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돈선의 예술인 탐방지도 -비밀의 방] 57. 나무 시인 이은무
형이 슬그머니 책 두권을 내밀었다
일상의 말이 자연스레 시어가 되니
그걸 꼼꼼히 기록했을 뿐이라 했다
형의 서정은 삶에 긍정이 숨어 있다
미시적 개인사·거시적 역사가 공존
비극적 현실 품은 언어 절삭과 함축
형은 늘 자신 성찰하는 올곧은 나무
진실·사색적인 시집 16권을 펴냈다
어느 따뜻한 겨울날.
휴대폰이 울렸다.
점심 식사, 같이 할 수 있을까.
이은무 시인의 목소리는 겨울 하늘처럼 투명하다. 팔순을 넘긴 나이임에도 그의 목소리는 늘 수줍다.
나는 형을 만나면 수필처럼 흐르고 싶어진다. 수필은 그냥 붓 가는 대로 쓰는 거라 하지 않던가.
나는 형을 만나면 아무 말이나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일이 즐겁다. 그냥 편안하고 아늑하다.
그런데 홍시가 붉게 익은 어느 날, 형이 내게 전화를 준 것이다. 두어 달 전 일이다.
두부전골로 식사하면서 형이 슬그머니 시집 두 권을 내게 내밀었다.
아이쿠 시집 내셨군요. 그것도 한 권도 아니고 두 권씩이나. 갑자기 시마詩魔가 드셨네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형은 일상이 시였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낄 뿐이라 했다. 일상의 말이 자연스레 시어가 되니, 그걸 연필이나 볼펜으로 꼼꼼히 기록했을 뿐이라 했다.
그게 전부였다고.
‘나무 시인’과 ‘흰 까마귀의 시’ 두 권의 시집 장정이 매우 독특해 보였다.
시집 제목의 글씨나 그림이 예사롭지가 않다. 날카롭게 벼린 칼로 단숨에 그은 것 같은 글씨체이다. 흰 까마귀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어떤 결기가 느껴진다. 그럼에도 어쩐 일인지 친근감이 드는 건 왜일까.
그거 내가 쓰고 그린 거야.
형이 수줍게 말했다.
펜으로?
아니 그냥 사인펜으로.
80을 넘겨 살다 보니 내가 단순해져 있더라고. 그래서 그런가. 요즘 시들은 너무 어려워. 난 난해한 건 도무지 못 읽겠어. 화려하게 수식된 시도 그렇고.
사실 초기의 시도 형의 시는 어렵지 않았다. 쉽다는 뜻이 아니다. 형의 시는 우리의 기억을 발갛게 들춰내는 화로의 부젓가락이나 다름없었다. 형의 서정은 쓸쓸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다. 하지만 형의 서정은 삶에 대한 긍정이 숨어 있다.
드라이하지만 촉촉한 울림이 그 안에 담겨있다는 뜻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붉은 단풍잎 하나를 주워왔다. 그리고 그것을 시집 ‘나무 시인’ 책갈피에 끼워 넣었다. 페이지가 인쇄되지 않은 51쪽 2부 ‘가는 길에서’의 갈피였다.
지금 나는 그 단풍잎 잘 마른 시집을 읽는다. 읽는 동안 눈이 내리는 줄도 몰랐다. 잎을 다 털어버린 겨울나무 빈 가지엔 눈이 하얗게 덮여 가고 있었다.
참 따뜻하고 푸근하다. 이 시집을 읽으면 이야기 소리가 조곤조곤 들린다. 어느 날 시인은 쥐눈이콩을 터는 농부가 되어 있고, 어느 날엔 시인은 키 큰 나무가 되어 짱짱한 겨울 하늘을 이고 있다.
그리고 아내의 칭찬에 늘 마음이 설렌다. 종일 웃음이 비어져 나와 마냥 즐겁다. 응달에 놓인 무화과나무 화분을 볕 잘 드는 곳에다 옮겨 놓았더니, 아내가 “아주 잘했어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런 시는 읽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미소를 머금게 한다.
그래서 ‘귀먹은 늙은 아이’인 노시인은 연신 ‘싱글벙글’이다.
“여보!/난 만날 잘하지, 그치?”
얼마나 천진한, 치기 어린 어리광인가. 그냥 일상의 대화가 시가 되는 순간이다. 삶에 대한 진지한 응시와 더 없는 깊음과 쿰쿰하게 발효된 체험이 알게 모르게 우러나야 이런 진국의 시를 쓸 수 있다. 무릇 이런 시를 저절로 써지는 시라 부른다. 무심히 마음을 놓아야 누에가 실을 뽑듯 흘러나오게 되어 있는 것이기에.
아내와 나누는 대화는 늘 고맙고 행복하다.
자잘한 일상이 생의 흐름을 깨닫게 한다. 이웃 노인들의 요양원 이야기, 번개시장 다녀오다 쓰러져 돌아가신 노인의 행복한 죽음, 나도 그렇게 죽으면 웃어달라는 부탁. 그러면 “알았어요, 그러지 뭐.”라고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오랜 시간 함께 한 시인의 아내답다.
그러나 자신의 길이 외롭다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 그래서 “외로움을 뽀득 뽀드득/하얀 발자국으로 깨물며” 혼자서 가는 것이다.
까마귀가 흰 이유는 시에 나온다. 다분히 주관적이지만 어떤 상징성이 느껴진다. 그건 독자들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그런데 놀랍다.
두 권의 시집이 서로 다른 내용이라는 것이다. ‘나무 시인’이 이은무 시인의 개인사와 존재론적 삶의 길을 성찰하고 있다면, ‘흰 까마귀의 시’는 한국이 처한 역사적 현실에 대한 자각과 그에 대한 분노가 직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시집 전편에서 나는 서릿발 같은 분노를 읽는다. 차가운 냉기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이다. 이런 분노의 목소리를 서정시인인 노시인에게서 듣는 일은 매우 낯선 일이다. 그러나 나는 들어야 한다. 그 분노와 차가움, 그것은 우리가 처한 역사적 현실의 답답함을 뚫고 나온 창날이 아닌가.
80이 넘은 노시인의 절망과 희망, 그리고 간절한 염원은 아리랑을 거꾸로 읽는 ‘랑리아’에서 더욱 아름다이 승화하기도 한다.
그것은 이은무 시인만의 독특하고 시니컬한 풍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답답하기만 하다.
외세에 이끌리는 정치가들, 그에 기생하여 부를 누리는 기득권에 대한 분노, 사소한 행복감에도 내면에 잠재된 불덩이를 도저히 억누를 수가 없다.
이런 자각이 시인은 아프다.
그러함에 이은무 시인의 내면엔 미시적인 개인사의 사소한 존재와 거시적인 역사의 흐름이 함께 공존한다.
“아서라/제발 좀 그만/잘 사는 맛에 중독된/아가리들아”
이 노여움의, 이 호통의, 이 간절함의 언어가 흰 까마귀의 시로 변형된다.
시인은 변화하기를 원한다. 시인은 우리 겨레의 뿌리를 알고 그 뿌리가 든든함을 세상에 알린다. 개인과 겨레의 관계를 자각함은 든든한 나무의 근원이기에.
그리하여 시인은 자신의 시를 건널목이라고, 거기 그곳에 시인의 나무가 서 있다고, 건널목은 당연히 건너야 한다고, 손을 맞잡고 따뜻한 온기를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게 말이야
그 아주 쉬운 게, 왜
이렇게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하나로 가는 건널목의
내 시는,
거기 -‘건널목’ 전문
극도로 절약되어 생략된 이 시는 시가 품은 비극적 현실의 표출이고 절창이다. 남북은 하나이지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갈라치기로 전쟁을 이 땅에 심으려 하는 자들에 대한 응징, 서로서로 한겨레임을 자각할 때 아주 쉬운 길이 열림을 시인은 언어의 절삭과 함축을 통해 보여준다.
춘천의 현자 이은무 시인의, 시대를 꿰뚫어 보는 혜안을 나는 믿는다.
비록 나지막하지만 가장 명징한 그 목소리를 나는 믿는다. 이 땅에, 이 하늘에, 시인의 목소리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나는 믿는다.
이은무 시인은 나무이다.
외롭고 쓸쓸한 나무이지만, 늘 자신을 성찰하는 올곧은 나무이다.
이은무 시인은 아직도 두꺼운 사전을 뒤적이고, 수첩이나 종이에다 시를 쓴다.
낚시로 지구를 낚고, 바둑으로 우주의 배꼽을 헤아린다. 그게 취미라면 취미이다. 그에겐 취미도 시가 된다. 그저 평범하게 사는 일이, 그저 알아들을 수 있는 시 한 편 쓰는 일이 시인이 할 일이라 여긴다.
그동안 16권의 시집을 펴냈다.
이은무 시인의 시는 아름답고 진실하고 사색적이지만, 내밀한 분노도 감추지 않는다.
이은무 시인은 말한다. “푸성귀 같은 시, 당신 영혼의 식탁에 슬쩍 올려놓고 싶은 시, 그런 기쁨 그런 보람이 시인에겐 꼭 있어야 한다”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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