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제작비 5천억 '아바타' vs 140억 '영웅'

전지현 기자(code@mk.co.kr) 2023. 1. 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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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자본·기술력 앞세운
할리우드 공세에 밀리지만
감독·배우 열정 쏟은 '영웅'
카타르시스와 긴 여운 안겨

제작비 4억달러(약 5000억원) vs 140억원.

새해 영화관 흥행 1위 '아바타: 물의 길'과 2위 뮤지컬 영화 '영웅' 제작비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견줄 만하다. 마케팅비만 2억달러(약 2500억원)를 쏟아부은 아바타는 개봉 22일 만에 관객 800만명을 넘어 무난히 10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영웅의 개봉 15일차 성적은 관객 185만명으로 그 격차가 크다.

숫자로만 보면 막대한 자금을 앞세운 할리우드 영화에 한국 영화가 KO패 당한 형국이다. 13년 만에 돌아온 아바타는 최첨단 기술로 관객을 압도했다. 초당 24프레임으로 제작되는 기존 영화의 틀을 깨고 초당 48프레임으로 촬영한 수중세계는 경이로웠다. 제작진이 직접 개발한 3D 촬영 특수카메라, 수중 퍼포먼스 캡처 기법, 3년에 걸쳐 배우 얼굴 표정을 나비족에게 옮기는 페이셜 캡처 기술 등의 위력이 엄청나 '3D CG 혁명'이라고 할 만했다. 상영시간 내내 배우들과 함께 숲을 거닐고 물속을 유영하고 하늘을 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화면 속으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어떤 장면을 봐도 상상 이상이었지만 감동이나 여운은 없었다. 3D 안경을 쓰고 3시간 동안 관람하느라 눈의 피로가 극에 달했다. 영화 역사의 한 획을 그은 CG의 향연을 따라잡기 바빠서 나비족의 비극에 공감할 여유가 없었다.

반면에 흥행에선 아바타에 밀리고 있는 영웅은 오랜만에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준 수작이었다. '국뽕'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안중근 의사의 희생에 눈물이 흘러내렸고 그가 목숨을 바친 조국과 동양평화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게 됐다. 윤제균 감독과 배우들은 동시녹음과 롱테이크 등 어려운 길을 통해 뮤지컬의 감동을 담아냈다. 노래 이외 사운드를 통제하기 위해 한겨울 세트장 안에 난방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패딩도 못 입게 했다고 한다. 롱테이크여서 노래에 음이탈이 생기면 처음부터 다시 찍어야 해 배우와 스태프들이 탈진할 정도의 고통을 이겨내야 했다. 그 덕분에 음악적 완성도는 높았으며 대규모 전투와 거리 추격, 광활한 설원 장면 등으로 공연 무대의 표현 한계를 뛰어넘었다.

자본과 기술의 힘으로 무장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에 눌려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지만 한국 영화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한국 영화가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등에서 수상할 정도로 위상은 높아졌지만, 아직 세계적 흥행작을 만들지 못해 아쉽다.

감독과 배우, 촬영과 컴퓨터그래픽(CG) 기술 등 제작진의 역량은 할리우드 수준이지만 대규모 자본 투자 없이 세계 극장가를 휩쓸기는 힘들다. 거의 맨몸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싸웠던 독립군처럼. 하다못해 영웅 배우들의 와이어리스 마이크와 인이어 이어폰을 CG로 일일이 지우는 작업에도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새해 불황의 그림자가 깊지만, 한국 영화가 체급을 높여 국제무대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그날'이 오기를 기원해본다. 실낱 같은 희망처럼 보이던 조선의 독립 꿈이 이뤄졌듯이.

영화뿐만 아니라 저평가된 국내 미술 작가들이 세계 시장에서 제대로 대접받을 날도 기다린다. 지난해 세계 3대 미술품 장터인 영국 프리즈가 서울에서 열리면서 한국 작가들이 주목받았는데 이제 결실을 맺어야 할 시간이다. 다행히 단색화 거장들 외에 한국 실험미술과 설치미술 작가들이 해외 전시를 열 예정이라는 희소식이 들려온다. 이 기회가 미술품 판매로도 이어지려면 갤러리와 작가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한류 주역인 K드라마도 해외 OTT의 배만 불리지 않고 정당한 흥행 수익을 받는 '그날'이 오기를 바란다.

[전지현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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