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설날’ 가족 변화에서 미래를 보자
덕담 영상도 만들어 공유…기존 공간·생각 벗어나길
신명준 부산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설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 첫 아침을 맞는 명절로 한 해의 최초 명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설은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볼 때 신라 21대 소지왕 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고려와 조선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오래된 명절인 설은 원래 음력 1월 1일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음력설을 새로운 설이 아닌 ‘구정’으로, 양력 1월 1일을 새로운 설이라는 의미로 ‘신정’이라고 구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이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으로 민족 고유의 설을 부활시키기로 하고 음력 1월 1일을 1985년 공휴일로 지정했다가 1989년에 섣달그믐부터 음력 1월 2일까지 3일간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설날에는 우리를 현재에 있게 해 준 조상을 기억하면서 차례를 지내고, 가족끼리 서로 절하며 새해 인사를 올리는 세배를 드렸다. 그리고 늘 만나지 못했던 가족이 다 모여서 떡국을 먹었다. 떡국에 들어가는 떡은 긴 가래떡을 엽전과 같은 돈이나 태양처럼 동그랗게 썰었는데 이는 재물의 복을 상징했다고 한다. 긴 가래떡은 장수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 자리에 모여서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 서로의 안부와 소식을 전하고 난 뒤에는 온 가족이 모여서 윷놀이를 했다. 윷놀이는 인원 제한 없이 재미있게 온 가족이 할 수 있는 놀이이면서 농경사회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소망이 담겼다. 윷판은 농토, 말은 놀이꾼이 던져 나온 윷 패에 따라 움직이는 계절의 변화를 상징하는데 즉 미래의 소원을 놀이로 빌었던 것이다. 연날리기는 모든 나쁜 기운을 날려 보낸다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옛날에는 새해 아침에 문이나 벽에 복조리를 걸어두었다고 한다. 복조리는 옛날 밥 짓기 전 쌀을 거를 때 그 안에 섞여 있는 돌이나 지푸라기를 골라내는 도구인데, 이는 복을 일궈서 얻는다는 뜻이 담겼다. 복도 운이 아닌 노력으로 얻고자 한 조상을 가진 민족이 어떻게 잘 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국인이 부지런하게 열심히 사는 것은 민족 본성이 아닌가 한다.
설날은 우리가 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공간인 집을 특별한 장소로 바꾸었다. 평상시는 일상적인 집이었고 사람이 꽉 차지 않은 빈 공간이었지만, 그곳에 반가운 사람들이 찾아와서 결합하고 관계와 경험을 담아서 추억의 장소를 만들어줬던 것이다. 교통이 불편해서 힘겹게 찾아간 시골집, 많은 사람이 부딪히며 일상보다 더 힘든 가사노동도 많았지만 그때의 추억 때문에 지금도 시골집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공간이 부모님 집일 필요는 없다. 다 같이 모여서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공유하며 미래의 안녕을 서로 즐겁게 성원해주면 된다.
코로나19가 만든 현재를 다시 되짚어보자.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반강제적으로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경험했다. 온라인 쇼핑·교육·회의, 원격근무, 무인화, 자동화 서비스 등 디지털 경제가 가속화되면서 사람의 활동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몇 시간을 이동해 만나던 곳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곳에서 설날을 지내는 것도 고민해볼 수 있다. 이동시간과 명절음식 준비 시간을 절약해 가족끼리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간편하게 제사를 지낼 수 있는 방법도 생겼지만, 조상을 추억하는 디지털 영상을 같이 시청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볼 수도 있다.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잡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으며, 친구들과 힙한 방법으로 소통하는 인스타그램을 손자 손녀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가르쳐줄 수도 있다. 가족이 모여서 먹는 음식을 눈으로 보고 고를 수 있는 배달앱을 서로 공유하고 맛집을 찾아내는 비결을 알려줄 수도 있다. 무릎이 아프신 할머니에게 매일 따라할 수 있는 동영상을 찾아서 스마트폰에 저장해줄 수도 있다.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영감을 얻어서 웹툰을 그려볼 수도 있다. 사람이 있고,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공간이라도 새로운 의미의 장소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 편의점을 물건 사는 ‘공간’에서 안심 택배를 받을 수 있는 ‘장소’로 바꾸었듯이, 설날 가족이 만나는 곳이 어디이든지 간에 그곳을 새로운 장소로 바꾸어야 한다.
가족이 기존 공간과 생각에서 벗어나면, 개인의 시간을 더 즐겁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의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는 이렇게 가족 간 관계와 경험에서 출발해야하지 않을까? 어른들이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았으면 한다. 새로운 세대가 그들만의 기준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수 있도록 젊은이의 행동들을 지지해주고 그들의 방식에 어울려줄 수 있는 나이든 친구가 되어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설날에는 가족끼리 서로의 덕담을 한편의 영상으로 만들어보고 친구들에게 자랑해보는 캠페인을 해보면 어떨까? 직장과 결혼 이야기를 물어보는 꼰대가 있다면 꼭 영상에 남겨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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