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영혼 가진 친구처럼… TV, 가전, 자동차까지 치열한 ‘두뇌 경쟁’
BMW는 4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기조연설을 맡아 ‘디지털 영혼을 가진 친구 같은 차’를 콘셉트로 한 전기차 ‘i 비전 Dee’를 공개했다. 이 차는 인공지능 친구(비서)를 탑재했고, 감정을 표현하듯 외관 색상이 다양하게 변한다. 전면 그릴도 울고 웃는 표정을 짓는다. 특수 안료가 포함된 캡슐 수백만 개가 전기장에 의해 한쪽으로 쏠리는 원리다. 올리버 집세 BMW 회장은 “미래 차는 사람과 감성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수준의 지능을 갖게 될 것”이라며 “2025년부터 새 전기차 플랫폼 ‘노이에 클라세’를 기반으로 이 차의 양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에서 연초부터 치열한 ‘두뇌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CES의 단골손님인 TV·가전을 비롯해 자동차, XR(확장현실) 기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얼마나 똑똑한 두뇌를 장착하느냐가 화두가 된 것이다. 특히 자동차는 전통 내연기관 대신 ‘모터로 움직이는 전자 기기’가 되면서 몸(차체) 위에 어떤 두뇌(반도체와 운영체제)를 탑재하느냐가 중요해졌다. TV 역시 어떤 AI(인공지능) 반도체를 장착했는지에 따라 화질이 좌우될 정도로 반도체의 위상이 높아졌다.
◇“호스 파워”는 옛말, 이젠 “브레인 파워”
소니혼다모빌리티는 이날 첫 전기차 ‘아필라’를 공개하며, 소니의 게임·영화·음악·가상현실을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카’를 2025년 양산하겠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이를 위한 소프트웨어 실행을 위해 고성능 반도체 기술을 가진 퀄컴과 협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앞서 “연산 능력이 최소 초당 800조회 이상인 반도체를 탑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뿐이 아니다. 자동차 부품사들도 수퍼 컴퓨팅 능력과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자동차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며 자신들이 자동차 두뇌 역할을 하는 테크 회사임을 자처했다. 미국 라이다·정밀 지도 스타트업 루미나 테크놀로지의 오스틴 러셀 CEO는 이날 미디어 행사에서 “과거엔 엔진의 힘인 ‘호스 파워(마력)’가 중요했지만, 이제 자동차는 ‘브레인 파워’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1871년 설립된 부품사 독일 콘티넨탈은 이번 미디어 행사 참가자에게 배포한 행사 소개 카드에 QR코드를 반도체 모양으로 그려놨다. 콘티넨탈은 전력 효율이 좋고 대량생산까지 가능한(scalable) ‘시스템온칩’(고성능 반도체)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니콜라이 세처 콘티넨탈 CEO는 “자동차에 있어 소프트웨어는 게임체인저”라며 “미래 차에 필요한 차세대 아키텍처를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부품사인 보쉬도 이날 자신들이 세계적인 ‘센서’ 회사임을 강조하면서 이날 퀀텀 센서(양자 센서)를 개발하기 위해 IBM과 협업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양자 센서는 기존 센서보다 정밀성이 1000배 높아 궁극의 스마트카를 만들 수 있다.
◇두뇌 만드는 반도체 기업들에 주목
이처럼 반도체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올해 CES에선 반도체 기업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미 반도체 기업 AMD의 리사 수 CEO(최고경영자)는 4일(현지 시각) 기조연설 무대에 올라 “팬데믹(코로나)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반도체가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며 “사실상 모든 제품, 모든 서비스, 우리 삶의 모든 경험은 반도체에 의해 구동된다”고 말했다.
반도체 기업들도 일제히 전통 산업인 PC, 노트북을 넘어 자동차 등 새 먹거리로 영역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스마트폰용 두뇌 반도체(AP)로 유명한 퀄컴은 이날 ‘스냅드래곤 라이드 플렉스(Ride Flex)’라는 자동차용 통합 반도체를 공개했다. 이 반도체 하나로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ADAS)을 비롯해 운전자 모니터링, 인포테인먼트, 자율 주차 등의 기능을 한꺼번에 지원한다. 퀄컴은 내년 이 제품을 본격 양산할 계획이다. 그래픽 반도체 분야의 대표 기업인 엔비디아는 전기차 개발에 나선 대만 폭스콘과의 협업을 발표한 데 이어, 현대차그룹, 중국 BYD, 스웨덴 폴스타와도 손잡고 차량 게임용 고성능 반도체를 개발하기로 했다. 세계 TV 시장 1·2위인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올해 신제품인 ‘네오QLED’ ‘OLED 에보’ TV를 각각 선보이면서 모두 첨단 반도체 성능을 앞세웠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