렸단다. 커피를 마시다 희숙이 생각이 나서 문자를 보냈다. “희숙아, 눈도 오고 날씨도 찬데 평화로운 하루 보내렴. 널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친구가 있다는 걸 잊지마.”
내 문자에 희숙이가 답했다. “난 참 행복한 사람이야. 너 같은 맘 맞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 봐도…. 너도 잊지마. 항상 기도하는 친구가 있다는 걸. 그런데 어떤 애정고백보다 설렌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살짝 가슴이 설레면 애정고백은커녕 심근경색이나 부정맥을 의심해야 한다. 눈이 오면 들뜨기보다 혹시라도 넘어져 골절상을 당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는 나이다. 늘 곁에 있어서 고마우면서도 친구에게 다정한 말이나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사는데 나를 비롯한 친구와 이웃들을 위해 기도하는 희숙이에게 문자를 보냈다가 한겨울에 봄기운을 느꼈다.
희숙이가 말한 애정고백은 사랑한다, 보고 싶다 등의 직설적 표현이 아니다. 누군가 자신을 인정하고 그리워한다는 것을 말이나 글로 전하는 것이다. 너무 당연하고 쉬운 일인데 우리는 이 애정고백에 인색하다. 특히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에게는 더더욱 인내심을 갖고 입을 다문다. 37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막내딸인 내게는 물론 아내, 아들들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씀을 한 기억이 없다. 카드나 편지를 주신 적도 없다. 가장 커다란 애정표현이 대학입시를 앞둔 내게 건강이 최고라며 당신이 좋아하시던 도가니탕 전문식당에 데려가신 것이다.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수많은 추억과 안아주시던 따스한 품이 기억으로 남아 마음이 몽글몽글하고 콧등이 시큰한데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도가니탕의 진한 국물만 느껴진다.
올해 나의 목표는 주변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것이다. 감사하다, 보고 싶다는 문자나 전화를 자주 하고 작은 물건이라도 선물을 전하려고 한다. 다행히 주변에는 모범사례(?)들이 많다. 여고동창 모임에 가면 겨울엔 수면양말, 더울 때는 부채, 나이 들어 잘 흘리게 된다며 레이스로 만든 에티켓 턱받이를 가져오는 친구들 덕분에 선물에 예민한 나는 항상 설렌다. 마수회(문화예술의 날인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만나 전시회 등을 가는 모임)의 멤버들도 ‘덕분에 문화 수준이 높아졌다’고 서로에게 감사하고 작은 선물도 나눈다.
올해 91세가 되신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는 그 연세에도 저술이나 강의 등 풍성한 활동을 하실 만큼 심신이 건강하시다. 그분에게 건강 비결을 물었을 때 오히려 반문을 하셨다.
“매일 아침에 가슴 설레며 일어날 일이 있습니까?”
오늘 일어나 해야 할 일 가운데 혹은 만나야 할 사람 가운데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가슴이 설레는 일을 만드는 것이 건강 비결이란다. 흥미로운 책,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음악, 대화가 통화는 이들과의 만남, 새로운 장소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매일은 아니더라도 자주 설렘을 느끼는 것이 장수 비결이란다. 그 설렘을 주변과 나누는 것이 행복이고 삶의 의미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나는 사계절 설렘을 선물하는 산타클로스 할머니로 살고 싶다.
유인경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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