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만원짜리 화장실 '대박'…CES '슈퍼스타' 된 한국 청년 [긱스]
펫로스 증후군을 아시나요?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난 뒤 찾아오는 극도의 우울감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국내에서도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아끼는 '펫펨족'이 늘어나면서 이 용어가 자주 쓰이게 됐는데요. 공학자를 꿈꾸던 한 30대 청년 역시 펫로스를 겪으면서 펫테크 스타트업을 창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노태구 펄송 대표를 한경 긱스(Geeks)가 만났습니다.
"단순히 자동으로 작동되는 화장실이 끝이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겠죠."
그르렁...가르릉... 전국 211만 반려묘의 '집사'들이 가장 듣기 좋아하는 '골골송'이다. 반려동물 시장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반려동물산업 규모는 3조7694억원이었다. 2015년(1조8994억원)과 비교하면 6년 새 두 배 커졌다. 2027년에는 시장 규모가 6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펫테크 스타트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반려동물용 정수기나 급식기부터 훈련 앱, 코의 지문인 '비문'을 활용한 반려동물 신원 확인 기술을 가진 회사도 나왔다.
129만원짜리 '고양이 화장실'로 창업 6년차를 맞이한 스타트업이 있다. 이미 애묘인들 사이에선 입소문을 탔다. 36개 나라에 수출도 한다. 고양이용 자동 화장실 '라비봇'을 만든 펄송 이야기다. 사명도 골골송을 뜻하는 펄송(Purrsong)에서 따 왔다. 노태구 펄송 대표를 한경 긱스가 만났다.
'펫로스' 슬픔, 기술로 해결할 수 있을까
노 대표(사진)는 일본에서 기계공학과 재료공학을 전공했다. 원래 로봇공학자를 꿈꿨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준비도 하고 있었다.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면서 해군 장교로 군 복무를 시작했다.
어느날 퇴근길 관사 앞에서 '야옹' 소리가 들렸다. 평소 같았으면 '귀엽다'는 한 마디를 머릿속으로 중얼거리며 지나갔겠지만, 그날따라 느낌이 달랐다. 마치 고양이가 자기를 따라와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홀린듯 고양이를 따라갔다. 고양이는 발걸음을 내딛으면서도 그가 잘 오고 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는 듯 연신 뒤를 돌아봤다. 5분 남짓 지났을까, 관사 뒤편 길목의 빗물받이에 빠져 울고 있는 새끼 고양이를 발견했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구해달라며 노 대표에게 SOS 신호를 보낸 셈이었다.
이 때의 경험은 노 대표가 동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관사에서 1년 동안 몰래 크림색 고양이 '뽀송이'를 분양받아 키웠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데려오고 1년도 안 된 시점에 갑자기 아팠어요. 병원에 데려갔더니 FIP(고양이 전염성 복막염)래요. 이미 복수가 많이 차서 치료하기엔 늦었대요. 그렇게 아프고 2주 만에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죠. 그렇게 아이를 보내고 주변을 돌아보니, 저처럼 갑작스럽게 반려묘를 잃은 분이 많더라고요.
고양이는 강아지와는 다르게 아파도 티를 잘 안 내요. 천적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육식동물의 습성이거든요. 그래서 질병을 인지하고 병원에 갔을 땐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반려묘를 잃고 슬픔에 빠진 분들을 도와주고 싶었죠.'
공대생 출신인 그는 '기술'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전역을 앞둔 2016년 7월 창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CES에서 "슈퍼스타" 극찬
자동으로 작동하는 고양이용 화장실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가진 돈이 많지 않았던 노 대표는 일단 무작정 목공소에서 목재를 사서 프로토 타입을 만들기 시작했다. 외관은 직접 나무를 잘라 만들고, 내부는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3D 프린팅을 지원받아 제작했다. 만들고 보니 '이건 되겠다' 싶었다. 라비봇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반년 만인 2017년 초 법인을 세웠다.
그런데 왜 화장실이었을까. 그는 "화장실을 만든 건 보호자의 편의를 위해서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고양이의 배변 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데이터' 때문"이라며 "배변 활동 데이터를 쌓으면 내 고양이의 건강 상태를 진단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갑작스러운 배변 횟수 증가를 발견해 방광염 같은 질병을 조기에 찾아내거나, 고양이가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체중을 측정해 건강을 관리해주는 식이다. 또 배변 패턴이 불규칙해지는 점을 찾아내 고양이가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한다. 스마트폰 앱과 연동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고양이와 집사에게도 편안한 환경을 제공한다. 모래 높이를 배변활동 시 가장 선호하는 5cm로 유지되게 하고, 작동 소음은 도서관보다 조용한 30db 수준으로 낮췄다. 또 배설물을 자동으로 배변 봉투에 담아주고, 자동으로 모래가 보충되는 기능도 갖췄다.
완성된 라비봇은 꽤 흥행 중이다. 현대렌탈케어가 운영하는 커머스 플랫폼 현대큐밍에 입점해 월 4~5만원 수준에 구독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렌털이 아닌 구매를 위해선 129만원이란 다소 비싼 금액을 지불해야 함에도 벌써 7000여 대 이상이 애묘인들 사이에서 이용되고 있다. 2019, 2021, 2022년 등 세 차례나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인 CES에 초청받아 제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미국 테크저널은 CES에서 라비봇을 본 뒤 "전 세계 집사들의 슈퍼스타"라고 극찬했다.
찜질방서 쪽잠 잤던 시련도
물론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걷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련의 연속이었다. 창업 이듬해인 2018년이었다. 라비봇 1세대 제품을 대중에게 공개 후 크라우드펀딩을 받았고 흥행에 성공했다. 그런데 사달이 났다. 700여 대의 제품 중 80%가량이 불량으로 이어진 것이다. 결국 문제는 펀딩 참여자들의 집단소송으로 번졌다. 노 대표는 "당시 개발을 맡았던 인력은 문제를 내버려둔 채 회사를 떠났다"며 "어찌됐던 대표인 내가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었고 죄송할 따름이었다"고 말했다.
일일이 고객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한 고객을 평균 세 차례씩 방문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6개월간 2000번 넘게 피드백을 듣고 A/S 절차를 거쳤다. 당시 그의 생활은 노숙인과 다름없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잠은 찜질방에서 해결했다. 정말 시간이 없을 땐 몰고 다니던 '스파크'에서 몸을 웅크린 채 쪽잠을 잤다. 안경다리가 부러졌는데 고칠 여력이 없어 몇 주 동안 그대로 다니기도 했다.
"어느 겨울날 강원도 화천으로 A/S 방문을 한 적이 있어요. 밤늦게 끝났는데, 다음 일정이 충북 청주였죠. 차를 몰고 가는데 너무 졸음이 쏟아지는 거예요. 이러다 큰일나겠다 싶어서 잠시 졸음쉼터에서 눈을 붙였어요. 한 2시간쯤 지났을까요. 눈을 떴는데 온 세상이 하얗더라고요. 폭설이 온 거죠. 차 바퀴가 아예 굴러가지도 않을 정도였어요.
청주에 도착했을 땐 이미 약속시간을 두 시간이나 넘긴 뒤였어요. 당연히 고객님은 화가 나셨죠. 결국 '그냥 돌아가시라'는 한 마디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이 때 정말 '현타'가 왔어요. 잘못 만든 내 제품이 이런 결과를 낳았구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웠어요."
다행히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끝에 A/S 요청 건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안정세를 찾은 뒤엔 A/S 전담 직원을 뽑았다. 노 대표는 수천 건의 레퍼런스를 참고해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덕분에 지금까지 회사의 주력 제품으로 자리잡은 라비봇 2세대가 2020년 하반기 출시됐다. 그해엔 삼성전자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C랩' 아웃사이드에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엔 나스닥 상장사인 미국 반려동물용품 이커머스 플랫폼 '츄이닷컴'에 입점했다. 또 '아마존 재팬'과도 협업할 예정이다. 아마존의 AI 스피커인 '알렉사'와도 연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펄송은 2026년까지 국내 반려묘 시장의 35%를 차지하는 게 목표다. 압도적인 1위 사업자가 되겠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무대에선 미국 시장을 주 타깃으로 삼고 있다. 수출 비중도 미국이 제일 높다. 땅이 넓은 데다가 장기간 휴가를 가는 문화가 정착돼 있어 한국보다 30배 이상 반려묘 시장이 크다는 설명이다. 노 대표는 "10년 뒤엔 사물인터넷(IoT) 기반 종합 고양이 헬스케어 구독 플랫폼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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