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효력정지시 대북 확성기·전단 검토···‘강 대 강’ 조장하는 통일부

박광연 기자 2023. 1. 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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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지난해 9월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대북제의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일부가 남북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시 현행 법에서 금지된 대북 확성기 방송과 대북전단 살포가 가능한지 법적 검토에 착수했다. 윤석열 대통령 지시에 따른 후속조치이지만 남북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통일부가 ‘강 대 강’ 기조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통일부 자체 해석이 아닌 국회 입법으로 다룰 사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통일부 당국자는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9·19 군사합의에 대한 효력 정지가 이뤄질 경우 남북관계발전법 24조에서 금지하는 행위들을 할 수 있는지 해당 부서에서 법률적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9월19일 평양공동선언과 함께 발표된 9·19 군사합의(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는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적대 행위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전날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하자 곧바로 후속 조치에 착수한 것이다. 지난달 무인기 침범과 유사한 북한의 고강도 도발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대북 확성기 방송과 시각매개물 게시, 대북전단 살포 등을 재개할 수 있다는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북한이 대남 전술핵 위협을 극대화하며 사실상 9·19 군사합의를 무력화시킨 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치라고 통일부는 설명한다. 통일부 당국자는 “최근 북한이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데 대해 압도적이고 즉각적인 대응을 해나가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합의 무력화가 현실화된다면 그 책임은 북한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북 간 모든 합의를 존중하고 이행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이 달라지지 않았다”면서 합의를 이어가기 위한 방안이 아니라, 무력화시 후속조치부터 준비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북 관계 개선과 위기관리에 앞장서야 할 통일부가 대북 ‘강 대 강’ 기조를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대북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허용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역대급 도발을 일삼고 있는 북한을 자극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결과만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해 8월 대북전단이 코로나19 유입 원인이라며 남측에 “아주 강력한 보복성 대응”을 시사한 바 있다. 북한은 2020년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하기도 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통화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허용하면 북한이 국지전 같은 구체적 행동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통일부가 국방부와 다른 입장에서 중심을 잡고 남북 관계의 안정을 추구해야 하는 책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을 비핵화 협상장으로 이끌어오겠다는 현 정부 ‘담대한 구상’의 진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중지하기로 명시한 2018년 4·27 판문점선언도 위태로워 보인다. 통일부 당국자는 “평양공동선언 효력 정지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며 “판문점선언과 9·19 군사합의를 연계하기 보다는 9·19 군사합의 자체의 효력만 갖고 판단하는 게 맞다”고 선을 그었다.

통일부 당국자는 “별도의 입법 절차는 필요 없을 것이라 본다.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라며 “법령 해석은 소관 부처의 권한이기에 통일부가 책임을 갖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통일부가 자체 법령 해석만으로 법상 금지 규정을 변경할 경우 논란이 예상된다. 대북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조항은 2020년 국회 입법 절차를 거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여야는 당시 ‘대북전단살포금지법’으로 불린 해당 조항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통화에서 “남북관계발전법부터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법을 멋대로 해석하면 고무줄 법이 된다”고 말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통화에서 “표현의 자유를 너무 포괄적으로 제약하는 전단 살포 금지 조항은 손을 봐야한다”면서도 “법을 개정하지 않고 해석으로 바꾸면 국회에서 만든 법을 무력화시킨다는 논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이날 김관용 수석부의장 명의 입장문에서 “북한에 더 이상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결단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며 윤 대통령의 9·19 군사합의 조건부 효력 정지 검토 방침을 환영했다. 민주평통은 ‘조국의 민주적 평화통일’을 지향한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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