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극 132조원 시장, 전업 유튜버 절반 1년에 128만원 못 번다

안상현 기자 2023. 1. 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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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ver Story] 급성장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세계
그래픽=김의균

영화 해리포터에서 주인공 일행을 괴롭히는 동급생 드레이코 말포이 역으로 유명한 영국 배우 톰 펠턴(35)은 지난 2018년부터 부업을 시작했다. 2017년 등장한 미국의 유료 영상편지 플랫폼 ‘카메오’에서 맞춤형 영상편지를 판매하는 일이다. 약 76만원을 결제하면 고객이 주문한 대로 생일 축하나 응원 메시지를 담은 1분 안팎 영상편지를 보내준다. 누가 이런 영상에 수십만원을 쓸까 싶지만, 그에게 달린 서비스 이용 후기만 596개에 달한다.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그가 벌어들인 돈은 최소 4억5000만원이 넘는다. 지난달 그의 영상편지 서비스를 이용한 벨라나는 “크리스마스에 딸에게 이 영상을 전해주면 딸은 기뻐서 말문이 막힐 것”이라며 “(톰 펠턴이) 딸의 이름도 제대로 말해줬다”는 후기를 남겼다.

영국 배우 톰 펠턴(35)이 팬 맞춤형 영상편지 판매 서비스 플랫폼 '카메오'에서 활동 중인 모습. 요금을 결제하면 구매자 요청에 맞춰 1분 남짓의 각종 축하·응원 영상편지를 보내준다. /카메오

펠턴처럼 카메오에서 영상 판매자로 활동하는 배우는 5800여 명. 운동선수와 코미디언, 뮤지션 등 다양한 분야 인사를 합치면 지난 1일 기준 총 2만9492명이 등록돼 있다. 이른바 FBNR(Famous But Not Rich folks)이라 불리는 인사들로, 유명하지만 부유하진 않은 조연급 인사들을 콘텐츠 제작자로 끌어들여 새로운 플랫폼을 만든 것이다. 2017년 출시한 카메오는 소문을 타고 빠르게 성장해 기업가치 10억달러가 넘는 유니콘이 됐고 지난 2021년에만 1억달러를 벌어들였다.

개인이 자신의 창작물을 기반으로 온라인 플랫폼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를 뜻하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창작자 경제)’ 생태계가 갈수록 커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빅테크(거대 기술 기업) 플랫폼뿐 아니라 카메오같이 분야별 틈새 시장을 공략한 강소 플랫폼까지 대거 등장하며 더 많은 크리에이터를 길러내는 시스템이 구축된 것이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Creator Economy·창작자 경제)

개인 창작자(크리에이터)가 자신의 창작물을 기반으로 수익을 올리는 비즈니스 생태계 또는 전체 산업을 의미하는 실리콘밸리 용어. 유튜브·틱톡·인스타그램·트위치 등 개인이 콘텐츠로 돈을 벌 수 있는 플랫폼이 늘어난 201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전 세계 3억명 “나도 크리에이터”

링크트리 등 시장조사기관들은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시장 규모가 지난 2021년 1042억달러(약 132조원)로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대비 두 배 이상 성장했다고 추산한다. 대표 플랫폼인 유튜브의 경우, 1500만명의 크리에이터가 매 분마다 약 500시간 분량의 동영상 콘텐츠를 만들어 공급하고, 매일 1억2200만명 이상이 찾아 50억개 이상의 동영상을 시청한다. 그 덕분에 지난 2006년 16억5000만달러로 구글에 인수됐던 유튜브는 지난 2021년에만 288억5000만달러(약 36조5800억원)의 광고 매출을 벌어들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 2021년 하반기부터 서구권을 중심으로 불거진 직장인들의 대규모 자발적 퇴사 열풍도 많은 사람이 크리에이터 시장에 뛰어드는 계기가 됐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가 대사직 열풍(The Great Resignation)이 한창이던 지난 2021년 11월 유럽 직장인 1만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약 10%가 향후 6개월 내에 본업을 그만두고 크리에이터로 전업하는 걸 고려 중이라고 답했다. 또 응답자 중 36%는 이미 “유튜브·틱톡 같은 콘텐츠 제작 플랫폼이나 전자상거래로 부수입을 벌고 있다”고 응답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특히 퇴사 위험이 높은 IT와 금융, 엔지니어링, 제조 분야 사무직 노동자 중에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해 본업을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국내에서도 팬데믹을 거치며 크리에이터가 크게 늘었다. 한국전파진흥협회의 2021년 1인 미디어 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1인 미디어 콘텐츠 창작자 소득신고 인원은 2019년 4875명에서 2020년 3만3065명이 돼 1년 만에 7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이들이 벌어들인 연간 총소득만 4521억원에 달했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초등학생 희망 직업 조사에서도 크리에이터는 의사, 경찰관 등을 제치고 3위에 올랐다. 어도비는 지난 8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오늘날 전 세계 크리에이터가 3억300만명에 달하며, 이 중 1억6500만명이 2년 사이 새로 편입됐다고 분석했다.

◇다변화하는 창작자 플랫폼

늘어난 크리에이터 만큼이나 플랫폼도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2017년 서비스를 시작한 아웃스쿨은 미국과 캐나다 현지 전·현직 교사와 각 분야 석·박사 출신 전문가들을 끌어모아 3~18세 아이를 대상으로 한 원격 교육 콘텐츠를 판매한다. 2020년 3월만 해도 이곳에서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교사는 1000여 명에 불과했다.현재는 1만명의 교사가 영어와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역사 같은 일반 교과목은 물론 우쿨렐레와 클라리넷, 한국어, 힙합 댄스, 분자 요리법 등 14만개가 넘는 다양한 주제로 183국 100만명 이상의 어린이에게 실시간 화상 수업을 제공 중이다. 이들이 아웃스쿨에서 지금까지 벌어들인 누적 수익만 1억3900만달러(약 1769억4700만원)에 달한다. 구인·구직 사이트 인디드닷컴은 아웃스쿨에서 활동하는 교사들의 평균 시급은 25.75달러로 미국 교사들의 평균 시급(16.84달러)보다 53% 높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한 아이가 홈스쿨링 콘텐츠 플랫폼 아웃스쿨을 통해 실시간 화상 수업을 진행하며 닭에게 모이를 주는 모습. /아웃스쿨

공연장이 폐쇄되고 거리에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가난해진 예술가들도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덕을 봤다. 2013년 등장한 플랫폼 패트리온은 미술·음악·소설·사진·영상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통해 현재 기업가치 40억달러에 달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크라우드 펀딩과 정기 구독형 멤버십을 합쳐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가를 매달 정기 후원하고 그 대가로 선행 또는 독점 작품을 제공받거나 창작 과정이나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현재까지 800만명 넘는 활성 후원자를 끌어들였다. 25만명에 달하는 패트리온 크리에이터는 지난해 2분기까지 35억달러(약 4조4170억원)를 지급받았는데 이 중 20억달러(약 2조5360억원)를 2021년 한 해 동안 벌어들였다.

이 밖에 게임 제작 도구와 판매망을 제공해 매일 5000만명이 접속하는 플랫폼 로블록스, 뉴스레터 플랫폼으로 유료 구독자 100만명 이상을 확보한 서브스택, 패트리온과 비슷한 사업 모델로 성인물에 특화돼 재작년에만 48억달러를 벌어들인 온리팬스 등 이제는 하나의 산업이라 할 만큼 다양한 기업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황선경 수석연구원은 “크리에이터의 독립적인 수익 창출을 지원하는 글로벌 스타트업이 성장하면서 크리에이터들이 유튜브 같은 대형 플랫폼을 이탈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활고 시달리는 크리에이터

크리에이터 이코노미가 활성화되면서 수많은 일자리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내고 있지만, 동시에 그림자도 그만큼 짙어진다. 가장 빈번하게 지적되는 건 창작자들에게 턱없이 불리하게 돼 있는 수익 배분 구조다. 유튜브에선 구독자 1000명과 지난 1년간 콘텐츠 시청시간 4000시간을 충족해야 창작자가 광고 수익을 나눠 받을 수 있는데, 이마저도 45%를 수수료로 떼간다. 다른 플랫폼은 더 심하다. 틱톡에선 그간 팔로어를 늘린 뒤 외부 제휴 광고를 통해 돈을 벌 수 있을 뿐 플랫폼 수익을 배분받진 못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사용자가 올린 게시물 옆에 광고를 배치해 1년에 각각 920억달러, 34억달러 매출을 올렸지만 콘텐츠 제작자에게는 한 푼도 나눠주지 않았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대형 플랫폼이 콘텐츠에 대한 책임은 안 지면서 공짜로 창작자들을 부려 이익을 착취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 때문에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전업 창작자들은 생활고에 시달린다. 링크트리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업 크리에이터 중 46%가 연간 1000달러(약 128만원) 미만을 번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전업 근로자의 평균 급여(2022년 2분기 기준 5만4132달러) 수준인 5만달러(약 6378만원) 이상을 버는 전업 크리에이터는 12%에 불과하다. 인플루언서스 클럽의 콘텐츠 마케팅 전문가 네다 팝 안도노프는 “광고 수익으로만 생계를 유지하려면 100만명의 활성 구독자가 필요하다”며 “전 세계 크리에이터 2억명 중 팔로어 100만명 이상을 보유한 이는 단 200만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패트리온 창업자인 잭 콘테가 스스로 플랫폼을 만들어 수수료를 5%로 낮게 책정한 것도 무명 뮤지션 시절 유튜브에서 겪은 좌절 때문이다. 창업 전 그는 저금을 털고 신용카드 2장을 한도까지 긁어모은 1만달러로 일렉트로닉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는데, 공개 첫해 100만뷰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할 만큼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이 영상이 첫 달 낸 수익은 54달러에 불과했고 이후 수익을 합쳐도 1000달러 수준에 그쳤다. 이를 두고 그는 “창작자로서 그때가 최악의 바닥이었다”며 “창작자에게 최대한 많은 돈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패트리온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크리에이터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플랫폼이 다양해질수록 자극적이고 불법적인 콘텐츠가 범람하는 것도 문제다. 콘텐츠에 특별한 제약을 두지 않는 영국 플랫폼 온리팬스는 미성년자도 가입할 수 있는 허술한 검증 시스템으로 불법 음란물 등 디지털 성범죄의 새 유통 경로 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미국 국립실종학대아동센터(NCMEC)는 “2019년 온리팬스 콘텐츠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실종 아동들이 약 10명 있었다”며 “지난해는 이런 사례들이 거의 3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10대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틱톡에서는 ‘한국 차 훔치기 챌린지’ ‘기절 챌린지’ 등이 유행하면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유튜브는 가짜 뉴스의 온상이라는 비판을 받은 지 오래지만, 소극적인 대응 탓에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영국의 풀 팩트와 워싱턴포스트의 팩트체커 등 전 세계 80개 사실 확인 전문기관은 작년 1월 수전 워치츠키 유튜브 CEO에게 “유튜브가 가짜 뉴스의 주요 통로”라며 가짜 뉴스로 돈 버는 걸 막으려는 조치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공동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크리에이터 시장에도 한파

여러 논란에도 그동안 뜨겁게 성장해온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도 올해 온라인 광고 시장 한파를 맞아 힘겨운 한 해를 보낼 전망이다. 세계광고연구센터(WARC)는 올해 전 세계 광고 시장 성장률이 2.6%에 그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기 둔화와 비용 상승으로 대기업이나 금융회사 같은 대형 광고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마케팅 비용을 삭감하고 있는 탓이다. DA데이비슨의 톰 포르테 분석가는 CNN에 “지금은 디지털 광고 시장에 퍼펙트 스톰(복합위기)이 몰아치고 있다”며 “광고에 의존하는 기업은 수익성 위기에 처할 위험이 높다”고 했다. 이미 유튜브는 지난 3분기 광고 매출이 사상 처음 역성장하며 시장에 충격을 줬다.

신흥 플랫폼들은 사정이 더 어렵다. 안 그래도 낮은 수수료 구조 때문에 대부분의 수익을 크리에이터에게 넘기는데, 최근 스타트업 투자 시장까지 얼어붙으면서 운영비 대기도 어려워진 상황이다. 카메오는 유니콘에 오른 지 1년이 된 지난해 5월 전체 인력의 25%에 달하는 87명을 해고했고, 패트리온 역시 지난 9월 인력의 17%인 80명을 해고하겠다는 공지를 냈다. 이 밖에 지난 6월 직원의 14%(13명)를 감원한 서브스택과 지난달 직원 25%(43명)를 해고한 아웃스쿨 등 거의 모든 플랫폼이 인력 감축에 나섰다.

플랫폼의 한파는 크리에이터에게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 슈카·침착맨·오킹·풍월량·빠니보틀·곽튜브 등 유명 크리에이터 460여 팀이 소속된 ‘샌드박스 네트워크’는 지난 11월 사업조직 개편과 권고사직에 나섰다. 이 회사는 유명 유튜버들과 계약해 스튜디오와 촬영 장비, 영상 편집 등을 지원해주고 광고 수익의 20%를 배분받는 이른바 MCN(멀티채널네트워크) 중 하나로, 최근 2년간(2020~2021년) 영업적자를 감수하며 공격적으로 덩치를 키워왔다. 하지만 국내 크리에이터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투자 환경이 악화되자 일단 몸집을 줄이고 살아남는 데 주력하기로 한 것이다.

광고 배분 방식이 아니라 D2C(Direct to Customer) 방식으로 구독자에게 직접 금전적 지원을 받는 크리에이터들도 경기 침체에서 자유롭지 않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생태계를 구성하는 많은 기업과 창작자들이 진정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김영재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가 플랫폼 수익 배분에 의지하지 않고 크리에이터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한다면,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는 이제 시작 단계를 막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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