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제대로 던지는 학생 드물고 비만·과체중이 30%… ‘저체력’ 방치 언제까지

김민철 논설위원 2023. 1.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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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의 뉴스 읽기] 위기의 학교 체육

“학생들 체력 저하가 현장에서 보면 깜짝 놀랄 정도다. 공을 던지는 폼이 나오는 애들이 반에 몇 명 없고 100미터를 전력 질주할 수 있는 아이가 많지 않다. 공을 제대로 차는 아이도 별로 없다. 반면 비만·과체중 학생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광명 운산고 임성철 체육 교사는 “21년째 현장에서 아이들 체력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다. 아이들이 점점 신체적으로 바보가 되고 있는데, 우리 사회가 방치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체력 저하가 심각해 획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학교체육교육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덕성여고 학생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 /허상욱 스포츠조선 기자
자료=교육부

◇청소년 신체 활동 세계 최저 수준

청소년 체력이 떨어지고 비만·과체중이 느는 것은 각종 통계가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11월 교육부가 공개한 ‘2021년 학생 건강 검사 표본 통계’를 보면, 전체 초·중·고교 학생 가운데 비만 학생 비율은 19.0%로 2019년(15.1%)에 비해 3.9%p 늘었다. 과체중 학생 비율 역시 2019년 10.7%에서 2021년 11.8%로 1.1%p 증가했다. 30%가 넘는 학생이 비만·과체중인 것이다. 코로나가 영향을 미친 것을 감안하더라도 증가 폭이 심상치 않다.

매년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학생건강체력평가(PAPS) 자료에서는 저(低)체력 학생이 뚜렷하게 증가했다. 100점 만점에 40점 미만 학생을 저체력으로 구분하는데, 저체력 비율이 2018년 11.3%에서 지난해 16.6%로 50% 가까이 증가했다. 고교생은 이 비율이 2017년 14.1%에서 2019년 16.1%로 늘더니 2020년에는 21.4%로 4.3%p 뛰었다. 2020년 고교 1학년의 저체력(남 20.5%, 여 14.8%)을 고교 3학년의 저체력(남 29.5%, 여 20.9%)과 비교해보면 대학 입시가 학생들 체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정도면 대입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학생들 신체 활동이 부족한 것은 다른 연령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잘 드러난다. 정부가 지난해 1월 발표한 ‘국민생활체육조사 결과’를 보면 주 1회 이상 규칙적으로 체육 활동을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7년 59.2%에서 2021년 60.8%로 증가했다. 그러나 10대는 이 비율이 2017년 60.4%에서 2021년 55.0%로 크게 감소했다. 한창 성장할 시기인 10대가 전 연령을 통틀어 가장 적게 체육 활동을 한 것이다. 심지어 70대(58.3%)보다도 참여율이 낮았다. 57국 소아·청소년 신체 활동 전문가들이 지난해 10월 내놓은 ‘글로벌 매트릭스’ 조사에서 우리나라 청소년의 신체 활동 참여 점수는 D-를 받았다. 참여한 57국 중 공동 37위로, 세계 최저 수준이었다.

◇”그나마 학교 체육 아예 사라질 지경”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학교 체육마저 위축될 상황이라는 점이다. 학교 체육은 학생들이 거의 유일하게 안전한 신체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주당 1~2시간의 체육 수업 시간이 없다면, 하루 1만보는커녕 1천보도 걷기도 힘든 것이 요즘 아이들의 일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난해 7월 전국 중고교 체육 교사 1400여 명은 “이러다 학교에서 체육 수업이 아예 사라질 지경”이라며 성명서를 발표했다. 체육 교사들은 “고교 전 학년 중 한 학년은 일주일에 1시간만 체육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전국 수많은 고교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고교학점제를 시행하면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했다. 고교학점제 실시를 앞두고 고교생이 3년 동안 이수해야 할 학점이 줄면서(204단위→192단위) 체육 시간을 줄이는 학교가 늘고 있으니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얘기였다.

주요 교육 선진국이나 세계 명문 학교들이 오래전부터 체육을 중시하는 것은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는 상식이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 체육 수업이 체력 향상은 학업 능력 향상, 정서적 안정, 사회성 강화 등 효과가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교육과정평가원의 ‘수업 시수 국제 비교 연구’ 자료를 보면 프랑스는 학교 체육 수업이 우리의 2배 가까이에 이르고, 고교는 일본의 체육 수업 시간이 우리보다 35% 정도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영국 이튼스쿨 등 주요 명문 학교 교과과정에서 가장 비율이 높은 과목이 체육이다. 체육 시간이 전 교과의 25%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획기적인 학교 체육 정책 절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체육 수업을 늘려도 시원찮은데 오히려 줄어들 위기에 처한 것이다. 임성철 교사는 “다른 교육 선진국에 비해 체육을 너무 홀대하고 있다”며 “지금처럼 당장 눈앞의 결과에만 집착하면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이따금 학교 체육 활성화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사실상 말뿐이다. 올해 학교 체육 활성화 예산(512억원)은 지난해에 비해 큰 폭 늘었다지만 여전히 올해 초중등 교육 예산 80조9120억원의 0.06%에 불과하다.

시도 교육청별로 개선 움직임이 없지는 않다. 부산교육청은 올해부터 학생들이 수업 전 30분 운동으로 땀 흘리게 하는 프로그램을 시범 도입하기로 했다. 올해 초·중·고교 52곳에서 시범 운영하고, 성과를 봐서 하윤수 교육감 임기 중 모든 학교로 확대하기로 했다. 미국 일리노이주 네이퍼빌에 있는 한 고교가 0교시에 전교생이 1.6km 달리는 체육 수업을 배치해 놀라운 학습 능력 향상을 보인 ‘네이퍼빌의 혁명’을 기대하는 것이다.

하나고같이 교육 여건이 좋은 학교는 체육 활동 한 가지를 필수적으로 이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하루 90분씩 일주일에 두 차례 체육 활동을 하게 하고 있다. 이 학교에서도 초기에는 ‘대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학부모 반발이 있었지만 학생들이 워낙 좋아해 지금은 싹 사라졌다. 다른 시도 교육청, 개별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신체 활동을 늘릴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김택천 대한체육회 학교체육위원장은 “지금 학교 체육은 주당 1~2시간 흉내 내다 끝내는 정도”라며 “국·영·수 같은 눈앞의 성과에만 집착하지 말고 국가 미래를 바라보며 체육 시간을 늘리는 등 획기적 학교 체육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체력을 대입에 반영하는 것은 어떨까

학생들 체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문제를 풀 대책으로 체력을 어떤 식으로든 대학 입시에 반영하는 것은 어떠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971~1993년엔 대입 체력장 제도가 있었다. 이 제도는 청소년 체력 향상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체력장 도중 일어난 사망 사고와 점수 변별력 논란으로 1993년 폐지됐다.

현재는 ‘학생건강체력평가제도(PAPS·팝스)’를 시행 중이다. 2009년 초등학교에서 시작해 2011년 고등학교까지 확대했다. 학생의 건강 상태를 평가해 알맞은 신체 활동을 처방하고 학생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1년에 한 번씩 근력과 순발력, 심폐 지구력, 유연성, 체지방 등을 측정하는데, 나이와 성별에 따라 등급 기준이 다르다. 주로 체육 교사들이 체육 시간에 학생들 체력을 개별 측정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전 체력장이 단순히 빠르기·횟수 측정에 그쳤다면 팝스는 신체의 전반적 능력을 다양하게 측정한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를 대입이나 체육 점수에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팝스라는 인프라도 갖추고 있는 만큼 팝스를 보완하면 학생들 체력을 대입에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김연수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학생들 신체 활동을 어떤 식으로든 대입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며 “예전 체력장처럼 큰 점수를 배정할 필요는 없더라도 ‘체력이 좋고 신체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 대입에 유리하다’는 인식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팝스에서 5등급(100점 만점에 0~19점), 4등급(20~39점)을 받으면 저체력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를테면 대입에서 5등급은 만점에서 마이너스 2점, 4등급은 마이너스 1점과 같은 방식으로, 상징적으로라도 대입에 반영하면 체력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운산고 임성철 체육 교사는 “만약 팝스를 대입에 활용하려면 측정의 정확성·객관성을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학생들의 대입 부담이 큰데 반영 항목을 늘리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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