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부동산 거품 붕괴 공포
각국 중앙은행의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전 세계 부동산 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2023년 글로벌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부동산 시장 냉각은 단순히 자산 가격 하락이나 건설 경기 불황뿐 아니라 철강·운송·금융 등 고용 유발 효과가 큰 연관 산업의 침체를 부른다. 또 가계의 소비 위축으로 경기 불황을 가속화할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전 세계 부동산 버블(거품)이 붕괴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며 “부동산 가격 하락이 상당 기간 이어지며 세계경제를 암흑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흔들리는 전 세계 부동산 시장
부동산 시장에 대한 경보음은 선진국, 신흥국 가릴 것 없이 세계 전역에 걸쳐 울리고 있다. 무엇보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2.3%를 차지하는 G2(주요 2국)인 미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부동산 관련 지표들이 크게 꺾이는 것이 불안감을 고조한다.
미국에선 부동산 ‘거래 절벽’ 현상이 심각하다. 미 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존 주택 매매 건수는 409만건으로 전월보다 7.7% 줄었다. 팬데믹 초기를 제외할 경우 2010년 11월 이후 12년 만에 최저치다. 감소세도 지난해 2월부터 10개월 연속 이어져 1999년 통계 집계 이래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 집값 하락세도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의 평균 집값은 지난해 6월 역대 최고점(41만3800달러)을 찍은 뒤 11월 37만700달러(약 4억7300만원)까지 5개월 연속 하락했다.
부동산 시장이 GDP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에서도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는 징후가 뚜렷하다. 중국의 부동산 거래량(전년 대비)은 지난해 10월 -21.1%, 11월 -34.5%를 기록한 뒤 지난달 -37.1%까지 떨어졌다. 2021년부터 부동산 투기 광풍을 옥죄는 정책을 펼쳤던 중국 정부는 부동산 경기가 급랭하자 분양 제한 완화,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하 등 규제 완화로 돌아섰지만 아직 뚜렷한 효과가 없다.
G2에 이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도 부동산 버블 붕괴 공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IMF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택 시장 안정성과 적정 가격’ 보고서에서 한국과 뉴질랜드, 호주 등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해당 국가들은 팬데믹 사태 이래 2년간 집값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올랐는데, 금리 인상이 이어지면 과도하게 형성된 거품이 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IMF에 따르면, 한국·뉴질랜드·호주 집값은 최근 2년(2019년 4분기~2021년 4분기) 사이 각각 18%, 38%, 23% 올랐다. 같은 기간 선진국·신흥국의 평균 집값 상승률이 각각 16%, 2%인 것과 비교해도 과도한 수준이다. IMF는 “소득 대비 주택 가격의 과거 추이를 보면, 팬데믹 이후 한국·뉴질랜드·호주 등은 기존 흐름을 상당히 벗어나 집값이 비정상적으로 오른 것을 알 수 있다”며 “아·태 지역 선진국에서 3%포인트의 금리 인상은 향후 2년간 주택 가격 상승을 5% 이상 낮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부동산 정보업체 나이트 프랭크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 3분기 한국과 뉴질랜드는 집값이 각각 7.5%, 2% 떨어져 조사 대상 56국 중 하락률 1위와 5위를 기록했다. 집값 하락이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된 호주는 올해 집값이 23% 떨어질 것이라고 국립호주은행이 전망했다.
◇미·유럽보다 아·태가 더 걱정
부동산 시장 한파가 동시다발적으로 몰아닥쳤지만, 전문가들은 그중에서도 아·태 지역을 가장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은 집값 하락세와 거래 감소가 이어지고 있으나 가계의 재무 건전성이 양호한 편이어서 집값 하락의 충격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주택 시장이 ‘팬데믹 호황’의 막을 내리긴 했지만, 그 끝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는 전혀 다를 것”이라며 “2008년 이후 모기지 시장을 개혁하고, 대출 건전성을 높인 덕에 대형 경제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고 평가했다. 유로존도 집값이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으나 건설 경기가 크게 부진한 상황은 아니다.
반면 아·태 지역은 집값 하락 속도가 빠른 데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 부채가 버블 붕괴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과 호주의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각각 206%, 211%로 미국(101%), 독일(102%), 프랑스(124%), 영국(148%) 등 서방 선진국보다 훨씬 높다. 이 때문에 아·태 지역 주요국에서 금리 인상으로 가계의 빚 상환이 줄줄이 연체되면 대형 신용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한국은행이 국내외 금융·경제 전문가 7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2년 하반기 시스템 리스크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1년 이내에 금융 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단기 충격 발생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매우 높음’ 또는 ‘높음’으로 응답한 비율은 58.3%에 달했다. 작년 6월 말 조사 때(26.9%)보다 응답률이 2배 이상으로 급등한 것이다.
결국 아·태 지역의 부동산 경기는 올해 글로벌 경제의 향배를 좌우할 주요인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아·태 지역에서 부동산 버블 붕괴로 투자 및 소비 위축이 심화할 경우,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된 미국·유럽도 동반 침체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아·태 지역의 부동산 침체가 거센 ‘나비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히라타 히데아키 일본 호세이대 교수는 “금리 인상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며 “(아·태 지역의 부동산 위기는) 2023~2024년에 걸쳐 전 세계 주택 시장의 동시 침체와 경제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침체를 불러온 금리 인상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가계 부채 비율이 높은 국가들은 정부가 가계의 이자 부담을 줄여주고, 집값 경착륙을 막는 정책들을 발 빠르게 시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연세대 경제학부 성태윤 교수는 “부동산 시장 영향력이 큰 금리는 물가를 함께 고려해야 하기에 손을 대기 쉽지 않다”며 “부동산 거품이 서서히 꺼지도록 유도하는 정부 정책 운용의 묘(妙)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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