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에서 찾는 우주의 기원 땅 속에서 하늘 밖 ‘어둠’을 밝히다
우주 ‘암흑물질’ 연구 위해 조성
정선 한덕철광 1000m 아래 위치
‘뮤온 우주선’ 피해 자리잡아
실험시설 면적만 3000㎡ 달해
친환경 화장실·안전 대피소 구축
차세대 대용량 검출기 등 갖춰
한국 첫 노벨물리학상 수상 기대
한국 산업의 기초를 이룬 강원도내 폐광지역이 다시한 번 미래산업 견인차 역할을 할 준비를 마쳤다. 정선 지하 1000m 아래 갱도에서는 우주의 구조와 기원이라는 근본적 물음의 해답을 얻기 위한 고심도 지하 실험실 ‘예미랩’이 운영 중이다. 세계 6위 규모(3000㎡)의 지하실험실 구축을 통해 IBS(기초과학연구원)는 암흑물질 탐색을 위한 기반을 갖출 수 있게 됐다. 연구진들은 이 곳에서 ‘노벨 물리학상’을 배출하겠다는 각오다. 1960~80년대 산업발전의 한 축을 담당했던 강원도내 폐광지역은 이제 우주의 기원을 밝히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 지하 1000m에 위치한 연구시설 ‘예미랩’
폭설이 내렸던 정선, 예미산 기슭에 도착했을 때는 쌓인 눈과 먼지, 광산 인부들의 모습에 이 곳이 철광석을 캐고있는 광산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예미랩은 민간 광산업체인 한덕철광의 갱도 옆에 조성된 지하 실험 시설이다. 지난해 10월 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이곳에서 준공식을 가졌다.
광산에 위치해 있는 만큼 연구시설에 들어가기 전 안전교육은 필수다. 다소 폐쇄된 환경이다 보니 ‘공황장애’나 ‘폐소공포증’이 있는 경우 출입은 불가하다. 광산 안전법에 따른 교육을 이수한 후 마련된 보호장비와 방진마스크를 착용한 후 ‘롯데타워’ 높이 만큼인 600m의 직선거리를 내려가기 위해 초속 4m의 고속 케이지에 탑승했다. 사람이 타는 케이지와 철광석을 운반하는 케이지가 구분돼 있고 수직 갱 굴착 비용 일부와 케이지 설치비용으로는 약 40억원이 투자됐다.
약 3분의 시간이 지나자 지하 600m지점에 도달, 지하도시라고 느껴질만큼 넓이 10m 이상으로 넓게 뚫린 터널을 마주했다. 전용차량에 탑승한 후 782m 가량 지난 후에야 마침내 지하 1000m 지점에 위치한 지하 실험실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도착한 현장은 체감온도가 -20도 이하로 떨어졌던 외부에 비해 따뜻한 온도와 함께 공기도 다소 쾌적했다. 동행한 이재승 연구위원은 “첨단 공기 공급·온도 조절 장치가 마련돼 온도는 26도, 산소 포화 농도는 지상과 동일한 24% 가량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미랩은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물질들인 ‘암흑물질’을 검출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암흑물질이란 우주 에너지의 약 26% 정도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물질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입자이며 경입자의 한 그룹으로 전하량이 없는 중성미자에 대한 연구도 진행된다. 지하실험 연구단은 오는 2023년부터 양양에 위치했던 실험실의 장비들을 이전해 중성미자 미방출 이중베타붕괴(AMoRE-Ⅱ)연구와 암흑물질탐색(COSINE-200)연구 등 우주의 근원을 찾기 위해 정선 예미산 지하에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한다. 지하실험 공간 외에 지상에는 옛 함백고등학교 건물을 사용해 지상연구실로 삼아 20~30명이 상주할 예정이다. 또 지하 실험구역에서는 경북대학교,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실험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실험실등 여러 기관들과 공동 활용하게 된다.
■ 세계적 수준의 실험실
지하 실험실은 계절과 관계없이 적당한 온도가 유지되고 있으며 외벽 먼지 차단과 갱도 안 천장과 벽도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일종의 숏크리트(콘크리트를 압축 공기로 뿜는 콘크리트)를 지하 실험실 전체 벽에 약 15㎝의 두께로 도포했다. 이후에는 페인트를 한번 더 덧발라 혹시 모를 먼지도 차단할 계획을 갖고 있다. 긴 터널식 공간에는 여러 기관들의 연구실들이 들어올 준비들이 한창이었다. 내부에는 편의를 위한 친환경 화장실도 마련돼 눈에 띄었다. 또 화재나 폭발사고가 나더라도 대피하기 위해 40여명의 인원이 3일간 생존할 수 있는 안전 대피소도 구축됐다.
지하도시처럼 생긴 실험시설은 면적만 3000㎡에 달할 정도로 넓다. 그 중 높이 28m, 폭 20m에 달하는 연구 공간도 있었는데 바로 태양에서 날아오는 중성미자를 검출하는 장치인 대형 액체섬광물질 검출기(LSC·Large-scale liquid Scintillator Counter)가 들어설 장소다. 2500t의 액체섬광물질 주변으로 수천개의 광센서를 부착한다. 예미랩은 이를 통해 국내 입자물리 최대 검출기로 입자부터 천체까지 여러 세계적 결과들을 얻을 것으로 보고있다.
또 이중 베타 붕괴 현상의 반감기를 측정해 중성미자의 질량을 파악, 이를 확인하는 실험인 AMoRE(Advanced Mo-based Rare process Experiment)도 눈에 띄었다. 중성미자의 질량은 지금까지 밝혀진 게 없는 상태라 더 이목이 집중된다. 예미랩은 차세대 대용량 검출기와 전기 공사 등 인프라 구축을 마친 상태로 IBS는 연말까지 모든 실험 장비 설치를 마치고 내년부터는 본격 실험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 정선 예미랩 입지선정 이유는 ‘배경사건 통제’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대형 연구시설이 예미산 지하 1000m 아래 자리잡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이재승 연구위원은 ‘배경사건 통제’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지하 1000m의 두꺼운 땅이 일종의 방사선 방패라는 뜻이다. 암흑물질은 어두운 물질이 아닌 이론적으로 예측되는 가상의 입자다. 지구 대기권을 뚫고 지층과 핵마저 통과해 지구를 빠져 나가는데 이를 측정하기 위해 ‘뮤온 우주선’을 피해 지하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예미랩 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우주의 성질을 연구하기 위한 실험 시설들도 경쟁적으로 깊은 지하를 찾아 나서고 있다. 1400m 지하에 구축된 세계 최대 지하 시설인 이탈리아 그랑사소국립연구소, 미국의 샌퍼드 지하연구시설, 캐나다 서드베리 중성미자 관측소, 일본의 가미오칸데 등이 대표적이다. 이 연구위원은 “지상에선 엄지 손톱만한 면적에 1분당 1만개의 뮤온이 검출되지만 지하 1000m에서는 방사선이 지표면 대비 백만분의 1로 ‘뮤온 우주선’의 대부분을 차단한다”고 말했다.
■ 예미랩의 노벨물리학상 도전
예미랩이 연구하고 있는 암흑물질은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일본·이탈리아·캐나다 등이 경쟁하고 있는 분야다. 입자 물리학은 노벨상이 많이 나온 분야이기도 하다. 중성미자 연구에서만 노벨 물리학상이 네 번 나왔다.
세계 6위급 다소 넓어진 공간을 새로 구축하면서 예미랩의 준공으로 한국에서도 첫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준공식 당시 오태석 과기정통부 제1차관은 축사에서 “예미랩에서 국내외 연구자들이 공동연구를 통해 세계적인 연구공간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진태 도지사는 “폐광지역이 예미랩을 통해 새롭게 변신해서 발돋움 하려고 한다”며 “활발한 연구를 통해 노벨 물리학상 1호가 나오길 희망한다”고 했다.
이재승 IBS 지하실험 연구단 연구위원은 “암흑물질을 최초로 발견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즐겁게 연구하고 있다”며 “우주의 기원을 찾는 여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자는 것이 이 시설과 우리 연구단의 궁극적 목표”라고 말했다. 신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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