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 칼럼] 노동과 자유, 그 아름다움과 무서움
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약 200년 전 영국 공장들에선 노동자가 매일 15~16시간 유혈 노동을 했다. 이에 하루 10시간 노동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1836년 옥스퍼드대 경제학과 나소 시니어 교수는 “10시간 노동제 시행 때 자본가에겐 한푼도 안 남을 것”이라 주장했다. 당시 공장법은 18살 미만 청소년은 11.5시간 이상 노동을 금지했다. 시니어 교수는 여기서 1시간만 줄여도 순이익이 사라진다며 펄쩍 뛰었다. 이게 그 유명한 ‘시니어의 마지막 1시간’!
이 이론은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보기 좋게 논박됐다. 핵심은 노동자의 실노동시간을 고정자본 보전시간, 유동자본 보전시간, 순이익의 시간으로 나눈 방법론 자체가 오류라는 것! 즉, 노동자는 노동의 전 과정에서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을 동시 수행하기에, 노동시간이 줄어도 이윤은 계속 생산된다. 그렇지 않다면, 1800년 무렵 하루 15시간 노동이 1848년 공장법 이후 10시간으로, 또 1930년대 이후 8시간으로 줄면서 벌써 자본주의가 파산했을 터!
그런데 흥미롭게도 2022년 대한민국은 200년 전 당시 영국의 노동시간을 재현하려 한다. 노동 관련 대학교수 12명으로 구성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지난달 12일, 대정부 권고안을 낸 것! 이 연구회는 근로기준법의 탄력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현행 최대 3개월에서 향후 365일로 늘리면 주당 최대 69~80시간 노동이 가능하다 했다. 현행 정규 노동은 주 40시간(주 5일제)이다. 그러나 이들은 ‘일중독장려회’라도 되는 듯, 노동시간을 2배나 늘리려 한다.
여기서 나는 세계 최초 과로사로 기록된, 1863년 영국 메리 앤 워클리라는 노동자의 죽음을 기억한다. 당시 20살 여성 메리는 귀족용 무도복을 만드느라 하루 16시간씩 일했고, 성수기를 맞아 연속 27시간째 일하다 사망했다. 이런 참사가 1960~70년대 전태일 청계피복 공장, 1980~90년대 자동차 공장에 이어 21세기 한국에서도 반복될까 두렵다. 실은 지금도 매일 참사다.
더 놀라운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국무회의에서 ‘민주노총=자유민주주의 파괴 세력=타협 불가 세력’으로 규정하고 사실상 배제를 선포한 일! 그 직접적 계기는 안전운임제 연장과 확대를 요구하며 2주일 이상 파업을 감행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 화물연대의 단체행동이었다.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11월24일~12월9일) 후속 대책과 관련해 “우리 공동체의 기본 가치가 자유라는 데에 동의하는 사람들과는 협치나 타협이 가능하지만, 자유를 제거하려는 사람들, 거짓 선동과 협박을 일삼는 세력과는 함께할 수 없다”고 했다. 노동자의 단체행동을 ‘자유를 제거하려는 범죄’로 낙인찍은 셈!
자유! 좋은 가치다. 그러나 그 본연의 뜻이 무엇인가? 스스로(自) 말미암는(由) 것, 이는 그 어떤 외적 강제 없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느낌과 감정, 생각과 의지, 즉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에 따른 행동이다. 물론, 무책임한 자유는 방종일 뿐! 따라서 내재적 동기에 기초하되 책임성 있는 삶, 이것이 참된 자유다.
그러나 이 자유를 권력과 자본은 맘대로 왜곡한다. 예컨대, 1940년대 독일 나치가 유대인, 노조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집시, 성소수자 등 수백만명을 강제로 가두고 노동을 강요한 2만여 집단수용소 입구엔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Arbeit macht frei)라고 씌어 있었다. 지금도 베를린 근교 작센하우젠이나 뮌헨 인근 다하우에 가면 그 생생한 역사를 볼 수 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도 나오듯, 나치의 약속은 새빨간 거짓이었다. 노동은 자유의 토대가 아니라 그 자체로 억압과 죽음이었다!
다시 한국을 보자. 현행 노동법을 억지로 우회해 노동시간을 연장하려는 것, 그간 지렁이 가듯 천천히 단축된 노동시간의 시계를 역류하는 것, 노동자의 정당한 단체행동을 업무개시명령으로 분쇄한 것, 느닷없이 노동조합 부패를 한국의 3대 부패라며 노조운동을 부정하는 것, 이 모든 일은 결코 자유로운 사고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자본과 권력이라는 외재적 동기(extrinsic motivation)의 압력일 뿐! 이는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이들이 국민을 위해 일하기보다 자본과 권력을 ‘내면화’한 채 그 대리인 역할을 하기 때문.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돈벌이의 자유!
윤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영빈관에서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노동시장에서의 이중구조 개선이라든가 합리적 보상체계를 만드는 것, 노-노 간 착취적인 시스템을 바꿔나가는 것이야말로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진정 ‘노동 가치’를 존중한다면 그 접근 방식은 달라야 했다.
첫째, 화물연대 파업을 비롯해 모든 노동자 파업을 법으로 제재하기 전에 그 고충과 불만이 뭔지 경청해야 한다. 현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노동 가치 존중의 첫걸음이다.
둘째, 노동 가치 존중이란 결국 노동자의 삶을 존중하는 것! 그렇다면 노동자들도 인간다운 삶을 누려야 한다. 그 지름길은 잔업수당 없는 노동시간 연장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시간 단축이다. ‘오후가 있는 삶’이 가능하면서도 생계불안이 없어야 한다.
셋째, 노동 가치를 진심 존중하려면 헌법 33조에 규정된 노동 3권, 즉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적극 보장하고, 생산 현장의 민주주의도 이뤄야 한다. 노동 현장에 만연한 갑질 문화, 각종 차별과 불평등 구조, 일방적인 명령과 지시, 양심 배반의 꼼수들, 이 모두를 자주관리기업인 ‘우진교통’ 수준으로 고쳐야 한다.
물론, 현 정부에 이런 걸 기대하기보다는 ‘우물에서 숭늉 찾기’가 더 쉬울지 모른다. 또, 근본적으로 보면 자본주의 상품사회는 노동 가치 위에 성립, 지속하는 시스템 아닌가? 따라서 노동 가치 존중은 오히려 자본주의 시스템 유지에 기여한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놀다가 죽었다”며 비아냥거린 것도 이 기저의 진실 때문!
그렇다면 억압과 차별, 착취와 파괴를 근원적으로 발본색원하는 길은 노동, (교환)가치, 상품, 화폐에 기초한 시스템 원리 자체를 비판·성찰하고 마침내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것! 향후 갈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보다 멀다.
노동과 자유! 겉으론 아름답고 멋지지만 그 맥락과 근본을 볼수록 무서움이 감돈다. 죽도록 노동하며 자유를 누릴 순 없는 법!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부유한 노예’를 위한 긴 노동시간이 아니라 인생의 참주인이 되기 위한 성찰적 자유시간이다. 자유의 의미를 제대로 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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