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맨’ 할러데이, 사슴 군단의 명품 자물쇠
NBA 무대에서 주전 포인트 가드라고하면 리딩, 패싱능력에서 강점을 발휘하는 정통파이거나 아니면 득점력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유형이 대부분이다. 특히 최근에는 외곽슛과 돌파에 두루능한 준 에이스급 1번이 맹위를 떨치고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공격이 아닌 수비에서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며 팀을 이끄는 야전사령관의 존재가 바로 그것이다.
1990년대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게리 페이튼은 공격력도 빼어났지만 무엇보다 무지막지한 수비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포인트가드 최초 수비왕 타이틀 수상이 그의 디펜더로서의 존재감을 짐작하게 해준다. 입에 걸레를 물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독한 트래쉬 토크의 달인이었으며 파이널 무대서 마이클 조던을 전담마크 했을 정도로 악착같은 대인 마크를 자랑했다. 흡사 글러브로 공을 감싸듯 상대를 잡아버린다는 뜻에서 ‘글러브’라는 별명까지 붙었을 정도다.
밀워키 벅스 주전 포인트가드 즈루 할러데이(32‧191cm)는 마커스 스마트, 게리 페이튼 2세 등과 함께 현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가드 수비수 중 한명으로 불린다. 페이튼이 그랬던 것처럼 할러데이 역시 강력한 수비력으로 인해 '자물쇠'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한번 찍은 상대는 질식할 정도로 경기내내 묶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한 수비능력을 바탕으로 소속팀의 우승에도 공헌했으며 최근 4시즌 동안 올 디펜시브 퍼스트팀, 올 디펜시브 세컨드 팀에 2번씩 이름을 올렸다.
보통 밀워키에서 간판스타 야니스 아데토쿤보(28‧213cm)를 빼면 크리스 미들턴(31‧201cm)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데 할러데이의 존재감이나 공헌도 역시 그에 못지않다. 중요한 경기에서 할러데이가 상대 앞선의 활동량과 에너지 레벨을 확 다운시켜 놓아버리면 팀은 그만큼 경기를 풀어나가기가 수월해 질 수밖에 없다. ‘수비로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선수다’는 극찬이 따라붙는 이유다.
할러데이의 수비가 무서운 것은 지속적인 끈질김에 있다. 에너지가 넘치는 수비수의 경우 폭발적으로 따라붙으면서 상대를 락다운시키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파울이 남발되거나 본인이 지치는 경우도 적지않다. 할러데이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체력이 좋고 적절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조절하며 경기 내내 상대를 괴롭힌다.
그는 복서로 따지면 잽 싸움을 잘하는 아웃복서를 연상시킨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잽을 뻗어주는데 무조건 빠르고 많이만 날리는 것이 아닌 상대의 움직임을 보면서 거기에 맞춰서 반응한다. 거리와 위치를 바꿔가면서 툭툭 치다가 파고들려고하면 쓱 빠지고 상대의 움직임이 멈췄다싶으면 다시 잽을 던지며 신경을 자극한다. 그야말로 엄청나게 귀찮고 거슬리게하는 타입인데 화가나서 큰 주먹이라도 과감하게 날리려고하면 기다렸다는 듯 카운터로 맞불을 놓는다.
할러데이의 늪에 빠진 선수들은 처음에는 크게 인지하지 못한다. 조금 귀찮고 신경 쓰인다 정도인데 계속해서 따라붙으며 플레이에 지장을 주고 자신이 가려는 동선에서 기다렸다는 듯 손질을 해대면 그제서야 ‘잘못 걸렸구나’느끼게 된다. 보통 그러한 수비수를 떨쳐내는 기술로는 훼이크가 있다.
돌파할 듯 하다가 멈춰서서 미드레이지를 쏘고 평소같으면 슛을 던지는 타이밍에서 패스가 나간다. 자신은 살짝 훼이크를 주면서 수비수의 큰 동작을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플레이의 변화룰 준다. 그러나 할러데이를 상대로는 이마저도 쉽지않다. 뭐든지 적당히가 몸에 배인 그는 결정적인 상황이 아니면 움직임을 크게 가져가지않는다.
적당히 뜨고 적당히 휘두르고 적당히 움직인다. 타이밍을 빼앗겼다해도 다음 동작으로 전환하기가 빠른지라 쉽게 훼이크에 걸려들지않거나 대응이 용이한 이유다. 경기를 치르다보면 리듬이라는게 있다. 특히 경험많은 에이스급 플레이어들은 설사 당장은 좋지않아도 스스로 템포를 조절하면서 컨디션을 찾기도 한다.
할러데이의 수비에 걸리게되면 그런 플레이가 어려워진다. 무심한 듯 꾸준하게 적당한(?) 페이스로 압박을 유지하는지라 무엇인가를 재정비할 시간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 할러데이와 옥신각신 하다보면 어느새 상대 에이스의 몸은 이런저런 색깔의 데미지로 물들게되고 잔잔한 물결에 잠식되듯 컨디션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피닉스 선즈와의 파이널 당시 크리스 폴이 이러한 수비에 제대로 당한 바 있다. 당시 폴은 최절정의 컨디션을 자랑했고 시리즈 내내 나쁘지않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이 조금 달랐다. 폴은 경기가 거듭될수록 조금씩 다운되는 모습을 노출했는데 여기에는 지속적인 질식수비를 통해 ‘소리없는 암살자’로의 역할에 충실했던 할러데이의 영향이 컸다는 평가다.
공격수가 매치업 상대의 수비에 버거움을 느낄 경우 팀 수비의 도움을 받게되는데 그중 하나가 스크린이다. 동료의 스크린을 이용해 수비수를 따돌리거나 잠깐이라도 움직임을 묶어두고 그 사이에 공격을 성공시킨다. 문제는 할러데이는 스크린을 빠져나가는 움직임 또한 빼어나다는 사실이다.
스크린을 거는 상대팀 선수의 움직임을 미리 읽기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등을 지고 따라다니거나 좁은 틈을 자유롭게 오가기 일쑤다. 거기에 더해 힘이 워낙 좋은지라 다른 포지션 선수와 미스매치가 발생해도 몸 싸움으로 어느 정도 버티는 플레이가 가능하다. 일대일 수비, 팀수비에 더해 미스매치까지 견딜 수 있는 그야말로 토탈패키치 디펜더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할러데이가 공격에서 존재감이 없는 선수도 아니다. 현재 27경기에서 평균 18.4득점, 7.2어시스트, 5.1리바운드, 1.5스틸로 충분히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다. 수비력이 워낙 괴물같아서 그렇지 한팀의 주전 1번으로서 부족함없는 성적을 기록중이다. 할러데이가 올시즌 밀워키와 어디까지 함께 올라갈 수 있을지 주목해보자.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 사진_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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