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개꿀'을 없애지 않는 한 정치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김현재 2023. 1. 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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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에 휩싸인 국회의사당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현재 논설위원 = 연봉 1억5천만 원. 사무실 운영비·업무추진비·차량 유지비 등 지원금 별도 1억 원. 자신의 재량으로 뽑은 직원 7명에겐 국가공무원 최고의 처우 보장. 선거가 없는 해는 1억 5천만 원,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까지 후원금 모금. 이 정도면 거대기업 임원, 그것도 극소수의 사장급이나 부사장급이 받는 혜택이다. 대기업 임원들은 끊임없이 오너의 눈치를 살피며 실적에 따라 해마다 계약을 갱신하지만, 국회의원들은 당선되면 4년간 자신이 오너이자 회장이다. 재선, 3선 의원이라면 8년, 12년간 이런 혜택을 누린다.

돈은 그들의 권력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정부 부처·지자체 고위공무원들은 맘만 먹으면 언제든 불러내 호통치거나 달콤한 말로 어르며 매우 기교적으로 민원을 넣을 수 있다. 국감 때 기업 총수를 불러내서 윽박지르거나 아부성 발언을 하는 것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지능적인지 알 수 있다. 상임위 활동은 일반인이 파악하기 매우 힘들면서도 자신과 주변을 살찌우는 특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금전적 이해를 떠나(분명 금전적 이득을 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신을 그 분야의 정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도 하고, 이로 인해 명망과 영향력까지 얻게 된다. 이는 다음 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을 높여주고 향후 장관이나 기관장으로 갈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이뿐이 아니다. 불체포 특권, 면책 특권 등 일반인 같으면 당장 감옥에 가야 하는 범죄를 저질러도 짬짜미로 해결할 수 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야당 의원 탄압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된 이 특별한 권리가 민주화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욕심 많은 그분들은 동의하지 않을지 몰라도 돈과 명예, 권력까지 한꺼번에 거머쥐는 단 하나의 직업이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쳇말로 '개꿀'이 떨어지다 못해 넘쳐흐르는 그 자리가 어찌 욕심나지 않을 것인가.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라는 한 전직 의원의 자조성 탄식은 국회의원이 얼마나 좋은 자리였던지를 역설적으로 말해 준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김의겸 의원을 향해 "의원직 걸겠느냐"고 다그친 것은 꽤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어떤 국회의원이 열렬한 진영의 대변자이자 행동대장처럼 보인다면 그의 목표는 차기 총선 당선에 있다고 믿어도 좋다. 누군가 과도하게 대통령, 당 대표 등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에게 아부하고 입의 혀처럼 군다면 그가 내년 여의도 재입성을 그만큼 절실히 바라고 있다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말로는 공정과 상식을 말하면서 자신들의 특혜와 특권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은 교묘한 화법으로 반대하고, 증오로 증오를 불러 나라를 찢어놓고 국민을 편 갈라서 '상대 악마화'로 진영(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좇는 데 혈안이 된 이들이 넘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개꿀'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분들은 "(상대 당이 아닌) 우리를 돈이나 권력만을 탐해 정치하는 인간으로 싸잡아 욕하지 말라"고 성을 낼지도 모른다. 오로지 국가와 국민만 보고 평생을 살아온 사람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말이다. '세금 중 극히 일부를 가지고 뭘 그리 호들갑을 떠느냐', '많이 받으면 일도 더 잘하는 법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거지 같은 행색이면 좋겠냐'는 괴상한 논리를 들고나올 수도 있다. 마치 어떤 귀족풍의 독립운동가가 식민지 부역민들이 모아온 쌈짓돈으로 해외 망명지에서 호사스러운 생활을 누리면서 품위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좋다. 위에 열거한 혜택과 특권이 모두 없어진다 해도 당신들은 그 직을 계속할 것인가? 수많은 악성 댓글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아무 대가 없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소명감만으로 정치를 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당신들은 아마 "지금 세상에 어떤 정신 빠진 사람이…"라며 삿대질을 하는 대신, 대꾸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며 외면하고 말 것이다. 어디까지 없애자는 것이냐고 꼬치꼬치 캐묻는 이도 있을 것 같다.

선거구제 개편을 놓고 말들이 많다. 말이 많다기보다는 이해득실을 따지는 주판알 튕기기가 요란하다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개편돼도 당선에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개편이 되면 공천이 어려운 사람들의 싸움이 될 것이다. 중대선거구제가 된다 해도 현역 의원들은 결코 손해나는 장사를 할 사람들이 아니다. 지난 총선 때 양당제를 혁파하겠다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는 위성정당을 만들었던 그들의 위선을 생각해 보라. 개편 자체가 어렵겠지만, 된다 해도 무슨 꼼수를 생산해 낼지 자못 기대된다. 선거구제를 개편하고, 개헌을 한다고 지금의 이기적 정치가 바뀌기는 어렵다. 그보다 개꿀(별다른 노력 없이 얻는 큰 이익)부터 없애는 것이 진정한 개혁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정치로 밥 벌어 먹고 이득 보려는 사람들 대신 열정과 소명감으로 정치하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정치가 바로 설 수 있지 않겠는가. 자신의 목숨조차 가을 낙엽처럼 가볍게 여긴 안중근과 '대의에 죽는 것이 효(孝)'라며 아들의 죽음을 가슴 속에 파묻어 버린 조마리아를 가진 나라였으니 그런 정치인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부터 하지는 말자.

kn020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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