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도 침체 겪으며 성장···스타트업·VC엔 지금이 기회"
실리콘밸리서 창업보육 '액셀러레이터' 모델 도입
구글·페이팔·드롭박스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 거쳐가
올해도 공격투자···韓스타트업 20곳 해외진출 도울것
“비이성적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하던 시기는 지나고 이제는 기업이 최고의 제품과 사업 모델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구글이 제품에 주력한 기간도 닷컴 버블이 붕괴된 뒤의 침체기였습니다. 스타트업에도, 벤처캐피털(VC)에도 지금이 기회입니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 서니베일에 위치한 플러그앤드플레이 테크 센터 집무실에서 만난 사이드 아미디 플러그앤드플레이 창업자 겸 회장은 서울경제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구글이 진짜 성장을 이뤄낸 시점은 닷컴 버블 붕괴 직후였다”면서 지금이야말로 차세대 빅테크로 성장해 나갈 기업들에는 도약의 기회임을 시사했다. 경기 침체 시그널과 함께 기술 시장의 하락으로 기술 기업들의 시장가치가 연일 곤두박질치고 있지만 페이팔 등 빅테크의 초기 투자자로 명성을 얻은 ‘실리콘밸리 구루’는 “지난해도 펀드 규모를 줄이지 않았고 올해도 이 기조를 이어가 차세대 유니콘을 발굴할 것”이라며 공격적인 투자 의지를 피력했다.
아미디 회장이 이끄는 플러그앤드플레이가 지난해 12월 첫 2주 동안 집행한 초기 투자는 6건에 달한다. 초기 스타트업에 최대 15만 달러, 시리즈 C 이후 후기 스타트업에는 최대 200만 달러를 투자하는데 지난해 총 8000만 달러(약 1020억 원)가량을 투자해 전년과 비슷한 규모를 유지했다. 기술주 위주의 대형 펀드인 소프트뱅크그룹의 비전 펀드와 타이거 글로벌 등이 펀딩 규모를 잇따라 줄이는 것과는 다른 행보다. 그는 “팬데믹 이후 테크 붐이 일 때는 두 명의 괜찮은 창업가가 모이면 곧바로 2000만 달러(약 255억 원)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았다”며 “이제는 200만~300만 달러로 현실적인 수준이 돼 좋은 기업에 투자하기에는 굉장히 좋은 타이밍”이고 “올해도 투자를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계 이민자인 아미디 회장은 실리콘밸리에서 초기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사무실 공간 대여와 창업 보육을 함께하는 액셀러레이터 모델을 정착시킨 인물이다. 이후 스타트업 보육에 나선 많은 업체와 기관들이 액셀러레이터 모델을 도입했다. 플러그앤드플레이는 미국의 대표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2005년 창립)와 함께 양대 액셀러레이터로 꼽힌다.
그 시작점은 미국 실리콘밸리 팰로앨토의 165 유니버시티 애비뉴다. 스탠퍼드대 정문에서 차로 3분 거리, 팰로앨토 다운타운 초입에 위치한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이 건물은 창업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행운의 건물’ 또는 ‘카르마의 건물’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오늘날 빅테크의 대표적인 성공 모델이 된 구글과 페이팔이 창업 초기 첫 사무실로 바로 이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평범한 건물을 ‘행운의 건물’로 만든 것은 사람을 알아보고 이들 간 시너지를 만들어낸 건물주, 바로 아미디 회장이었다. 테크 분야와는 접점이 없던 그는 세입자로 들어온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창업자와 수시로 소통하며 구글이라는 기업의 출발과 이후의 여정을 지켜보고 건물에 들어온 다른 창업자들 간 네트워킹을 주선하면서 오늘날 플러그앤드플레이의 사업 모델을 구상했다. 이후 페이팔부터 드롭박스, 핀테크 업체 렌딩클럽 등에 이르기까지 그를 거쳐간 실리콘밸리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은 부지기수다. 초기 투자를 받은 무수한 기업 중에는 스스로 빅테크가 된 이들 못지않게 빅테크에 인수돼 성공적인 ‘출구’를 찾은 사례도 여럿이다.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앤디 루빈이 창업에 참여한 데인저를 비롯해 로컬 커머스 업체 밀로닷컴 등은 각각 마이크로소프트(MS)와 이베이에 인수됐다.
아미디 회장이 단순 투자에 그치지 않고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를 만든 이유는 그가 생각하는 실리콘밸리의 성공 요인과도 맞닿아 있다. 바로 성공의 롤모델을 가까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미디 회장은 “한국에서 삼성과 같은 대기업의 총수를 만나려면 50단계는 절차를 밟아야겠지만 실리콘밸리에서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를 만나기는 그보다 10배 더 쉬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자신이 테크 투자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게 된 것도 가까이에 롤모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1979년 팰로앨토에 400제곱피트(약 11평) 남짓한 사무실을 열었을 때 옆 사무실에 이사온 사람이 피에를루지 차파코스타 로지텍 창업자였다”며 “매일 소통하며 로지텍이라는 제국의 건설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것이 단초가 됐다”고 돌아봤다.
2006년 플러그앤드플레이 테크 센터를 열고 본격적으로 액셀러레이터 역할에 뛰어든 그는 이곳을 창업을 원하는 이들의 ‘사랑방’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훌륭한 창업자’를 찾는 일에 매달렸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이들의 성공을 지켜보는 게 아니라 함께 뛰는 플레이어가 되기를 원했다”고 말한다. 지난해 뉴욕 증시에 데뷔한 인공지능(AI) 기반 법률·정책 서비스업체 피스컬노트의 한국계 미국인 창업자인 팀 황의 가능성을 단번에 알아본 것도 그였다. 2013년 플러그앤드플레이가 주최하는 스타트업 부트 캠프에 참여한 황은 플러그앤드플레이에서 성공 스토리를 써나갔다. 아미디 회장이 한국 시장에 주목하는 것도 그와 같은 훌륭한 인재들 때문이다. 그는 “한국은 일본·싱가포르 등 다른 아시아 국가와는 다르다”며 “똑똑한 인재들이 대기업에 가는 것보다 창업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고 짚었다.
최근 아미디 회장은 활발한 글로벌 행보로 주목받는다. 5년 사이 글로벌 투자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그는 세계 50곳에 지사를 설립해 현지의 스타트업들과 실리콘밸리를 연결하고 있다. “미국 시장의 기업가치는 너무 높게 책정돼 있는 반면 해외 스타트업은 저평가돼 있다”는 것이 그가 해외로 눈을 돌린 이유다. 5년 전 10%였던 해외투자는 현재 40%까지 늘었다. 한국에는 2021년 지사를 설립했다. 아미디 회장은 “서울이 ‘제2의 실리콘밸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한국에서 올해 20곳에 투자를 해 이들의 해외 진출을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리콘밸리=정혜진 특파원 madei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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