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세브란스병원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면 뽀송뽀송하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환자복을 받는다. 병원이 최적 온도와 습도를 계산해 제공한다. 24시간 돌아가는 병원에서 환자 잠을 해치는 주범은 소음이다. 각종 상자 테이프를 뜯고 싸매는 과정에 소음이 많아 무소음 테이프로 바꿨다. 상자 작업은 별도 밀실에서 한다. 병실 화장실 변기 뚜껑에 소음 방지기를 달아 닫을 때 조용하다. 안대와 귀마개도 무상으로 제공한다.
▶병원 생활에 불만을 제기하는 환자 목소리를 세브란스는 복음(福音)이라고 부른다. 병원 발전에 도움 되는 금쪽같은 의견이라는 의미다. 일주일에 불만 260여 건, 칭찬 270여 건 정도 복음이 들어온다. 모든 불만 사안은 어떻게 개선됐는지 매주 병원장에게 보고한다. 연간 10만명이 넘는 퇴원 환자에게 휴대폰으로 병원 생활에 관한 설문을 보낸다. 병실 게시판에 질문을 적어 놓으면 회진할 때 의사가 답해준다.
▶요즘 웬만한 대학 병원 서비스는 환자 중심이다. 한 대학 병원은 처음 방문한 암 환자에게 경험 많은 간호사가 일대일로 붙어서 치료 과정을 같이하는 ‘환자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피검사에서 위험한 징후가 발견되면 집에 있는 환자에게 응급 문자를 보내준다. 의사 진료 장면을 녹화해 시선을 컴퓨터 모니터보다는 환자 눈에 맞추도록 교육한다. 10여 년 전 병원 기능이 큐어(cure·치료)에서 케어(care·돌봄)로 확대되면서 대학 병원마다 서비스 혁신 센터가 들어섰다.
▶국가고객만족도(NCSI) 조사는 기업과 기관의 품질 경쟁력 향상과 국민 삶의 질 개선을 위해 한국생산성본부가 실시하는 대규모 고객 만족 측정 지표다. 최근 발표한 2022년 NCSI 순위에서 세브란스병원이 전체 1등에 올랐다. 2년 연속이다. 10위 안에 삼성서울, 서울성모, 서울아산, 고대안암, 서울대 등 병원이 무려 7곳이나 올랐다. 10년 전에는 롯데, 조선, 신라 등 호텔이 상위를 차지했는데, 이번에 호텔은 32~267위로 떨어졌다. 서비스 대명사인 특급 호텔은 이제 병원에서 배워야 한다.
▶병원 고객은 다들 몸과 마음이 다급한 응급 상태다. 환자들은 자기 목숨 건져줄 곳을 찾아 병원을 선택한다. 가장 불만이 많이 나올 수 있는 곳이 병원이다. 한때 대학 병원은 불친절, 권위적, 불통의 대명사였다. 그랬던 병원이 이제 고객 만족도 최고가 됐다. 최대 약점을 극복해 최대 강점으로 바꿔놓았다. 아무리 어려워 보여도 혁신하고 헌신하면 바뀐다. 세브란스 병원이 2년 연속으로 입증했다.
김철중 논설위원·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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