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어수웅] “이 아름다운 별에서 나는 대단한 특혜를 누렸습니다”

어수웅 문화부장 2023. 1. 6.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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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례행사라고까지 어깨 힘 줄 생각은 없지만, 새해 벽두면 꺼내 읽는 글이 있다. ‘의학계의 계관시인’으로 불리는 영국 출신 올리버 색스(1933~2015)가 죽기 직전 뉴욕타임스에 보낸 글이다. 제목은 ‘나의 인생(My Own Life)’. 2015년 2월 19일 자다. 신경외과 의사였던 그는 그 한 달 전만 해도 건강하다고 믿었다. 심지어 팔팔하다고까지 느꼈다. 여든한 살이지만 날마다 1.6㎞씩 수영할 수 있는 건강 체질이었으니까. 하지만 청천벽력. 암이 간으로 전이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제는 죽음을 마주하고 있다고 그는 쓴다. 사실 조간신문에서 죽음이란 주제는 금기 중 하나. 그런데 왜 신년 벽두부터 복 없는 소리를 하는가. 죽음을 잊지 않을 때 삶이 온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암을 멈추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주치의에게 듣고 난 뒤 그는 썼다. 남은 몇 개월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온전히 나의 선택에 달렸다,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풍요롭게, 깊이 있게, 생산적으로 살겠다.

한국 최초의 달 탐사 궤도선 다누리가 달 상공에서 촬영한 지구 모습. /항공우주연구원

#2. 새해 첫 신문에는 신춘문예 당선작과 소감이 실린다. 이번에도 1만편 가까운 시·소설·희곡·시조·동화·동시·문학평론·미술평론 투고작, 그리고 그들의 피 땀 눈물이 신문사에 도착했다. 한 당선자의 소감에 눈길이 멈췄다. 스승에 대한 감사 한 줄. 제자의 고마움 표시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시선이 멈춘 이유는 그 스승이 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리버 색스와의 차이점은 단지 자신의 투병을 공개적으로 알린 적이 없다는 것. 신체 여러 부위로 암이 전이됐다는 비보를 들었지만, 그는 조용히 암과 싸우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문화부 기자를 하면서 그 스승 덕분에 당선할 수 있었다는 감사를 신춘문예에서 발견한 것만 벌써 세 번째다. 굴하지 않고 사과나무를 심는 그의 노력이, 나는 경이롭다.

#3. 이번 겨울이 시작되기 직전, 한 작은 시상식에 참석했다. 서울대 인문대 한 강의실에서 열린 ‘제1회 김윤식학술상 시상식’. 동사 ‘읽다’와 ‘쓰다’의 주어로 흔히 비유되는 문학평론가 김윤식(1936~2018) 교수의 학문 정신을 기리자는 의도다. 상금은 1000만원. 당시 신문에는 단국대 김미지 교수가 선정됐다는 한 줄만 짧게 실렸다. 자식이 없었던 김 교수가 작고할 때 평생 모은 30억원을 기부했다는 소식은 많이 알려졌지만, 이 상은 별도였다. 김윤식 글쓰기의 문학적 자궁이었던 동부이촌동 작은 아파트를 팔아 추가로 운영 기금을 마련했다고 했다. 시상 순서가 됐을 때 고인의 아내 가정혜 여사가 옥색 보따리 하나를 펼쳤다. 빛바랜 책 한 권이 고개를 내민다. 문학 연구자들에게는 바이블 대접을 받는, 김 교수의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50년 전 초판본. “김 교수는 살아서 상을 우습게 여겼어요. 상은 감투 같은 건데, 세상을 보니 감투는 아무나 쓰더라면서. 남편이 살아있다면 (나는) 칭찬이 아니라 욕을 먹었을 겁니다.”

새해 들어 알게 된 의학 용어가 있다. ‘가속 노화(accelerated aging)’.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의 글에서 발견했는데, 자연 노화의 상대적 개념이다. 노화는 언제 가속페달을 밟는가. 술과 담배는 물론, SNS와 자극적인 동영상에의 반복 노출, 그리고 이런 ‘과시 사회’에서 혼자만 뒤처지고 있다는 공포도 나를 더 늙게 만든다. 처음에는 즐겁기 때문에 도파민이 분출하지만, 자극이 지속되지 않으면 반대로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온다. 게다가 사람의 뇌는 쾌락을 반복적으로 접하면 그 민감도를 급격히 낮추고, 대신 가속 노화로 삶의 질만 급격히 나빠진다는 사실을 정 교수는 실험 결과로 설득하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늙고 죽는다. 이 과정은 점진적이지만 가차없다. 그러나 노화와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남은 삶을 선택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올리버 색스는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뒤, 정치 논쟁부터 거리를 뒀다. 무관심이 아니라, 거리를 두는 초연함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 친구들, 글쓰기에 집중하면서 평온을 얻었다. 그는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맺었다. “무엇보다 이 아름다운 별에서 나는 지각력을 갖춘 존재였고 생각하는 동물로 한 평생을 살았으니, 그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특혜를 누리고 모험을 즐겼습니다.”

득도해야만 가능한 실천일까. 하지만 우리는 왜 작심삼일이라도 결심을 반복하는가. 그 노력의 와중에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기 때문이다. 새해 첫 주말이다. 메멘토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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