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의 역설?...美 뉴욕·캘리포니아 전기료 급등 원인 살펴보니

정미하 기자 2023. 1. 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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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시장 구조는 크게 발전·송전·배전·판매 4단계로 이뤄진다. 한국은 2001년 이전까지 한국전력이 송전부터 판매까지 모두 독점했다. 2001년 이후 한전은 독점하고 있던 발전 설비를 6개의 발전 자회사와 소수의 민간 발전에 나눠줬지만, 한전은 여전히 송전·배전·판매를 담당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표준화된 전력 요금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처럼 발전·송전·배전·판매를 한 회사가 수직적으로 처리하는 구조를 유지했다. 한전처럼 국가 지분이 상당수인 기업이 아닌 민간 전력회사가 전력 4단계를 수행한다는 점만 달랐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전력 부문에 시장경쟁을 촉진한다면 전기료가 낮아질 것이라는 주장이 대두됐고, 1992년 전력 도매 시장에 경쟁을 도입하는 에너지 정책법이 통과되면서 전력 시장에 변화가 시작됐다.

결론은 어떨까. 일각의 주장대로 전력 시장에 경쟁이 도입된 이후 전기요금 인하 효과가 나타났을까. 뉴욕타임스(NYT)는 4일(현지 시각) “캘리포니아주, 뉴욕주, 텍사스주 등은 1990년대 전력 시장 규제를 완화하면서 ‘경쟁을 촉진하면 에너지를 보다 저렴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다”며 “하지만 전력의 발전, 송전, 판매를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분리한 35개 주의 평균 소매 전기요금은 규제를 완화하지 않은 15개 주의 요금보다 빠르게 상승했다”고 비판했다. NYT는 “일부 전문가는 에너지 가격이 높은 이유를 규제 완화에서 찾고 있다”며 예상과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꼬집었다.

지난달 30일 서울 도심 내 주거시설에 설치된 전기계량기의 모습. / 뉴스1

NYT에 따르면 전력의 발전, 송전 및 배전, 판매가 분리된 지역(이하 규제 완화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한 개의 기업이 전력의 발전부터 판매까지 담당하는 지역보다 전기요금을 월 40달러(약 5만원) 더 지불한다. 전기요금 데이터를 분석한 에너지 연구원인 로버트 맥코스는 “규제 완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전기료 차이가 이렇게 많이 난다는 것은 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알아봐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1992년 에너지 정책 법에 따라 발전 부문의 경쟁을 확대하고자 기존 전력회사가 송전 기능을 의무적으로 분리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각 주는 주 정부의 규제를 받는 수직 통합형 전력회사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 모델과 시장 기반 모델 중 하나를 선택했다. 시장 기반 모델은 규제 완화 지역에서 택한 것으로 가장 낮은 가격에서 생산되는 전기부터 우선적으로 판매되는 구조다.

텍사스주는 시장 기반 모델의 규제 완화 정책을 택한 대표적인 지방 정부다. 텍사스주는 1999년 당시 주지사였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시장 경쟁에 기반한 새로운 전력시장이 더 낮은 전기료를 가져다줄 것이라며 규제 완화 정책을 도입했다. 텍사스에는 200여 개의 업체가 전력 부분을 놓고 경쟁한다. 시민들은 전기 판매업체의 가격 조건을 보고 요금제를 선택한다.

NYT는 규제가 완화된 지역의 전기 요금이 높은 가장 큰 이유로 전력 발전 업체가 시설 설비에 투자하는 비용 상당 부분을 전기 요금에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NYT는 “주 정부와 연방 규제 당국은 개인이 기업에 지불하는 비용에 대한 최소한의 검토만 한다”며 “이에 비해 에너지 규제를 완화하지 않은 지역의 주 정부 관계자들은 (전력 발전 업체의) 지출 및 전기 요율을 훨씬 더 통제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주 일부 전력 발전 업체는 시설 설비 투자를 늘리면서 전기 요금 소매 가격을 인상했다. 캘리포니아주에는 1996년 전력 시장이 규제 완화된 이후 총 3개의 기업(퍼시픽 가스 앤 일렉트로닉, 사우스 켈리포니아 에디슨, 샌디에고 가스 앤 일렉트로닉)이 전기를 공급한다. 퍼시픽 가스 앤 일렉트로닉은 kWh(킬로와트시)당 32센트 또는 49센트에 전기를 공급하는 요금제를 갖추고 있다. 이 회사의 전기 요금은 전국 평균의 두 배 수준이다. 전기 요금이 비싼 이유는 전력선에 대한 지출이 높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가 극심한 가뭄을 겪으면서 퍼시픽 가스 앤 일렉트로닉스 장비가 나무와 덤불에 닿아 산불을 일으켰고, 이 회사는 안전 문제 개선을 위해 수십억 달러를 지출했다. 이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됐다는 것이다. 소비자 단체인 유틸리티 리폼 네트워크에 따르면 2006년 이후 소비자가 지불한 송전 비용은 411% 증가했다.

규제가 완화된 지역의 전기 요금이 높은 또 다른 이유는 전력 발전 비용이 많이 드는 에너지원을 기준으로 도매가격이 매겨지기 때문이다. NYT는 “도매 전기 가격은 종종 비용이 많이 드는 전력 공급원, 예를 들어 천연가스 발전소에 고정되기도 한다”며 “태양광 또는 풍력 발전처럼 저비용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업체도 더 비싼 공급업체와 동일한 보상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NYT는 “경쟁이 에너지 가격을 낮춰야 했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해야 하는 전력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일리노이주 상무위원회 의장을 지낸 그라이언 쉐아한은 “일리노이주처럼 규제가 완화된 주에서 전기요금이 더 많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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