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전시는 서울시와 무관합니다”…서울아트책보고 ‘검열 논란’

전지현 기자 2023. 1. 5. 21:2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 예산으로 운영되는 서울아트책보고 입점 서점 ‘자각몽’
‘예술·노동’ 전시에 이태원 참사·화물노조 파업 등 언급
도서관 “오해 소지” 철거…자각몽 항의에 복구·팻말 세워
지난 4일 서울 구로구 서울아트책보고 내 서점 자각몽 매대 앞에 ‘본 전시는 자각몽의 전시로 서울시, 서울아트책보고와는 무관한 전시’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예술과 노동’ 전시 기획 의도를 소개하는 리플릿.

“본 전시는 서울시, 서울아트책보고와는 무관한 전시임을 알려드립니다.”

서울시 예산으로 운영 중인 복합문화공간 서울아트책보고에서 새해 벽두부터 ‘예술 검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29일 이곳에 입점한 서점 ‘자각몽’이 ‘예술과 노동’을 주제로 내놓은 전시품들이 “정치적으로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치워지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와 ‘화물노조 파업’이 언급된 기획 의도 소개글과 이명박 정부의 노조 탄압을 주제로 한 모의법정 전시가 문제가 됐다.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안에 위치한 서울아트책보고는 서울시 산하 서울도서관이 수탁업체에 일임해 운영하고 있다.

전시품 철거 사실을 알게 된 자각몽 측 항의로 지난 1일부터 모든 전시는 원상복구됐다. 대신 해당 섹션 앞에는 ‘본 전시와 서울시는 관계가 없다’는 문구가 쓰인 팻말이 들어섰다. 인터넷 홈페이지의 소개글에도 같은 내용의 안내가 더해졌다. 김용재 자각몽 대표는 지난 3일 전시 현장에 들렀다가 이 팻말을 처음 확인했다고 한다. 그는 5일 “스탠드를 세워놓은 것도 사실상 방해”라고 했다.

이번 전시는 공연예술 프로듀서 김진이의 서재를 통해 사회적 갈등과 재난 속 예술이 말해야 하는 바를 보여주기 위해 기획됐다. <김용균, 김용균들>(오월의봄), <쇳밥일지>(문학동네) 등의 책들이 전시 대상이다. 기획 의도를 소개한 리플릿에는 기후위기, 이태원 참사, 장애인 이동권 시위, 화물노조 파업 등이 지난해 벌어진 대표적인 갈등과 재난으로 언급돼 있다. 또 ‘공개법정-우리는 대한민국의 노동자입니다’라는 아카이빙 자료도 놓여 있다. 이 전시는 이명박 정부 때 국가정보원이 민주노총을 탄압하며 벌인 ‘노조 파괴 공작’에 대해 국가에 책임을 묻는 모의법정 진행 영상 등으로 구성됐다. 2021년 11월 전태일기념관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이다.

김 대표는 지난달 30일 서울도서관 직원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이 직원은 “기획 의도에 이태원 사고, 화물노조 파업을 주제로 담았는데, 공공기관이다 보니 사후 논란의 소지가 있는, 주관적인 견해가 들어갈 수 있는 주제들은 운영 취지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김 대표는 전했다.

수탁업체 측은 문제가 된 부분은 공개법정 전시였다고 했다.

업체 관계자는 “자각몽 기획안을 받을 때만 해도 2022년의 사건을 톺아보는 전시라고 생각했는데 이명박 정부 때 일은 기획 취지에 맞지 않는 것 아니냐”며 “민주노총, MB, 국정원 등 언급되는 내용이 너무 정치적이고 사회적으로 논쟁적이라서 ‘헉’했다”고 말했다. 오지은 서울도서관 관장은 “철거 과정은 전적으로 현장에 있는 수탁업체가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자각몽 측은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공개법정 제작에 참여한 변호사와 법학 교수 7명도 이날 “표현행위자의 특정 견해, 이념, 관점에 근거한 제한은 표현의 내용에 대한 제한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하고 해로운 제한”이라며 서울시에 사과와 재발방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날 10세인 딸과 함께 이곳을 찾은 심규정씨(37)는 “예술은 예술로만 봐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윤석열차’ 사건이 떠오른다”며 “사회의 다양성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 살배기 아들과 함께 온 원서연씨(35)는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책자가 배치되는 건 좋은 것 아니냐”고 했다.

글·사진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