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바꿔치기·전월세 이중계약 … 등기 확인해도 속수무책
시세 파악 어려운 빌라 대상
계약땐 '깨끗한' 등본 보여준후
명의 급변경해 보증금 먹튀
총책·알선책 등 조직적 활개
'전세자금 필요한 분' 허위광고
빼돌린 전세대출금 400억 넘어
◆ 전세사기 기승 ◆
전세사기가 극성을 부리면서 기상천외한 사기 수법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직접 강도 높은 조사를 지시했고 정부도 집중 단속에 나섰지만 이를 비웃듯 사기 수법은 갈수록 지능화·다양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일 매일경제가 입수한 자료를 통해 경찰이 파악한 사기 유형을 살펴보면 단순히 전세보증금을 떼어 먹고 잠적하는 수준을 넘어 의도적이고 지능적으로 사기 수법이 진화하고 있다. '무자본 갭투자'는 많게는 수천 채의 주택을 자기자본 없이 매수한 뒤 임대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것으로 소위 '빌라왕' '빌라의신'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자기자본 일부에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얹어 주택을 매입하는 '갭투자' 수법을 변형해 자기자본을 아예 들이지 않고 매입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시세 정보가 명확하지 않은 빌라를 집중 공략해 서민들을 울렸다.
'보증금 미반환'은 전세가격이 매매가격보다 높은 속칭 '깡통전세' 등을 만들어 고의적으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수법이다. 예컨대 거래가 적어 시장 가격이 불분명한 빌라를 2억원에 매수한 뒤, 전세금을 그보다 높게 책정해 계약을 맺고 집주인을 바꾼 뒤 보증금 반환은 나 몰라라 하는 식이다. 최근 경기 수원남부경찰서는 원룸 주택을 건축한 후 전세계약을 맺은 뒤에 전세보증금 반환 능력이 없는 매수자에게 주택을 매도해 보증금 23억원을 편취한 일당 7명을 검거하고 주범 1명을 구속했다. 임차인으로서는 사전에 등기부등본을 떼어 봐도 사기를 피하기 어렵고, 사기를 당한 뒤에는 소송을 걸거나 집을 경매에 넘겨도 전세금을 제때 돌려받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다. 이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보증금 대신 집을 인수받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기관을 상대로 전세대출금을 편취하는 허위 보증·보험은 가장 많은 전세사기 유형 중 하나다. 가짜 전세계약을 맺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시중 은행 등 금융기관을 상대로 전세대출금을 빼돌리는 방식이다. 허위 보증·보험 사기범들은 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무주택 청년이나 지적장애인 등에게 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대출명의자를 모아 허위 전세계약을 맺는 수법을 활용한다. 최근 75억원 상당의 허위 보증·보험 사기를 하다 검거된 일당들은 총책, 알선책, 모집책 등이 공모해 인터넷에 '전세자금 필요하신 분 모집' 등의 허위 광고를 띄웠다. 이를 통해 허위 임대인과 임차인 약 140명을 모집하고 150회에 걸쳐 6개 은행에서 전세자금대출을 신청했다. 이 밖에도 공인중개사가 아니면서 부동산 임대차 계약을 중개하고 수수료를 받거나 임대인으로부터 의뢰·위임받지 않은 계약을 지어내거나 부풀려 허위로 체결하는 경우도 주요 피해 사례로 꼽힌다.
이에 따라 경찰은 전세사기를 △무자본 갭투자 △깡통전세 등 보증금 미반환 △권리관계 허위 고지 △무(無)권한 계약 △위임 범위 초과 계약 △허위 보증·보험(전세대출금 편취) △불법 중개·매매 등 7개 유형으로 크게 구분하고 중점으로 수사를 전면 확대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특별단속 기간에 적발된 허위 보증·보험 사건만 총 115건, 편취한 대출금만 419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당국은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금융당국의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시중은행이나 HUG 측은 최근 보증보험 지급 거절을 늘리는 등 '리스크 관리'에 나서면서 대출이 간절한 서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정부가 이달 중 전세사기 피해 종합대책을 내놓기로 한 것도 전세사기가 단순 경제사범이 아니라 부동산 시장 하락세를 더 부추길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당국 또한 서민들의 수요가 높은 빌라를 중심으로 전세사기 피해가 확대될 것으로 보고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임차인들이 원한다면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가입 시기도 전세계약 이전으로 앞당기는 제도 개선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집을 구하는 사람들은 전세금액과 선순위채권의 합산 금액이 매매가격의 약 70%를 넘지 않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권고한다. 또 법률적으로 전세금보다 앞 순위에 있는 채권 등이 있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매매가격을 확인하기 힘든 빌라 등은 토지 가격과 건축비를 더한 가격으로 추산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인은 HUG 등에서 전세계약서 작성 전에 전세보증·보험 한도 등을 확인할 수 있는데, 임차인은 전세계약서를 먼저 내야지만 가능하다"며 "보증·보험 절차를 앞당기면 세입자가 해당 액수 내에서만 보증금을 지불할 수 있고, 돈을 떼일 가능성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이어 권 교수는 "임차인이 전세보증·보험을 가입하고 싶어도 임대인이 반대하면 가입이 안 되는 상황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홍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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