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에 과학 한 스푼] 바나나 칩의 비밀
오랜만에 방문한 태국의 야시장은 여전히 불야성입니다. 인파에 휩쓸려 이곳저곳 신기한 음식들을 구경하던 중 반가운 곳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튀김집입니다. 야채, 고기, 생선 등 튀김의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그중 유독 인기 있는 것은 바나나 튀김입니다. 조금 두툼하게 썰어놓은 바나나에 튀김옷을 입혀 튀겨낸 것인데, 바삭하고 고소하면서도 매우 강렬한 단맛이 일품입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튀긴 바나나칩을 쌓아놓고 파는 노점상 앞에 절로 걸음이 멈췄습니다. 얇게 썬 바나나를 튀김옷 없이 튀겨내어 과일 고유의 풍미를 더 강조했고, 게다가 바삭한 과자를 씹는 듯하니 간식이나 안주용으로도 딱 적당해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얇은 바나나 칩이 고온에서 튀겨졌는데도 그 형태가 거의 그대로 잘 유지되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기만 합니다. 여기엔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일까요?
튀김은 그 재료에 따라 기름 온도를 조절합니다. 예를 들어, ‘덴푸라’의 경우 어패류는 190도 정도에서 조리하지만, 열에 약한 야채류의 경우는 170도에서 짧게 튀겨내죠. 그런데 바나나와 같은 과일은 야채류보다 더 열에 취약합니다. 얇게 썬 재료일수록 더 그러하기 때문에 기름 온도를 더 낮춰야 하지만, 문제는 그러면 기름이 끓지 않아 대류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순환하는 대류가 없으면 열이 골고루 전달되지 않아 튀김이 잘 만들어지지 않죠. 이를 위해 고안된 것이 바로 ‘진공 튀김기’입니다. 많이들 아시는 이야기이지만 높은 산에 올라가 밥을 지으면 밥이 설익습니다. 그 이유는 기압이 낮아 물의 끓는점이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진공 튀김기는 이 원리를 이용합니다.
밀폐된 튀김용기 안을 진공상태로 만들어 기름의 끓는점을 낮춘 것인데요. 그런데 사실 과학적으로 진공이라는 것은 공기 입자가 거의 없는 상태를 말하지만, 실제로 진공 튀김기는 그 정도까지는 공기를 제거하지 못합니다. 펌프를 이용해 최대 0.03기압, 그러니까 우리 주변의 공기보다 100분의 3 정도까지 공기 입자 수를 줄일 뿐입니다. 따라서 정확하게는 ‘저압 튀김기’라 부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여하튼 이 0.03기압만 하더라도 얇은 과일칩을 튀기는 데는 큰 도움이 됩니다. 보통은 150도 이상에서나 가능했던 기름의 대류현상이 80도 이하에서도 일어나기 때문인데요. 따라서 훨씬 낮은 온도에서도 제대로 된 튀김요리가 가능해집니다. 물론 연약한 과일의 육질이 손상되는 것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고온의 조리에서 우려되는 유해물질의 생성도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기술은 원래 감자칩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개발되었다고 합니다. 감자칩은 오랫동안 보관하여 가격이 저렴해진 감자를 주로 사용하는데, 문제는 이 감자들의 육질이 매우 연약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얇게 썰어 칩의 형태로 튀기는 것이 쉽지는 않죠. 하지만 압력이 낮은 상태라면 저온에서 튀기는 것이 가능해져 온전한 감자칩 형태를 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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