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창] 인간의 불행을 줄이는 기술
고독사 막는 기술 나오고
인력 절감 뜻하던 키오스크
노인·장애인 위해 일한다
기술은 인간소외를 해소
얼마 전 소설 집필을 위해 취재차 소프트웨어 기술 박람회에 다녀왔다. 소설이 본업인 내가 소프트웨어 기술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으나, 막상 현장을 둘러보니 뜻밖의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소외시킨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박람회를 둘러보며 깨달은 점은 시대 변화에 발맞춰 기술의 발전도 방향성을 달리한다는 것이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개발된 기술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특히 실버 세대와 장애인의 사용 편리성을 고려한 키오스크 개발, 상수도 사용량으로 독거자의 상태를 진단하는 기술이 그러했다.
팬데믹 기간에 키오스크를 설치한 상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가끔 주문할 때 어려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금액을 직접 입력해야 하거나, 다양한 옵션의 음료를 주문해야 할 땐 허공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멍해지기도 했다. 나의 어머니는 키오스크 주문을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키오스크 설계자에게 화를 냈다. 물건을 구매하는 일은 사회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에 속한다. 벽이 있어선 안 된다.
실버 세대를 위한 키오스크를 개발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것은 새로운 소프트웨어 기술이 아니다. 기존 기술의 방향성을 수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용자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삽입되거나, 이동성을 가미한 키오스크는 새로운 기술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인력을 줄이려는 시대의 흐름은 서글프지만, 상대적 약자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기술 개발을 이끌어가야 할 새로운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느꼈다.
1인 가구가 나날이 늘어가는 때에 상수도 사용량으로 독거자를 진단하는 기술 역시 무척 반가웠다. 가구마다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수돗물 사용량이 평소와 다르면 보호자(사회복지사)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이다. 매해 3000명 넘는 사람들이 고독사로 사망하고, 청년층 고독사 비율도 6~8%로 집계되고 있다. 청년층의 활동성과 인적 네트워크를 감안했을 때 결코 낮은 비율이 아니다. 서울시의 1인 가구 비율은 셋 중 하나에 육박한다. 고독사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기술 개발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 모두 예비 1인 가구이기 때문이다. 사별이나 이별로 혼자가 될 가능성이 그러지 않을 가능성만큼이나 높다.
그 외에도 교통사고 목격자를 찾아주는 앱,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심신의 안정을 유도하는 비트 개발, 예비 창업자에게 메타버스로 창업 경험을 쌓아주는 프로그램 등이 눈에 띄었다. 이러한 기술은 기업 이윤 극대화를 위한 인력 절감이 아니라 인간의 불행을 줄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른 박람회에선 청각장애 기사를 위한 운전 지원 시스템과 시각 정보를 점자와 촉각으로 제공하는 웨어러블 기기를 보았다. 누군가는 사회적 소외를 막는 기술 개발에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결국 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갈 것이라는 생각을 바꾸게 됐다. 소외되는 이가 없고, 모두가 연대할 수 있는 미래로 향하는 기술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온라인 수업 도중에 학생의 동공 크기를 측정해 집중력을 체크하는 기술처럼 학생들에게 슬픔을 불러일으킬 기술의 발전도 함께 이뤄지고 있지만 말이다.
우리가 서로를 보살피는 쪽으로 기술 발전을 이끌어야 할 중요한 이유는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우리의 불행을 막기 위해서다. 기술은 결국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인류를 파멸시킬 수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 2023년엔 어떤 다양한 기술이 우리를 연대하게 할지 기대해본다.
[이서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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