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약 먹으면서 버티는 웹툰작가들…우울증 일반인의 3배 높아

유선희 기자 2023. 1. 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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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작가 300여명 대상 첫 정신건강 실태조사
2013년 만 17세에 데뷔한 한 웹툰작가의 작업실 모습. 윤기은 기자

“재능이 넘치거나 그림체가 단순한 경우 말고는 60~70컷을 일주일 만에 그린다는 것 자체가 자신을 갈아 넣어야만 가능해요.”

“작가들이 마감에 쫓기는 상태를 비유하자면 정신적으로 쫓기고 있는 빚쟁이 상태라고 볼 수 있어요. 사체업자들이 찾아올까 봐 기간 안에 어떻게든 이자를 갚고 원금을 갚아야 하는 쫓기는 상태 같아요.”

“연재를 시작한 지 3년이 넘어가고 4년이 되니까 슬슬 제가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이대로는 창문 밖으로 뛰어내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신과 약도 먹고 있고 연재도 절반 포기했어요. 제 주변에 우울증 없는 작가는 한 명도 없어요. 병원에 안 가고 버티는 사람은 몇 있지만요.”

웹툰작가들의 진단 질병.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5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공개한 ‘웹툰작가들의 정신건강 및 신체건강과 불안정 노동수준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웹툰작가 3명 중 1명은 우울증과 불면증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악성 댓글과 과도한 업무량, 촉박한 마감 시간 등이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쳤다.

연구진은 최근 1년간 50만원 이상 소득이 있는 웹툰 전업작가 32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진행했다. 웹툰작가 노동조합, 한국만화가 협회 등에 소속된 웹툰작가 15명과 심층면접도 했다. 웹툰작가의 정신, 신체건강 실태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웹툰작가의 28.7%가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28.2%는 불면증을 경험했다. 복지부가 2021년 12월 발표한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사’에서 만18세 이상~만79세 한국인이 ‘평생 경험하는’ 우울장애 유병률이 7.7%였다. 1년 유병률은 1.7%에 불과했다.

설문조사에서 웹툰작가들 17.3%는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고, 8.5%가 이를 계획했으며 4%는 시도까지 했다고 응답했다. 일반인이 평생 극단적 선택을 생각, 계획, 시도한 비율(각 10.7%, 2.5%, 1.7%) 보다 높다. 연구진은 “댓글을 통해 작가에 대한 비난경험이 있는 경우 우울, 불안, 수면장애 진단 위험이 크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웹툰작가들의 정신건강 실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실제로 작가에 대한 비난을 받은 경험이 있으면 우울장애 진단 위험이 1.9배 높고, 수면장애 증상도 2.18배 높았다. 극단적 선택에 대한 계획을 세울 위험 역시 2.45배 높았다. 작품에 대한 비난을 받은 경험이 있으면 위험도는 더 올라갔다. 우울장애 진단 위험이 3.94배, 수면장애 증상은 3.79배 높았다.

장시간 앉아서 일하는 업무 특성상 근골격계질환과 방광염, 위장질환과 안과질환의 발병률도 높았다.

연구진은 콘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이 비약적인 성장을 거뒀지만 웹툰작가의 노동환경은 열악해졌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독자에게 선택받기 위한 ‘좋은 자리’ 점유가 작품의 성공과 직결되면서 작가들이 컷 수를 늘리는 등 과도하게 노력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작가들의 과도한 업무량은 근골격계 부담을 증가시키고, 댓글을 통한 무분별한 피드백은 작가들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웹툰작가들의 업무강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과도한 업무량과 촉박한 마감 시간도 정신건강 악화로 이어졌다. 웹툰작가의 하루 노동시간은 평균 9.9시간이고, 마감 전날은 11.8시간으로 치솟았다. 주당 근무 일수는 5.7일,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51시간으로 나타났다. 설문 응답자 절반 이상(64.4%)이 “근무시간이 적당하지 않다”고 답했다. 3명 중 1명은 “육체적인 것은 물론 정신적으로 지쳐 있다”고 했다.

웹툰작가들은 업무강도를 높이는 원인으로 ‘한 회당 그려야 하는 컷 수 많음’(133명)을 가장 많이 꼽았고, 이어 ‘연재 주간이 짧아서’(120명), ‘플랫폼과 제작사 압박 때문’(86명) 등이라고 답했다.

소득은 불안정했다. 응답자의 경력은 평균 4.15년이었는데 22.5%가 월 최소소득이 50만원 미만이라고 했다. 월 최대소득이 200만~400만원이라는 응답이 51.5%로 가장 많았고, 월 최소소득이 50만~100만원 미만이라는 응답은 40.9%로 나타났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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