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수준인지 보여주겠다”던 김명수 대법원장의 6년

강희철 2023. 1. 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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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2017년 9월25일 오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함께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강희철ㅣ 논설위원

“오늘 저의 취임은 그 자체로 사법부의 변화와 개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자신감이 아닐 수 없다. 보통은 말빚의 무서움을 생각해 삼가는 법인데, 6년 전 김명수 대법원장은 달랐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명을 받은 날, 기자들 앞에서 말했다. “31년 5개월 동안 재판만 한 사람이 어떤 수준의 모습인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취임사에선 대법원의 재판 적체 해소를 주요 과제로 꼽았다. “상고심의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통계에 잡힌 현실은 끔찍하다. 김 대법원장 취임 직전 연도인 2016년 대법관 12명의 1인당 담당 사건(본안) 수는 연간 3361건에 달했다. 감당 불능의 수치다. 그래서 상고심은 오래전 ‘10초 재판’으로 전락했다.

“(한달에 두번 있는) 합의 기일에 각 주심 대법관별로 2시간, 길어야 3시간이 주어지는데, 그 시간 동안 100건의 사건을 합의하려면 1건의 합의에 허용되는 시간은 기껏해야 1분30초 정도를 넘지 못한다. 물론 아주 간단히 설명하고 지나가는 사건도 (…) 적지 않아서 실제로 내용을 설명하는 사건 수는 100건보다는 상당히 적어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개별 사건에 대한) 평균 설명 시간이 3~4분을 넘어가기 힘들다. (…) 합의할 사건의 내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합의에 임하게 된 다른 대법관들이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잠시 침묵이 흐를 수밖에 없는데, 주심 대법관은 잠시 기다리다 더 이상 질문이나 이견 제시가 없으면 자신이 제시한 의견에 찬성한 것으로 보고 다음 사건의 설명에 들어가게 된다. (…) 그 침묵 상태의 대기 시간이 불과 10초를 넘지 못한다.”

박시환 전 대법관이 2016년 처음 공개한 대법원 소부의 재판 모습이다. 대법관 14명 중 사법행정을 맡은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이 각 4명씩 3개 재판부(소부)를 구성해 사건을 심리하는데, 합의 기일이 돼서야 처음 접하는 사건이 4분의 3이나 된다. 결국은 주심 대법관 1명의 의견이 4명의 ‘합의 판결’로 정리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박 전 대법관은 “실제로는 10초보다 더 짧다”고 했다. 누군가의 권리, 명예, 재산, 인생이 걸린 사건이 순식간에 재단되고 마는 것이다. 어떤 이들에겐 ‘10초 재판대’에 올라가는 것조차 행운이다. 민사·행정·가사 상고 사건 10건 중 7건은 10초 재판의 문턱을 못 넘고 컷오프(심리불속행 기각)를 당한다. 그러니 상고장에 대법관 출신 변호사 이름이라도 올리려고 기천만원 한다는 전설의 ‘도장값’을 치르는 사람들이 줄지 않는다.

“상고제도 개선 방안도 가까운 시일 내에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6년 임기 마지막해인 올해 신년사에서도 김 대법원장은 여전히 ‘미래형’으로 말했다. 어떤 방안을 내놓든 9월24일 퇴임 전에 입법까지 결론이 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사이 대법관 1인당 사건은 3665건(2021년 말 기준)으로 되레 늘었다. 누군가를 직무유기로 심판했을 김 대법원장이 직무유기를 저지른 셈이다. 그뿐이 아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을 겪은 임기 첫해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에 대해 많은 고심을 하고 있다”더니 그 ‘고심’을 퇴임식 날까지 이어갈 모양이다.

김 대법원장은 오히려 ‘소임’ 이외의 일로 이목을 끌었다. ‘재판 충실화 예산’ 수억원을 대법원장 공관 개축 비용으로 전용했다가 적발당한 것이나, 그 공관에 판사인 아들 내외를 들어와 살도록 한 ‘공관 재테크’ 논란은 사소한 축에 속한다. 문재인 정부 때 더불어민주당의 탄핵 소추 대상으로 찍힌 고법 부장판사가 사표를 내자 면담에서 “지금 (민주당이)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라며 돌려보냈다. 그래 놓고는 논란이 일자 딱 잡아뗐다가 육성이 공개되는 바람에 ‘거짓말한 대법원장’이 되고 말았다. 결국 고발까지 당했는데, 검찰은 여태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님이 세가지 인사 실수를 했어요. 첫째가 윤석열 검찰총장, 둘째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세번째가 김명수 대법원장이에요. 그 양반의 어딜 보고 낙점한 것인지, 참.” 지난 연말 한 모임에서 ‘친문계’ 민주당 의원이 말했다. “지명 직후에 멀쩡히 타고 다니던 (춘천지방법원장) 관용차를 놔두고 버스로 상경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법관 출신 변호사가 거들었다.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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