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北 무인기 대통령실 부근 지나갔는데 1주일 뒤 알았다는 軍
북한 무인기가 지난달 26일 우리 영공 침범 당시 대통령실 경호를 위해 설정한 비행금지구역(P-73) 외곽을 침범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가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북한 무인기 대응책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이 같은 사실을 보고했다. P-73은 용산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하는 반경 3.7㎞ 구역이다. 마포·서대문·중구 일부가 포함된다. 북 무인기가 당초 군 발표보다 깊숙이 침투해 서울 심장부까지 휘젓고 간 것이다. 국정원은 5일 “대통령실 촬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북 무인기의 P-73 침투 가능성은 영공 침범 당일부터 여러 차례 제기됐다. 하지만 군 당국은 이를 모두 부인하며 문제 제기 자체에 대해 “이적 행위” “근거 없는 이야기에 강한 유감”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비태세검열실에서 무인기 항적을 정밀 분석해보니 P-73을 침범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이 나와 윤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것이다. 심각한 군사 문제가 발생했는데 이를 즉각 알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확인하는 데 무려 1주일이 걸렸다고 한다. 무능에 말문이 막힌다.
북 무인기는 크기와 비행음이 작고 플라스틱으로 제작돼 탐지·추적이 까다롭다. 2014년과 2017년에도 우리 영공을 침범했지만, 한참 뒤 야산에 추락한 것을 운 좋게 발견하기 전까진 그 사실 자체를 몰랐을 정도다. 사실 이런 무인기는 미국도 탐지하기 어렵다. 이번에 우리 군의 탐지 자산으로 북 무인기를 간헐적으로라도 실시간 포착한 것은 진일보한 것이다.
하지만 북 무인기가 레이더에 탐지됐다 소실되기를 반복했다면 처음부터 대통령실 부근까지 침범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 정상적인 군이다. 군은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언론과 야당이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제대로 확인 않고 아니라고 우기기만 했다. 군인이 최선의 경우를 바라고 강변만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민을 속인 셈이 됐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뒤늦게 문제가 되자 “작전 요원들이 (점선 항적을) 북 무인기로 판단하지 않았다”며 실무자 탓을 했다.
국방부는 북한 무인기 대응 전력 확보를 위해 내년부터 5년간 56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첨단 드론 부대 창설은 시급하다. 그러나 북한은 싸구려 무인기를 보내 한국 사회를 휘젓고, 우리는 또 거기에 대비한다고 천문학적 국민 세금을 쓰는 것은 비효율적일뿐더러 효과도 크지 않다. 군은 북한이 다시 우리 영공을 침범할 경우 북 무인기와 똑같은 원시적 무인기를 대량으로 만들어 평양으로 날려 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방공 능력이 없는 북한엔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이런 대비 자체가 북이 도발을 단념하게 만들 수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