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손자들 용돈도 휴대폰으로 척척”···열띤 학구열 속 어르신 IT교육
6년새 은행 영업점 4곳 중 1곳은 문 닫아···
우리·KB국민·신한 등 고령층 지원 나서
“스마트폰 화면에서 ‘삭제’를 누르고 휴지통에 보내면 30일 후에 완전히 삭제되는데, 지금 그 옆에 달린 버튼 하나 더 있죠. 거기서 삭제를 누르면 그럼 바로 완전히 지워지는 거예요. 그럼 다른 것들을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겠죠?”
지난 3일 서울 은평구 역촌노인복지관 ‘우리(WOORI) 어르신 정보기술(IT) 행복배움터’에서는 카카오톡, 웹서핑 등 스마트폰 기초 활용이 더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일상생활 기초반’ 첫 수업이 열렸다. 새 학기 개강날 교실에는 60~70대 어르신 16명이 열띤 학구열 속에서 스마트폰 활용 강의를 듣고 있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19일 역촌노인복지관에 WOORI 어르신 IT 행복배움터 1호점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키오스크나 모바일뱅킹 등 스마트 기기 활용법을 배울 수 있고, 가상현실(VR) 기기와 인공지능(AI)스피커를 설치해 최신 디지털 기술을 체험해볼 수도 있다.
이날 수업의 첫번째 과제는 ‘휴지통에서 파일을 지우기’였다. 스마트폰이 익숙한 사용자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 같지만, 이 역시 고령층에게는 배워야 할 내용이었다. 진영숙 강사(49)는 수강생들 사이를 누비면서 스마트폰에서 파일을 삭제하는 방법을 단계별로 설명했다. 진씨는 “스마트폰을 처음 배우는 어르신들께는 특히 불필요한 애플리케이션 삭제부터 가르쳐드린다. 지울 줄 잘 모르시다보니 용량 문제가 잦아 휴지통에 들어가 영구 삭제하는 방법을 알려드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수강생 최의자씨(75)는 “할아버지랑 할머니(부부끼리)만 사니까 내가 배워야겠구나 싶어서 나왔다”며 “앞으로 스마트폰을 쓰는 여러 기능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수강생들은 은행 업무를 스마트폰으로 처리할 수 있는 모바일뱅킹 이용 방법에 관심이 많았다. 이날 수강생들은 우리은행의 모바일앱 ‘우리WON뱅킹’을 설치하고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허영숙씨(78)는 “여기서 예금하고 이체하고 게임하는 방법도 배워서 써보니까 정서도 안정되고 치매예방도 되는것 같아 좋다”며 “여기서 배워서 손자들 용돈도 모바일 뱅킹으로 줘볼까 한다”고 말했다. 이유순씨(71)는 “오길 잘한 것 같다”면서 “평소 텔레뱅킹 정도만 할 줄 알았는데 앞으론 스마트폰으로도 은행일을 봐볼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영 역촌노인복지관 사회복지사는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한 디지털 교육을 받은 어르신들이 카페, 은행, 주민센터 등지에서 키오스크를 이용할 때 더는 당황하지 않고 편히 사용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차다”고 말했다.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IT 금융 교육이 중요해지는 것은 무엇보다 은행 영업점이 빠르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6년 2분기 전국 5200여곳이 넘던 은행 영업점은 지난해 2분기 4056곳으로 6년만에 25% 가량 감소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년층은 온라인 거래를 하다가 문제가 발생할 경우 즉시 문제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아직 오프라인에 의존하는 경향성이 높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뿐 아니라 다른 시중은행도 고령층 고객을 대상으로 금융접근성을 지원하는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이동식 영업점과 함께 은행원이 직접 찾아가거나 모바일뱅킹 활용 방법을 교육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고령층이 상대적으로 많이 거주하는 서울시 5개 자치구에 ‘KB 시니어 라운지’라는 차량을 보내 이동식 영업점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신한은행도 지난해 7월부터 영업점 내에 별도 데스크를 마련해 고령층 고객에게 모바일뱅킹 이용법을 안내하는 ‘디지털금융 老老(노노) 케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연령별 디지털 정보화 수준을 비교해보면 일반 국민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을 100으로 했을 때 70대에는 46 수준으로 떨어진다”며 “노인 정보격차 완화를 위한 산업계 전반의 노력이 계속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정혁 기자 kjh05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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