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국엔 없고 한국에만 있는 '3대 독소조항' 당장 뜯어고쳐야"
<4> 최우선 과제 - 기업 현실 무시한 규정 손질
중대재해법 의무조항만 1,222개
산재 예방보단 자료 검토로 허비
파견·도급규제 일자리 창출 발목
기업 다양한 생산방식 활용 제약
최저임금제도 글로벌 기준에 역행
소모적 논쟁으로 노사갈등 부추겨
“중대한 과실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도 어려운 데다 준수해야 할 의무 조항이 1000개가 넘습니다. 산업 현장에서 실질적인 안전을 챙기는 것보다 처벌을 피할 목적으로 각종 자료를 만드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실정입니다.”
대기업에서 산업 안전을 담당하는 임원은 시행 1년이 된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을 가리켜 “주객이 전도됐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중대재해법의 대부분 의무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준용하고 있는데 산업법상 의무 조항만 1222개에 달하기 때문이다. 충분한 논의와 토론 과정 없이 노동·시민단체가 강력하게 요구하고 정치권이 이를 그대로 수용해 법안을 졸속 통과시킨 결과 산업 현장의 혼란만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산업계에는 기업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는 노동 관련 독소 조항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이들 조항은 노동계에 유리하게 설계돼 있거나 개념이 모호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경우도 많다.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은 늘 노사 갈등의 ‘불씨’가 돼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높인다. 대개가 글로벌스탠더드에 맞지 않아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해야 하는 국내 기업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중대재해법이 대표적이다. 이 법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사망 사고가 발생했을 때 처벌(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산업안전보건법이 규정하는 책임 범위 및 처벌 수준(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은 상황이어서 법 제정 당시부터 ‘옥상옥’ 규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더욱이 입법 모델이 된 영국의 ‘기업살인법’에는 존재하지 않는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뒀다는 점에서 재계의 비판이 집중됐다.
기업인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고 처벌에 초점을 맞춘 결과 산재 예방 효과는 오히려 떨어졌다. 지난해 3분기 누적 산재 사망자(고용노동부 재해 조사 사망사고 발생 현황)는 510명으로 전년 동기(502명) 대비 8명 늘어난 것이 단적인 예다. 정부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자기 규율과 예방 역량을 기본 원칙으로 삼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내놨지만 산업계는 “처벌·감독 규정만 강화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황용연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한국은 사업주 처벌에 있어서 만큼은 전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강한 법률 체계를 갖고 있다”며 “사고 사망자를 선진국 수준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과도한 처벌 수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예방 중심의 산업 안전 정책 수립과 사업 추진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직된 파견·도급 규제도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독소 조항으로 꼽힌다. 파견법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겪은 후인 1998년 시행됐다. 원활한 인력 수급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이지만 산업 현실에 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경비원·사무지원직 등 32개 업종에만 파견을 허용하고 있는데 기업의 수요와는 무관한 업종이 대부분이다. 수요가 가장 많은 제조업의 경우 직접 생산 공정에 파견을 금지하는 등 엄격하게 허용 업무를 제한하고 있다.
도급은 파견과 달리 업종·기한에 규제가 없지만 파견과 경계가 불분명해 법적 분쟁의 빌미가 되고 있다. 실제 최근 법원이 파견법을 사내 도급에 적용해 불법 파견으로 판결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기업들의 다양한 생산 방식을 활용한 경쟁력 확보가 제약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주요 국가들이 경쟁력 확보를 위해 파견 허용 업무를 폭넓게 인정하는 것과 대비된다. 미국과 영국·프랑스는 전 업종에서 파견 근로를 허용하고 있고 독일(건설업)과 일본(건설·경비·의료·항만운송)도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파견을 허용하고 있다.
김강식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파견제도를 현재 특정 업무만 허용하는 포지티브 방식에서 특정 업무만 금지하고 그 외 모든 업무의 파견을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고 파견 기간을 유연화하는 등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업종 ·지역 구분 없이 단일 적용하는 최저임금제도도 글로벌스탠더드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 최저임금제도는 30여 년 전 경제·사회 환경에 기반해 형성된 것이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 최저임금이 크게 인상되고 상대적 수준도 높아지면서 최저임금의 제도적 불합리성이 더욱 두드러진 상황이다. 업종·지역 간 경영 환경의 현저한 차이가 반영되지 못한 데다 매년 노사 요구안을 줄다리기하듯 조정하는 최저임금 결정 방식은 소모적 논쟁과 극심한 노사 갈등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이미 미국·일본·프랑스를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은 업종·지역·연령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이미 최저임금을 구분해 적용하고 있다. 경총 관계자 는 “업종별로 지불 능력과 생산성 등에 차이가 큰 현실을 고려해 현 최저임금법상 임의 규정인 ‘최저임금의 업종별 구분 적용’을 의무 규정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주요 경쟁국에 비해 협소한 최저임금의 산입 범위도 넓힐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최저임금 준수 여부를 판단하는 임금의 범위로 기본급과 고정 수당, 매달 지급하는 상여금과 현금성 복리후생비 일부만 포함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근로자들이 받는 기타 임금과 숙식 제공 같은 현물은 최저임금에 산입되지 않아 실제 기업이 최저임금보다 월등히 높은 보수를 지급해도 최저임금법을 위반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서민우 기자 ingaghi@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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