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토 16세 영면... 221년만에 現 교황이 장례미사 집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미사가 5일(현지 시각)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현 교황의 주례로 엄수됐다.
지난달 31일 선종(善終)한 베네딕토 16세는 생전 간소한 장례식을 원한다는 뜻을 밝혔으나, 교황청은 현직 교황의 장례미사와 거의 같은 절차로 진행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장례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추기경 125명, 주교 200명, 성직자 3700명을 포함해 6만여 명이 바티칸을 찾았다.
이날 오전 8시 45분쯤 12명의 운구 인원이 성베드로 대성전에 안치됐던 베네딕토 16세의 관을 성베드로 광장 야외 제단으로 옮겼다. 장례를 집전한 프란시스코 교황은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다.
9시 30분, 바티칸 시스티나 합창단의 성가가 울려 퍼지며 장례미사가 시작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관에 성수를 뿌리고 향을 피운 뒤 라틴어로 강론을 했다. 교황은 “그(베네딕토 16세)는 수년간 우리에게 지혜, 친절함, 헌신을 보여줬다”라며 “예수의 신실한 친구 베네딕토여, 이제부터 영원토록 예수의 목소리를 들으며 당신의 기쁨이 충만하기를”이라고 말했다. 장례미사가 끝난 뒤 베네딕토 16세의 관은 역대 교황 91명이 안장된 성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에 안치됐다.
교황청 바티칸뉴스에 따르면, 현직 교황이 전직 교황의 장례미사를 직접 집전한 것은 221년 만이다. 1802년 비오 7세 교황이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에 납치됐다가 선종한 전임 교황 비오 6세의 장례식을 집전한 이후 2000여 년 교회 역사상 전직 교황의 장례 미사를 현직 교황이 집전한 두 번째 사례다.
역대 교황의 장례미사는 대부분 수석 추기경이 집전했지만, 베네딕토 16세의 경우 2013년 건강 문제를 이유로 스스로 교황직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전·현직 교황이 공존할 수 있었다. 베네딕토 16세는 자진 사임 후 모국인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바티칸의 한 수도원에서 지내왔다.
한편 교황청은 지난 2일부터 사흘간 일반 조문객 약 20만명이 베네딕토 16세의 시신이 안치된 성 베드로 대성전을 찾아 조의를 표했다고 밝혔다. 수많은 인파를 통제하기 위해 현장에는 1000명이 넘는 이탈리아 보안 요원들이 자리를 지켰고, 인근 영공은 이날 하루 동안 폐쇄됐다. 이탈리아는 국가 전체에는 조기가 게양됐다.
앞서 교황청은 베네딕토 16세가 현직 교황이 아닌 점을 고려해 바티칸이 속한 이탈리아와 전임 교황의 모국인 독일 대표단만 공식 초청했다. 이외에 필리프 벨기에 국왕을 비롯한 전 세계 13국 지도자가 개인 자격으로 성베드로 광장을 찾아 조의를 표했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 나라는 주교황청 대사가 정부 대표로 장례미사에 참석했다. 한국에서는 오현주 주교황청 대사를 비롯해 염수정·유흥식 추기경과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 등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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