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한계 봉착한 '계획된 적자'
주식 시장에서 비교적 단기간에 수익률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 영업이익이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되는 '턴어라운드' 종목을 미리 사뒀다가, 애널리스트들이 일제히 흑자 전환을 관측하고 목표주가를 상향할 때 주식을 파는 것이다.
적자 실적에서 탈출해 흑자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로 '좋은 기업'과 '나쁜 기업'을 가르는 가늠자가 된다. 신세계, 현대모비스, CJ ENM, SK텔레콤, 고려아연, KT&G, 한섬, 에스원, 유한양행, 국도화학까지 10곳의 기업은 2000년 1분기 이후 지난해 2분기까지 90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좋은 기업들이다.
최근에는 '흑자=좋은 기업'이라는 인식이 좀 달라진 것 같다. 쿠팡, 컬리, 배달의민족 등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회사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이 기업들의 첫 번째 목표는 외형 확대다. 투자받은 돈으로 가입자 수를 늘리고 거래액을 증가시키기 위한 온갖 방법을 쓴다. 월간·주간·일간 할인쿠폰에 각종 적립금까지 주면서 고객을 플랫폼에 주저앉힌다. 외형 확대 시기에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적자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일단 회사 사이즈만 키우면 해당 기업의 전망을 높이 산 벤처캐피털 등 외부 투자사에서 대규모 투자를 받는다. 비용이 수익보다 많은 '데스밸리'만 잘 견디면, 언젠가는 흑자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이 있었다. 수천억 원대 신규 투자를 수혈하며 버티다 상장으로 자금 조달을 타진한다. 이 구조를 '적자 성장 구조'라고 불렀다.
스타트업에 당연하던 이 구조가 이제는 한계에 봉착했다. 경기 침체의 시장 상황에서 통하지 않고 있어서다. 컬리의 상장 철회를 보고 다시 확신하게 됐다. 경기 침체로 자금 시장이 경색되면 외부 신규 투자가 사라진다. 투자를 받지 못해 기업가치를 높이지 못하니 회사의 상장마저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지난해 첫 분기 흑자 전환을 기록한 쿠팡의 사례는 더욱 희귀하다. 2010년 창업 이후 첫 흑자까지 무려 12년이 걸렸다. 하지만 여전히 누적 적자는 6조원에 달한다. '계획된 적자'는 모든 회사에 통하지 않는 표현이다.
[홍성용 컨슈머마켓부 hsygd@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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