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촘한 집배원 인력망 ‘디지털 전환기’에 역할 더 커졌죠”

정인선 2023. 1. 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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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손승현 우정사업본부장
손승현 우정사업본부장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 제공

지난 4일 서울 광화문 한복판을 걷는데 한 손엔 화분을, 다른 손엔 스마트폰을 든 어르신이 기자에게 다급히 말을 걸었다. 꽃을 배달해야 하는데, 지도 앱을 봐도 어느 방향인지 헷갈린다고 했다. 스마트폰을 건네받아 내가 서 있는 위치를 기준으로 방향을 설정한 뒤 목적지 찾는 걸 도와드렸다.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이에겐 지도 앱조차 어려운데, 복잡한 절차가 겹겹인 은행·핀테크 앱은 더욱 높은 장벽이다.

마침 손승현 우정사업본부장을 인터뷰하러 광화문우체국으로 가는 길이었다. 지난해 11월 우정사업본부(이하 본부)가 전국 우체국 금융창구 2500곳을 4대 시중은행에 개방해, 어르신 등 비대면 금융서비스 이용이 낯선 이들이나 시중은행 점포가 사라져 먼 곳의 은행을 찾아가야 했던 농·어촌 거주민들의 금융서비스 접근성을 높인다는 소식에 눈길이 갔다. 이런 사업을 펼치는 배경을 묻고 싶었다.

손 본부장은 “비대면 플랫폼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여러 공적 서비스에 불편 없이 접근하도록 해야 한다”며 “우체국이 가진 생활 밀착형 전국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우편물이 줄고 인력·시설 관리 비용은 늘어나니, 본부 적자 폭도 점점 커지는 게 사실이예요. 그래서 집배원과 오프라인 우체국 수를 줄여야 한다는 시각도 있어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체국 집배원이 커버하지 않는 집이 없잖아요. 이렇게 촘촘한 전국 인력망과 인프라를 지닌 조직이 공공과 민간을 통틀어 본부가 유일한데, 그걸 자진해서 없애면 안 되죠.”

그는 옛 정보통신부와 미래창조과학부 등을 거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통신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정보보호네트워크정책관을 지내다가 2021년 12월 우정사업본부장에 취임했다. 취임 직후 별도 태스크포스(TF) 팀을 꾸려, 전국 우체국의 ‘생활 밀착형 인프라’를 활용해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직원들로부터 모았다.

“지난해 수원 세 모녀 사건 등 지자체 사회복지 업무 담당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해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이 많았잖아요. 우편물이 상대적으로 적은 주중이나 고지서 발송이 몰리지 않는 기간을 이용해 집배원들이 위험 가구 발굴을 돕는다면, ‘우편물이 줄어드는데 우체부 인력은 왜 이리 많느냐’는 지적에 반박할 수도 있고, 지자체 업무 부담을 줄이면서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어 ‘윈윈’이 될 거라고 봤어요.”

이런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본부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 의심 가구를 집배원이 조기 발견해 적절한 지원을 받도록 돕는 복지등기 시범 사업을 지난해 시작했다. 지난해 7~12월 집배원들이 부산 영도구와 전남 영광군, 서울 종로구 등 전국 8개 기초지자체 관할 위기 의심 가구 4669곳을 살핀 결과, 10분의 1가량인 483개 가구가 그동안 ‘몰라서 못 받던’ 복지 지원을 받게 됐다.

“요즘 ‘5도2촌’이라고, 일주일에 닷새는 도시에서, 이틀은 농어촌에서 지내는 분들이 늘었대요. 그런데 도시에서 지내는 동안 벽지에 있는 내 집이 무사히 있는지 알 길이 없으니까, 집으로 우편물을 보낸 뒤 집배원에게 ‘우리 집 잘 있냐’고 묻는 분들도 있다더라고요.” 집배원이 집 안부도 확인해 주는데, 사람 안부를 확인 못 할 것 없다는 말이다.

농어촌 금융서비스 접근성 높이려
우체국 2500곳 창구 시중은행에 개방
‘복지사각 의심가구’ 발굴 시범사업
환경 위해 폐의약품 회수 사업도

“우체국 네트워크로 공공성 강화”

그는 “우체국 인프라로 환경 문제를 푸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본부는 올해부터 세종시에서 우편물 집배망을 이용해 가정에서 버려지는 의약품을 회수하는 시범 사업을 펼친다. 가정에서 복용하고 남은 의약품을 전용 봉투 또는 일반 우편봉투에 담아 밀봉한 뒤 가까운 우체통에 넣거나 약국·보건소·주민센터 등에 설치된 수거함에 넣으면, 집배원이 회수해 지자체 보관 장소에 안전하게 전달한다. 그는 “이 사업도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거야말로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약에 유통기한이 있고, 종량제 봉투나 변기 같은 데에 아무렇게나 버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저부터도 잘 몰랐어요. 그런데 직원들 이야기를 듣고 환경부 쪽 설명을 들어 보니, 국내 하천 수질을 검사해 보면 항생제 성분이 그렇게 많이 나온다고 해요.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더라도 30∼40% 가량만 소각 처리가 되고 나머지는 매립을 해야 한대요. 그 과정에서 함부로 버려진 약들이 지하수나 토양에 침투하면 환경뿐 아니라 국민 건강에도 악영향을 주죠.”

그는 ‘못 가는 집 없는’ 집배원 인력뿐 아니라 도서·산간 할 것 없이 전국에 자리잡은 우체국 창구 또한 보기에 따라서는 “비용 덩어리가 아닌 디지털 전환 시대를 맞아 갈수록 그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국가 중요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본부는 지난해 11월 우체국 금융망을 시중은행들에 무상으로 개방해, 입출금과 통장정리 같은 간단한 은행 업무를 전국 우체국 창구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은행 점포가 사라져 금융 서비스 이용이 어려워진 지역 주민들에 대한 포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시중은행 점포의 경우, 2021년 12월 기준 9.6%만이 농어촌 지역(읍·면 소재지)에 있는 반면, 우체국 점포는 이 비율이 53.8%나 된다.

그는 “시골에선 어르신들이 우체국을 사랑방처럼 여긴다”며 “여러 대체 서비스를 제공하는 허브로 삼는 쪽으로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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