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을 방패막이 쓴 흥국생명, 팬을 위해 승리한 선수들

이준희 2023. 1. 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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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안방 인천 삼산체육관은 5일 팬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이날은 흥국생명과 지에스(GS)칼텍스의 2022∼2023 V리그 여자부 4라운드 첫 경기가 열리는 날.

그리고 이날 흥국생명은 바로 이 팬들을 방패막이로 삼았다.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고 온 김준성(23)씨는 "팬 입장에서는 성적도 분위기도 좋은 상황에서 그런 결정을 내린 걸 납득할 수 없다"라며 "선수들이 혼란스러워할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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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중이 5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V리그 여자부 흥국생명과 지에스칼텍스의 4라운드 첫 경기 때 선수들을 지지하는 문구가 적힌 클래퍼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흥국생명 안방 인천 삼산체육관은 5일 팬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이날은 흥국생명과 지에스(GS)칼텍스의 2022∼2023 V리그 여자부 4라운드 첫 경기가 열리는 날. 추운 날씨에도 경기 2시간 전부터 팬들이 붐볐고, 응원도 열정적이었다. 흥국생명이 2일 갑작스럽게 김여일 단장과 권순찬 감독을 동시에 경질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경기장은 겉으로 보기엔 여느 때와 다를바 없었다.

논란이 컸던 만큼 취재열기는 평소보다 뜨거웠다. 이날 삼산체육관은 취재기자만 약 3∼40명이 방문했다. 팬들은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무엇보다 팬들은 선수들을 걱정했다. 일부 팬들은 “행복배구”와 “팬들은 선수들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라는 글귀가 앞뒤로 적힌 클래퍼를 배포했다. 그리고 이날 흥국생명은 바로 이 팬들을 방패막이로 삼았다.

흥국생명 김연경이 5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V리그 여자부 지에스칼텍스와 경기에서 동료들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용준 흥국생명 신임 단장은 경기 전 기자들과 만나 경질 사태에 관해 설명했다. 신 단장은 “선수 기용에 개입한 것은 아니다”라며 “(단장과 감독 사이에) 로테이션 문제를 두고 갈등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로테이션 문제에 대해 팬들도 요구가 많았다”라며 “전위에 김연경과 옐레나가 같이 있는 게 아니고 전후로 나눠서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했다. 신 단장은 이날 팬들 의견의 출처로 유튜브를 언급하기도 했다. 또 ‘팬들 생각이 감독 생각보다 우승에 가깝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결국 모든 게 팬을 위한 일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날 <한겨레>가 만난 팬들은 생각이 달랐다. 평소 경기장을 자주 찾는다는 오지현(22)씨는 “감독을 그런 식으로 잘랐다는 게 황당하다”라며 “상승세를 타고 있었는데, 기세가 꺾일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고 온 김준성(23)씨는 “팬 입장에서는 성적도 분위기도 좋은 상황에서 그런 결정을 내린 걸 납득할 수 없다”라며 “선수들이 혼란스러워할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흥국생명 감독대행을 맡은 이영수 수석코치가 5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V리그 여자부 지에스칼텍스와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이 수석코치는 경기 뒤 자진해서 사임했다. 인천/연합뉴스

신 단장은 “현장 목소리를 잘 듣겠다”라며 여러 차례 소통을 강조했지만, 정작 현장에선 권 전 감독이야말로 소통에 능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독대행을 맡은 이영수 수석코치는 “감독님께서 평소 코치진 의견을 많이 들어주신다. 오늘 경기 (운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뼈가 담긴 말이었다. 이 수석코치는 이날 경기 뒤 자진해서 대행직을 사임했다.

감독 경질 뒤 베테랑을 중심으로 ‘보이콧’이 거론되는 등 선수들이 동요했다는 이야기도 사실이었다. 이 수석코치는 “선수들이 동요하고 있다. (경질 당일인) 2일에는 도저히 운동할 상황이 아니라서 대화만 했다. 김연경은 장염 증세로 어제부터 훈련에 참석했다”고 전했다. 신 단장 역시 “선수들이 굉장히 불안해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다만 흥국생명은 이날 사령탑 부재에도 불구하고 풀세트 접전 끝에 3-2(21:25/25:19/25:18/21:25/15:10)로 꺾고 15승4패(승점 45)를 기록해 2위를 유지했다.

인천/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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