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규의 외교만사] 격변의 국제정치, 자강이 그 답이다
새해 벽두부터 한국이 직면한 외교·안보적 도전은 설상가상이다. 우선, 남북한 간 대립의 파고가 심상찮다. 북한과 한국은 모두 국제정치에서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 할 수 있는 대칭적 대응방식(tit-for-tat)을 넘어서서 위기를 격상시키는 전략을 채택한 듯하다. 북한은 이미 2022년 9월8일 핵무력 정책법령의 채택을 선포하며, 북한의 핵보유국 의지는 불가역적이라 선언했다. 미·중 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러시아와 중국에 북한의 지정학적·전략적 중요성을 대폭 강화시켰다.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고, 주한미군을 방어 불능의 상황으로 만들 수 있다. 북한은 거의 도발의 자유재량권을 확보한 듯하다.
북한의 지난달 26일 드론 도발에 강하게 반발한 윤석열 정부는 두세 배의 응징 방침을 밝히면서, 대북 유화·관리 정책에 집중한 문재인 정부와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확전 대응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에 북한은 2022년 말 당중앙 8기 6차 전원회의에서 전술핵의 대량 생산과 선제타격 가능성을 재차 강조하고, 한반도 전역 타격이 가능한 초대형 방사포 30문의 배치를 언급했다. 1월 첫날, 새해 벽두부터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남북한 간의 긴장 고조 수준은 아마도 1994년 북한의 제1차 핵실험, 2017년 제6차 핵실험 직후보다 더 강해 보인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가능성도 열렸고, 한국의 대북 안보적 취약성은 전례 없이 커졌다.
남북 모두 위기 격상 전략 채택
미국의 자국 중심주의도 강화되고 있다. 그간 미국이 주도한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한국에 축복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적인 차원의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유지할 의지와 역량을 상실하고 있다. 대신, 강력히 떠오른 경쟁자인 중국을 약화시키고 억제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국제관계를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가치 대결로 해석하면서 가치 중심의 공급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향후 더욱 강화되면서, 중국에 적대적인 대미 순응 정책을 한국에 요구할 것이다. 물론 이는 한·중 간의 적대적인 마찰 가능성을 증대시킨다.
러시아는 미국이나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 구축에 반발하면서 자신의 전통적·지정학적 영향권을 존중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는 이제 보다 다극화된 방향으로 진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사태는 그렇잖아도 취약한 기존의 국제질서에 돌이킬 수 없는 충격을 가져왔다. 기존 주권과 영토 존중의 묵계가 무너지고, 금기시되었던 핵무기 사용도 공공연하게 정책의 수단으로 언급되면서, 실제 사용할 기세이다. 정글의 세계가 가까이 온 듯하다. 러시아는 이미 2022년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했고, 핵을 보유한 북한과의 연대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시진핑 3기의 중국 외교의 저류는 수세적이나, 외양은 공세적이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 전망은 크게 약화되었고 장기적인 전략경쟁 상황에 놓이면서, 중국의 전략은 보다 신중해졌다. 내재적 역량 강화에 우선하면서, 노골적이고 강압적인 ‘전랑외교’ 대신 보다 인내심 있는 화전(和戰) 양면전략을 결합하고, 경제적 토대 구축에 더 집중할 것이다.
다들 우려하는 바처럼, 대만 문제에 대한 공세를 더 강화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무력 사용의 어려움으로 인해 중국의 예봉은 동맹의 균열을 초래하기 위해 한국을 향할 수도 있다. 한국은 상호의존의 다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는 30%로 반도체 수출은 60%, 반도체 핵심 재료 수입은 60%에 달하고, 1800여개 품목의 수입의존도는 80% 이상이나 된다. 이는 10∼20년 내에 대체할 수준의 취약성이 아니다. 반론도 존재하지만, 금세기 전반기에 중국이 미국의 경제규모를 추월할 것이란 예측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한·중관계는 점차 충돌 상황으로 가고 있다.
일본은 정상적인 민족국가를 구성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그 핵심은 경제력에 상응하는 군사적 역량을 확보하고, 역내에서 중국을 견제하며,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GDP 1%대의 방위비는 5년 내 2%대로 급격히 증대할 것이다. 일단 힘에 부친 미국은 이를 환영하지만, 그 역내 파장은 예측하기 어렵다. 독도·역사 분쟁을 겪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입김과 영향력이 더 강해질 일본을 상대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한·일관계 개선은 양측의 국내정치 사정으로 인해 조기에 결론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신냉전론 수용 신중에 신중 기해야
아직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을 담은 국가안보 전략서를 내지 않은 윤석열 정부는 최근 대북 확대 응징 방침과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그 일단을 내비쳤다. 가치에 기반한 한·미 동맹 강화,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대북 강공, 대중국 견제와 관리, 대러시아 억제 정책, 동북아를 넘어선 다자적 협력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한다. 방점은 여전히 가치동맹에 있다. 통상국가인 한국에 ‘신냉전’으로 세계를 해석하거나 그러한 방향으로 국제질서가 새로이 재편되는 과정은 치명적이다. 신냉전의 논리를 수용하는 것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와는 확연히 다른 세계이며, 북한의 역량도 다르고, 미래 국제정치 과정도 다를 것이다. 전무후무한 불확실성과 불안정이 우리의 근저를 배회하고 있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고, 가보지 않은 길을 직면한 윤석열 대통령 주변에 지나치게 확신에 찬 목소리는 일시적인 해갈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은 독이 될 개연성이 크다. 국가의 역량이 자강, 동맹, 국제연대의 합이라면, 현재의 조건하에서 미·중을 포함한 모든 국가들은 자강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독일 숄츠 총리의 방중은 그 극적인 예이다. 동맹과 국제연대는 보조적인 수단이다. 동맹의 논리에 익숙한 한국의 외교·안보 라인은 자강이 주가 되는 신시대에 대비해 새로운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국익을 위한 모든 시나리오를 검토해야 할 시기다. 당파적인 국제정치 사고가 지배하고, 국론이 분열된 상황에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여야, 보수와 진보 모두가 새로이 직면한 도전 앞에서 겸허해야 한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미국 조지워싱턴 대학 방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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