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아픈데…” 상담 요청에 “정신병으로 군 면제 가능”

이홍근·김송이·강연주 기자 2023. 1. 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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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병무청과 매주 골프”
친분 과시한 병역 브로커
내담자들에 면제 먼저 제안

프로배구 선수 조재성씨의 병역 면탈을 도운 혐의로 구속된 병역비리 브로커가 몸이 불편해 상담을 요청한 일반 내담자들에게도 병역을 면제받게 해주겠다고 먼저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브로커는 정신질환을 면제 사유로 제시하며 “매주 의사들과 골프를 치는 사이”라고 인맥을 과시했다.

5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2019년 당시 사회복무요원 A씨는 지병이던 십이지장궤양이 낫지 않자 병역 브로커 구모씨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신체등급 판정 기준을 잘 모르는 A씨가 자신의 질병이 면제 사유에 해당하는지 물은 것이다.

그러나 구씨는 A씨에게 정신질환으로 면제를 받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A씨는 통화에서 “어떻게 면제가 되는지 물어봤더니 구씨가 ‘병원마다 아는 의사가 있다’며 ‘정신병으로 (병역 면탈을) 하면 안 되겠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어 “구씨가 궤양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자꾸 정신병으로 (면탈을) 하자고 말해 사기꾼 같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당시 구씨가 A씨에게 요구한 금액은 1000만원이었다.

구씨는 자신이 전국의 병무청 지정병원 의사들과 친분이 있다고 내담자들에게 과시했다. 구씨는 지난해 5월13일 정신질환 관련 상담을 하면서 내담자에게 “주말엔 볼을 치느라 (일정이) 밀렸다”면서 “병원이랑 병무청이랑 (골프를) 친다”고 말했다. 이어 “저희의 인프라”라면서 “아무 건강상 문제가 없는 분들을 어떻게 해드리겠냐. 저희도 나름 열심히 사업을 하면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볼도 치고 식사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구씨는 서울에 있는 대형 병원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병원을 당연히 지정해주고 의사도 지정이 된다. 저희가 시키는 대로 하면 의사가 4급, 5급 진단을 내린다”고 장담했다.

구씨는 신장질환을 앓는 B씨에게도 정신질환 판정을 통해 면제를 받자고 제안했다.

B씨는 “(구씨의) 행정사 사무실에 선납금 20만원을 넣고 자문을 받았는데 신장질환에 정신과 치료를 병행해서 진행하자고 했다”면서 “이후에 연락이 두절됐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C씨는 “병역 처분은 앓고 있는 질병으로 다퉈야지 다른 병을 만들어 진행하는 것은 병역 기피 행위”라고 말했다.

4년 전 병무청 계도 처분 후
더 교묘하게 웹 사업 확장

구씨는 2019년 4월 병무청으로부터 병역 면탈 조장 혐의로 계도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병무청은 구씨의 사무실을 찾아 2018년부터 네이버 지식인에 작성한 게시물 중 면탈을 조장하는 것들을 삭제하라고 했다. 구씨는 총 39건의 게시물을 삭제했다. 이후 구씨는 보다 교묘한 수법을 이용해 사업을 확장했다. 네이버 지식인 등 병무청이 접근할 수 있는 게시물에는 구체적인 면탈 방법을 남기지 않고 명함만 남기는 식이었다.

구씨가 합법적인 병역 상담처럼 꾸민 탓에 네이버 측도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못했다.

네이버 측은 “이슈가 되기 전에 모니터링을 해서 적발했으면 이용자 제한 조치를 했을 텐데 구씨가 (정책을) 교묘하게 이용해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했다.

통상 네이버는 피해 신고가 접수되면 계정 자체를 삭제하지만 구씨의 계정은 지금도 남아 있다. 구씨가 지식인에서 2018년부터 작성한 병역 관련 답변은 총 5만3991건에 달한다.

검찰 관계자는 구씨의 범행에 병원이 관여했는지 여부에 대해 “수사 중인 사안이라 답할 수 없다”면서 “모든 범죄 행위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남부지검은 구씨를 병역법 위반 혐의로 지난달 21일 재판에 넘겼다.

이홍근·김송이·강연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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