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북 무인기 도발 10일 만에 비행금지구역 침범 인정···총체적 난맥상 노출
“용산 상공은 아니다”고 설명
지난달 26일 남측 영공을 침범한 북한 무인기 중 1대가 용산 대통령실 일대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P-73) 안까지 침투한 사실이 5일 확인됐다. 군은 그동안 ‘적 무인기는 P-73을 침범하지 않았다’고 밝혀 왔지만 10일 만에 입장을 번복했다. 북 무인기 대응 실패에 이어 정보 분석력에서까지 허점을 드러내며 총체적 난맥상을 노출했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이날 “전비태세검열실의 조사 결과 서울에 진입한 적 소형 무인기 1대로 추정되는 항적이 비행금지구역(P-73)의 북쪽 끝 일부를 지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북한의 무인기 도발 이후 ‘적 무인기는 P-73을 침범하지 않았다’고 시종일관 주장해 오던 것을 번복한 것이다. P-73는 용산 대통령실과 국방부 청사를 중심으로 하는 반경 3.7㎞의 구역으로 용산뿐 아니라 서초·동작·중구 일부를 포함한다. 국가정보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P-73을 침범한 무인기가 용산 대통령실을 촬영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날 합참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무인기 침투 당시 서울 상공을 감시하는 레이더에 무인기 항적이 일부 잡혔다. 탐지와 소실을 반복하면서 항적이 선형이 아닌 점 형태로 나타났고,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작전 요원들은 무인기라고 평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 27일부터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이 점으로 된 항적들을 연결해보는 등 상황을 재분석한 결과 무인기의 P-73 침범을 파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김승겸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는 전날 이같은 분석 결과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무인기가 서울 상공에 침투한 뒤 10일이 지나도록 P-73에서 잡혔던 항적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합참은 지난달 27일 ‘무인기가 용산 근처를 비행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용산 상공을 비행한 항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당시 합참 관계자는 은평·성북구 등 서울 북부를 좌우로 비행했고 (서울 도심인) 청와대 쪽과도 거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야당 의원이 P-73 침범 가능성을 제기했을 때는 ‘이적행위’라는 표현까지 썼다. 지난달 29일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북한 무인기가 용산 대통령실 북쪽 상공을 지난 뒤 돌아갔다”고 하자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은 “사실이 아닌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반박하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사실이 아닌 내용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군은 북한의 무인기 침범 당일에는 대응 출격한 KA-1 전술통제기 1대가 추락하고, 지상 대공무기들은 표적 정보가 없어서 사격 시도조차 못해 타격 능력을 비판받았다. ‘최고 수준의 군사대비태세’를 자부해 온 군이 최고 수준의 방공망을 유지해야 하는 서울 한복판에서 정보 수집 및 분석 공백을 노출하며 체면을 구겼다.
군이 뒤늦게 비행금지구역 침범 사실을 공개했지만 설명도 충분치 않았다. 합참은 북한 무인기가 비행금지구역을 침범한 지점이나 침범한 거리 등 정보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우리 탐지자산의 위치를 나중에 적이 역이용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관련 질문이 쏟아졌지만 합참 관계자는 “P-73를 스치듯 지나간 수준”, “용산 상공은 아니다. 대통령 집무실 안전을 위한 거리 밖”이라고만 되풀이했다. 또 “북한 소형 무인기가 촬영했다고 하더라도, 유의미한 정보를 얻을 순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당초 합참은 이날 익명을 전제로 한 백브리핑 형식으로 발표했다가 비판이 이어지자 뒤늦게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했다.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은 “당시에는 작전요원들에 의해 최초 확인된 사실에 입각하여 발표했고 이후 전비태세검열실이 종합적인 조사과정에서 정밀분석한 결과를 설명드리게 됐다”면서 “두 가지의 차이로 언론 보도에 혼란을 초래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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