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에 포착한 한국 여성의 모습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3. 1. 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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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사진작가 한영수
백아트 서울 재개관전
'서울 명동(1956-1963)'

마치 왕자웨이 감독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세련된 차림의 당당한 여성 표정이 너무나 현대적이어서 실제 장면이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6·25동란 이후 서울 명동과 한강변, 마포 등에서 포착한 우리 할머니 세대의 모습이 친근하다. 한국 1세대 사진작가 한영수(1933~1999)가 60여 년 전 서울 남대문과 명동 등지에서 찍은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전후 우리 사회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최근 서울 종로구 화동으로 옮겨가 독립 전시 공간을 연 갤러리 백아트가 재개관전으로 사진작가 한영수를 선택했다. 유행가 가사를 딴 전시 제목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에서 예상되듯 여성들의 당당함에 주목한 사진 30여 점을 모았다. 복고 열풍에 숙녀의 양장 뒷모습은 친근하지만, 합승객을 찾는 소년의 얼굴에서 시대가 읽힌다.

수잔 백 백아트 대표는 한영수 사진의 기록적 가치뿐 아니라 미학적 가치에 매료돼 2018년 백아트 LA점에서 먼저 개인전을 열었다. 백 대표 주선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에 그의 작품 20점이 소장되는 성과로 이어졌고, 2월까지 LACMA에서 열리는 '사이의 공간, 한국미술의 근대'전에도 출품되고 있다. 미국에서 금의환향 후 열리는 귀국 전시인 셈이다.

한영수는 1958년 한국 최초 사진 연구단체인 '신선회'에 가입했고 광고사진 스튜디오 '한영수사진연구소'를 세워 국내 광고사진 1세대로 맹활약했다. 상업작가로 알려졌던 그의 사진이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막내딸 한선정 씨가 부친 작고 후 필름 뭉치를 발견하면서부터다. 생전에 인화된 적이 없는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국내 사진작가 중 최초로 2017년 뉴욕 국제사진센터(ICP)에 작품이 소장됐고 개인전도 열었다. 이러한 재조명은 미국의 비비안 마이어나 가나의 제임스 바너 등 무명 작가가 새롭게 발굴돼 재평가받는 과정과 유사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전 폐허를 딛고 일어서는 여성들을 주체적인 시선으로 찍은 사진을 집중 선보였다. 작품 제작 연도가 1956~1963년으로 길게 정해진 이유다. 한선정 대표는 "아버지처럼 사각 틀 속에 갇히기 싫어서 디자인계로 갔는데, 세련된 부친의 작품을 발견한 후 널리 알리기로 결심하고 주제별로 분류해 사진집을 내고 있다"고 밝혔다. 전시는 18일까지.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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