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주 전 대법원장 별세…향년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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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덕주 전 대법원장이 5일 별세했다.
김 전 대법원장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56년 제7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면서 법관의 길을 걸었다.
김 전 대법원장이 사법부 쇄신 과제를 안고 대법원장직에 올랐음에도 대법원의 사법개혁안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으로, 당시 대한변호사협회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변호사단체와 사법연수원생들도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한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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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덕주 전 대법원장이 5일 별세했다. 향년 90.
김 전 대법원장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56년 제7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면서 법관의 길을 걸었다. 춘천지방법원장, 서울민사지방법원장, 법원행정처 차장을 거쳐 1981~1986년 대법원 판사를 지냈다. 이후 변호사로 2년여간 활동하다 1988년 7월 노태우 정부에서 다시 대법관에 임명돼 1990년 11대 대법원장을 맡았다.
김 전 대법원장은 재직 중이던 1993년 9월 ‘3차 사법파동’과 부동산 투기 의혹이 겹치며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했다. 3차 사법파동은 박시환 전 대법관·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등 서울민사지법 소장판사 40명이 과거 군사정권에 휘둘렸던 사법부의 자기반성 및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 등을 주장하며 대법원장에게 ‘사법부 개혁에 관한 건의문’을 제출한 사건이다. 김 전 대법원장이 사법부 쇄신 과제를 안고 대법원장직에 올랐음에도 대법원의 사법개혁안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으로, 당시 대한변호사협회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변호사단체와 사법연수원생들도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한 목소리를 냈다.
이런 와중에 김 전 대법원장이 변호사로 일하는 동안 경기도 용인 등지에 3만여평이 넘는 토지를 사들이는 등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사실이 공직자 재산공개로 드러났다. 전관예우 논란이 함께 불거지면서 결국 김 대법원장은 1993년 9월10일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며 자진사퇴했다.
김 전 대법원장은 고시 동기들 사이에서 줄곧 선두를 달린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1979년 서울민사지법원장 재직 당시 박정희 정권과 갈등을 빚던 김영삼 신민당 총재에 대한 총재직무 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고, 1980년 법원행정처 차장 때 신군부의 체제 안정을 위한 사회정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전력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 전 대법원장의 장례는 법원장으로 거행될 예정이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꾸려졌다(6일 오전 11시 이후 17호실로 변경). 발인은 7일이며,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 가족으로는 사위인 성백현 서울중앙지법 원로법관이 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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