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된 가상화폐 제국 FTX 창업자, 왜 워싱턴이 술렁이나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2023. 1. 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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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한 세계 3대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가 기소되면서 미국 워싱턴이 술렁이고 있다. 그가 뿌린 ‘검은돈’이 정치권에 유입된 것으로 드러나서다.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가 2022년 12월13일 카리브해 바하마에서 체포됐다. ⓒAP Photo

세계 3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FTX를 일궈내 비상한 주목을 끈 샘 뱅크먼프리드(30)가 사기와 돈세탁, 불법 선거자금 공여 등 8가지 혐의로 최근 검찰에 기소되자 워싱턴이 술렁이고 있다. 그가 가상화폐 입법안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뿌린 거액의 ‘검은돈’이 다수의 공화당·민주당 의원들과 그 후원 조직에 유입됐기 때문이다. 사태가 터지자 자신의 이름이 노출된 대다수 의원들은 받은 돈 전액을 자선단체 등에 부랴부랴 기부하는 등 진화에 나섰고, 의회도 가상화폐 관련 입법에 그의 입김이 작용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바하마에서 체포돼 현재 미국 송환을 기다리고 있는 그가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중형이 불가피하다. 검찰 기소와 별도로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도 사기 혐의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태여서 유죄 확정 시 거액의 추징금을 내야 한다.

애당초 사람들의 관심은 뱅크먼프리드의 파산보호 신청과 전 세계 가상화폐 시장에 대한 충격 등에 쏠렸다. 그러다 8개 혐의 가운데 선거자금 위반 혐의가 포함되자 그가 정치권 로비를 위해 뿌린 ‘검은돈’의 실체와 규모로 관심이 옮아갔다. 그가 측근들과 함께 정치권에 뿌린 돈이 무려 수천만 달러에 달하기 때문이다. 검찰 기소장에 따르면 그는 2019년 FTX를 창업한 이후 2022년 11월 파산보호 신청 직전까지 고객 돈 수십억 달러를 불법으로 유용해 부동산을 사들이고 많은 정치인에게 기부했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설립한 헤지펀드 투자사 알라메다 리서치를 적극 이용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 기소장에는 그가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 헌금 규정을 위반한 사실을 적시했을 뿐 정치권의 누구에게 얼마나 돈을 뿌렸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혜택을 입었는지 등은 나와 있지 않다. 데이미언 윌리엄스 뉴욕 남부연방지검장은 지난 12월13일 “뱅크먼프리드가 고객들로부터 훔친 더러운 돈을 부자들의 헌금을 위장해 공화·민주 양당의 영향력을 돈으로 사고, 워싱턴 정가의 정책 방향에 영향을 주려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데 이용했다”라고 밝혔다.

실제 그런가? 미국 정치권의 선거자금 내역을 추적하는 비영리 연구조직 ‘오픈 시크릿(Open Secrets)’에 따르면 뱅크먼프리드는 2022년 11월 의회 중간선거 출마자들과 이들을 돕는 외곽 조직에 무려 3900만 달러(약 500억원)를 뿌린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한때 워싱턴 정가의 ‘총아’로 꼽힌 이유다. 연방선거관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개인은 해당 의원의 프라이머리(예비선거)와 총선거에 1년에 각각 2900달러씩 기부할 수 있다. 하지만 특정 후보와 연계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모금 활동을 할 수 있는 외곽 조직인 ‘슈퍼팩(Super PAC:미국의 억만장자들로 이루어진 민간 정치자금 단체)’은 기부 액수의 제한이 없다. 뱅크먼프리드의 거액 기부도 슈퍼팩을 통해 이뤄졌다.

문제는 돈을 준 사실이 아니라 돈을 준 방법이 관련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점이다. 검찰 기소장에 따르면 그는 기부 한도액을 피하기 위해 불법인 줄 알면서도 본인 실명이 아닌 차명으로 기부했다. 법으로 금지된 법인 명의 기부도 있었다. 구체적으로 그는 FTX 고객 돈을 빼내 알라메다 리서치에 예치한 뒤 다시 여기서 수천만 달러를 꺼내 호화 주택과 부동산을 사들이고 차명으로 정치인들에게 기부했다. 그러고도 그는 이 같은 사실을 알라메다 고객들에게 숨겼다. 연방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뱅크먼프리드가 FTX 고위 임원들과 함께 2022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공화 양당 의원들과 슈퍼팩에 뿌린 돈이 무려 7000만 달러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2022년 12월1일 데비 스테버나우 상원의원(왼쪽)과 존 부즈먼 상원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AFP PHOTO

가상화폐 거래 규제 입법이 더뎌진 까닭

오픈 시크릿에 따르면 지금까지 민주당 의원 50명과 공화당 의원 8명이 수혜자로 드러났다. 민주당에서는 차기 하원의장인 하킴 제프리스 의원, 영향력 있는 중진 조 맨친 상원의원이 도마 위에 올랐다. 공화당에서도 중진 빌 카시디 상원의원, 존 부즈먼 상원의원 등이 포함됐다. 뱅크먼프리드는 개별 의원에 대해선 법정 한도 내에서 기부했지만 슈퍼팩을 통해 상당액을 기부했다.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연관된 슈퍼팩 ‘하원 다수당 정치행동위원회’에 600만 달러를 냈다. 또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와 연계된 슈퍼팩인 ‘상원 지도부 펀드’에도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는 스스로 ‘우리 미래 보호(Protect Our Future)’라는 정치 후원 조직을 만들어 11월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후보들에게도 상당액을 지원했다. 뱅크먼프리드가 민주당을 집중 지원했다면 FTX 고위 임원들은 공화당을 겨냥했다. 이를테면 FTX 자회사인 FTX 디지털 마켓의 공동대표인 라이언 살라메는 11월 선거에 나선 공화당 후보들을 지원했다.

뱅크먼프리드가 정치권에 천문학적인 돈을 뿌린 목적은 분명하다. 의회에서 한창 손보고 있던 가상화폐 거래 입법을 업계에 유리한 방향으로 틀기 위해서다. 이와 관련해 특히 주목을 받는 의원이 그의 기부금을 받은 스테버나우 민주당 상원의원과 부즈먼 공화당 상원의원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두 의원은 가상화폐 업계에 유리한 것으로 보이는 입법안을 주도하면서 뱅크먼프리드와 긴밀히 작업해왔다”라고 보도했다. 그는 가상화폐 거래에 관한 감독 규제권을 서슬 퍼런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아닌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넘기도록 로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통화 업계는 미국 내 주식과 채권 감독기관인 SEC보다는 농산품 선물거래와 파생상품을 규제하는 CFTC를 선호해왔다. 실제 두 의원이 2022년 8월 발의한 법안에는 SEC가 아닌 CFTC가 감독권을 행사하도록 돼 있다. 소기의 목적을 거둔 셈이다.

하지만 FTX가 파산보호에 들어가고 그가 사기 혐의로 기소되면서 관련 법안이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상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인 민주당 셰로드 브라운 의원은 “해당 법안에 뱅크먼프리드와 우군들의 입김이 너무 크게 작용해 상당한 개정이 필요하다”라고 〈워싱턴포스트〉에 밝혔다. 이 법안이 설령 하원을 통과해도 상원에서 대폭 개정하겠다는 뜻이다. 정치권에선 FTX 몰락과 뱅크먼프리드의 기소를 기점으로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의회 차원의 규제 움직임이 가속화될지도 관심사다. 관련 입법이 더뎌진 것은 가상화폐 업계 인사들의 집중 로비 탓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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