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궁의 루이 14세 vs. 현대의 보통 사람, 누구의 삶이 더 좋을까? [김선지의 뜻밖의 미술사]
화려한 궁전 뒤에 숨겨진 끔찍한 악취
프랑스의 절대군주 루이 14세는 빨간 하이힐을 신은 17세기의 패셔니스타, 호화로운 베르사유궁의 주인으로도 유명하다. 루이 14세는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공전하듯 프랑스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고, 태양의 신 아폴로를 흠모해 스스로를 태양왕이라고 불렀다. 또, 자신이 '신의 대리자'이므로 모든 신민에 대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림 속 루이 14세는 캔버스 중앙에 우아한 자세로 서서 위풍당당한 표정으로 관람자를 내려다보고 있다. 족제비 모피로 안감을 댄 화려한 대관식 예복에 수놓아진 백합 문양은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상징이다. 옆구리에는 군대의 수장임을 나타내는 왕실 검을 차고, 오른손은 왕홀을 들고 있다. 왕관은 옆 의자에 놓여 있다. 왕의 머리 위에 드리운 붉은색 실크 커튼, 금박 부조로 장식된 대리석 기둥과 고급 카펫이 왕에게 걸맞은 호화로운 실내를 채우고 있다.
루이 14세의 사실적인 외모나 개성을 표현한 게 아니라 그의 권위와 위대함을 보여주려는 초상화다. 당시 왕은 63세였다. 나이 든 얼굴과 달리, 젊은 시절 발레로 다져진 늘씬한 각선미는 그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과시한다. 화가는 실제로 160㎝ 남짓의 작은 키에 온갖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노쇠한 왕을 이상화된 모습으로 그렸다.
이 대단한 나르시시스트 군주가 살았던 베르사유궁은 유럽에서 가장 웅장하고 호화로운 궁전으로, 부의 상징이자 정치권력의 중심지였다. 황금 벽지로 도배된 베르사유 방들에는 사치스러운 가구들이 놓였고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빛났으며, 정교하게 설계된 정원은 1,400개의 분수와 조각상으로 꾸며졌다. 각종 미식 요리, 꽃 장식, 고급 향수와 세련된 패션이 선을 보였고, 거울의 방에는 보석과 우아한 의복으로 치장한 귀족들이 모여 무도회와 파티, 음악회와 발레 공연을 즐겼다.
보이는 게 다일까? 베르사유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끔찍한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 그곳은 도처에서 풍기는 역한 냄새로 숨쉬기조차 힘든 지옥이자 오물 저장고였다. 베르사유에 화장실이 전혀 없었다는 소문도 있지만 진실이 아니다. 왕족, 귀족들의 방에는 변기 의자나 요강이 설치돼 있었고 공중 화장실도 있었다. 다만, 700여 개의 방 중 화장실은 아홉 개뿐이었으니 턱없이 부족했던 건 사실이다. 궁에는 왕실과 귀족, 관리, 시종과 하인 등 약 4,000명이 살았는데, 이 많은 인원이 도대체 어디서 배설을 한 것일까?
사람들은 계단, 복도, 벽난로, 정원 가리지 않고 아무 데서나 배변을 했다. 여름에는 땀내와 체취, 분뇨 냄새로 악취가 심해졌다. 향수로 냄새를 덮으려 했지만 원래 악취에 향내가 더해져 후각을 더욱 자극했다. 대부분은 천 대신 나뭇잎, 옥수수 속대, 풀, 조개껍데기, 심지어 손까지 사용해 용변을 닦아냈다. 이런 비위생적인 환경으로 인해 궁은 여러 가지 질병의 온상이 되었다. 화장실의 배수관 설비 또한 열악한 탓에, 거주자들의 엄청난 대소변량을 감당하지 못했다. 종종 배설물이 넘쳐흘러 벽과 바닥을 통해 옆방으로 스며들었고 값비싼 옷과 가구를 더럽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종종 변기통의 오물을 창밖으로 쏟아 비워야 했고 지나가는 이들이 맞기 일쑤였다. 마리 앙투아네트도 한 차례 위에서 투척한 똥물을 흠뻑 뒤집어쓴 적이 있다고 한다. 정기적으로 수거된 궁 곳곳의 대소변은 그냥 경내 오물 웅덩이에 버려졌다. 한편, 손 씻기가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대장균이 조리실의 음식을 오염시켰고, 궁정 사람들은 자주 촌충에 노출되었다. 루이 14세도 여러 번 촌충에 감염되었는데, 한번은 왕의 주치의가 16㎝ 길이의 촌충을 몸에서 꺼냈다고 한다.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루이 14세는 정말 믿기 힘든 불결함 속에서 살았다. 왕은 평생 두세 번 목욕했다고 전해진다. 대신 손과 얼굴은 매일 씻었고, 몸은 물수건이나 향수 혹은 알코올로 닦아냈으며 흰 리넨 속옷을 하루에도 여러 차례 갈아입어 땀이나 분비물을 제거했다. 속옷은 세탁했지만 모피 코트나 각종 보석과 장신구가 달린 겉옷은 세탁하기 어려워 이와 벼룩이 들끓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뜻한 물로 목욕하면 모공이 열려 질병이 몸으로 들어온다고 믿고 목욕을 자주 하지 않았다. 더럽고 기름진 머리카락은 건강하고 매끄럽다고 생각했다. 왕과 귀족들은 이가 들끓는 머리를 밀고 가발을 썼다. 머리털에서 이를 잡아내는 것보다 끓는 물에 가발을 담가 머릿니나 알을 죽여 두발을 관리하는 게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다. 칫솔과 치약이 없어 허브즙을 적신 천으로 치아와 잇몸을 문질러 구취를 없애려고 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상류층의 위생 관리가 이럴진대 평민들은 오죽했을까? 현대 문명의 가장 큰 수혜 중 하나는 위생의 발전이다. 현재 전 세계 인구 79억 명 중 55% 이상의 사람들이 상하수도 인프라가 갖춰진 도시에 살고 있고, 샴푸, 비누, 세제를 사용해 청소하고 세탁하고 목욕한다.
위생 문제뿐이랴! 왕이라 할지라도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쾌적함, 의학의 혜택을 결코 향유하지 못했다. 백신도 없던 시대라, 루이 14세와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천연두로 심하게 얽은 얼굴로 평생을 살아야 했다. 루이 14세는 단것을 달고 산 탓에 결국 한 개를 제외한 모든 이를 뽑아냈는데, 이 과정에서 치료가 잘못돼 입천장에 구멍과 농양이 생겼다. 지금은 보통 사람도 수준 높은 치과 치료와 임플란트 시술을 받아 양호한 구강 상태를 유지하지 않는가. 왕의 부실한 구강은 만성 위염과 장염, 설사, 치루로 이어졌고, 마취제, 항생제도 없이 입안을 불로 지지고 항문 부근의 생살을 메스로 찢는 수술의 고통을 견뎌야 했다.
특권계층인 옛날 왕족, 귀족의 삶과 오늘날의 평범한 사람의 삶 중 어느 것이 더 행복할까? 여러분은 베르사유에서 루이 14세로 살고 싶나요, 현대의 시민으로 살고 싶나요?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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