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모의 외교포커스] 일본 안보전략 개정을 보고 무엇을 할 것인가
일본이 지난달 16일 새로운 국가안보전략(NSS)을 채택했을 때 국내에서 즉각적으로 주목한 것은 다소 엉뚱하게도 북한 선제타격 가능성과 NSS에 담긴 독도 영유권 주장이었다. 일본이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는 길이 이론적으로 열린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적이지는 않다. 한·미·일 중 누구라도 북한을 공격하면 모두 전쟁에 휘말리는 구조여서 한 나라가 독자적으로 전쟁을 시작하는 일은 생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독도 영유권 주장은 이전부터 있었던 터라 기존의 대응 방식이 이미 존재한다. 일본의 개정 NSS에는 북한 선제타격 우려나 독도 영유권 주장 강화보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일본 방위정책 변화의 배경과 결과를 직시하지 않고 우려와 반대만 하는 것은 현명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
동북아시아 안정의 기초였던 미·중 협력은 끝났다.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변했고 일본의 역할도 바뀌었다. 태평양전쟁 승리 이후 미국은 미·일 방위조약을 체결해 일본을 ‘냉전의 전초기지’로 삼고 평화헌법을 통해 전범국가인 일본의 군사력을 제한하는 대신 경제발전에 주력하도록 했다. 그러나 중국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질서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부상하자 미국은 기존 정책을 뒤집어 일본에 군사·안보적 역량을 키워 중국을 견제하도록 했다. 그 결과 일본은 미국의 강력한 지지 아래 2015년 평화헌법 해석변경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보유했고, 이번 NSS 개정으로 전수방위 원칙을 사실상 폐기했다. 일본은 이제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서 군사적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는 준비를 마쳤다. 중국을 의식해 2019년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파기한 미국은 일본의 반격 능력(미사일 능력) 보유로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 미사일을 일본에 배치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세계화를 이끌어가던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섰음을 의미한다. 또 강대국의 진영 대결이 부활하고 국제질서 유지에 기여했던 다자주의가 소멸됐음을 뜻한다. 미국은 다자협력 대신 전략적 이해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소규모 경제·안보 협력체를 촘촘히 구축해 패권을 유지하려 한다. 한·미·일 협력도 그중 하나다.
일본 NSS 개정은 국제질서 대전환의 산물이다. 미·중 협력시대에 국가 중흥의 기틀을 마련한 한국은 이제 변화를 직시하고 적응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미·중 대결로 촉발된 국제질서 변화는 한국에 심각한 ‘인지 부조화’를 안겨준다. 중국의 위협,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안보 환경 변화를 맞고 있는 일본이 방위력을 강화하려는 것을 반대하기는 어렵다. 또 일본의 방위력 증강은 한국 안보에 긍정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군국주의 세력과 단절하지 못한 일본의 재무장을 마음 편히 바라볼 수는 없다. 또한 미국이 이를 강력 지지하고 한·미·일 안보협력을 추동하는 것에도 어정쩡하다.
일본의 안보전략 변화는 동북아시아의 군비경쟁을 촉발하고 북·중·러의 연대를 굳히는 빌미가 될 것이다. 역내에서 군비경쟁이 벌어지면 가장 큰 피해자가 한국이라는 사실은 이미 역사가 증명한 바 있다. 이 길은 한국이 가야 할 길이 아님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이 흐름을 거부할 수 없다. 이제는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응할 국가전략 없이는 견디기 어렵다.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출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외치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한·미·일 안보협력을 확대하고 군비를 늘려가면서도 한국의 목소리를 키우고 중·러와 외교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둬야 한다. 일본의 방위력 증강이 한국과 주변국의 신뢰를 얻으려면 과거사 문제에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한·미·일의 틀을 이용해 설득해야 한다. 동시에 한국의 위치를 역이용해 한·중·일 협력을 재가동하고 역내 평화 유지를 위한 안전판을 확보해야 한다.
정해진 답이나 마찬가지인 이 같은 국가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이 어려워 보이는 이유는 전략적 능력이 부족해서만이 아니다. 국가전략을 진영 대결로 인식하는 퇴행적 사고를 접고 초당적 이해와 협력이 이뤄진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NSS 개정은 한국의 외교안보 전략에 가장 크게 필요한 것이 진영논리를 초월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현실 인식임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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