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전투배치, 사격!…적 도발하면 반드시 수장"
대함·대공 실사격 훈련 및 헬기 이착함 등 임무 '완벽 수행'
(을지문덕함=뉴스1) 허고운 기자 = "전투배치, 전투배치"
4일 오후 태안반도 서방 약 80㎞ 거리 서해상을 항해 중인 해군 제2함대 기함인 3200톤급 구축함 '을지문덕함'(DDH-1) 승조원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승조원들은 순식간에 철모를 쓰고 구명조끼를 착용한 뒤 각자 임무 수행 위치에 섰다.
"4! 3! 2! 1! 사격!"
명령이 하달되자 을지문덕함의 127㎜ 함포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을 내뿜었다. 을지문덕함은 약 10㎞ 거리의 가상 함정 표적에 5발을 명중시켰다. 한 발 한 발 쏠 때마다 묵직한 진동이 배를 울렸으나 승조원들에게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을지문덕함을 뒤따르던 호위함 '경기함'(FFG-1·2500톤급)과 유도탄고속함 '홍시욱함'(PKG'450톤급), 신형고속정 제221호정(PKMR·230톤급)도 저마다 127㎜ 및 76㎜ 함포를 5발씩 발사해 표적을 명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대함 사격 뒤엔 대공 실사격 훈련이 이어졌다. '캐러밴' 표적예인기가 날아오자 함포는 대함 사격과 반대 방향으로 포구를 돌려 4발을 쐈다. 경기함과 홍시욱함에서도 4발씩 대공사격을 했고, 이 역시 명중했다.
이날 우리 해군함의 대공 사격은 최근 북한 무인기가 우리 영공을 침입한 사건이 발생한 터라 더욱 더 취재진의 관심을 모았다. 현장에 있던 장병들은 "먼 바다까지 무인기가 올 일이 많진 않겠지만, 우린 적을 탐지해 타격할 능력이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을지문덕함을 포함한 우리 해군 함정 다수엔 '골키퍼'라고 불리는 근접방어무기체계(CIWS)가 탑재돼 있다. 이 무기는 대함미사일, 항공기, 소형 수상정 등으로부터 함선을 지키는 '최종 수비수' 역할을 한다. 특히 이 무기는 초당 70발을 쏠 수 있어 무인기 격추에도 활용이 가능하다.
사격훈련 종료 뒤 을지문덕함 함장 김국환 대령은 함내 방송을 통해 승조원들에게 "필승의 의지 고양을 위한 해상훈련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여러분의 노고를 높이 치하한다"며 "오늘의 소중한 경험을 잊지 말고, 적이 도발하면 반드시 수장시킬 수 있도록 일전을 준비합시다"고 당부했다.
우리 해군의 올해 첫 해상기동훈련이 4일 동·서·남해 일대에서 일제히 진행됐다. 해군은 전방위 상시 대비태세 확립을 위해 매년 대규모 전대 해상훈련을 진행하지만 이를 언론에 공개한 건 2019년 이후 4년 만에 처음이다.
을지문덕함은 이날 오전 9시30분쯤 경기도 평택 소재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출항했다. 사격훈련 구역으로 이동하는 동안 함정 곳곳에서 만난 승조원들은 1월의 차가운 바람에도 누구 하나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으며 묵묵히 임무에 매진했다.
출항 뒤 약 1시간30분 정도가 지나자 함미의 비행갑판이 분주해졌다. 육지에서 출발한 AW-159 '와일드캣' 해상작전헬기가 곧 도착한다는 교신이 오면서다. 잠시 뒤 등장한 헬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착함지점에 내리며 조종사의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뒤이어 본격적인 해상 전술기동 훈련이 진행됐다. 을지문덕함과 전대를 이룬 경기함, 홍시욱함, 고속정은 일렬로 움직이다가도 교신에 맞춰 수시로 진형을 바꿨다. 때론 함정 간 수백m 거리까지 근접하기도 했다. 갑판 위에서 견시(見視·자세히 살핌) 임무를 수행하던 한 장병은 "보기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실제론 매우 어려운 기술"이라고 전했다.
함정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전투지휘소(CCC)도 분주했다. 이곳에선 함정의 레이더, 무기체계 운용 등을 총괄한다. 우리 해군의 각종 함정과 레이더로 탐지한 정보에다 타군이 공유해온 정보까지 포함하면 아군은 물론 북한·중국 선박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다고 한다.
함장 김 대령은 "우리 배는 2021년 말 성능 개량을 마치고 다시 임무에 투입됐다"며 "전투체계를 기존 외국산에서 국산으로 변경해 우리 상황에 맞는 임무를 더 잘 수행할 수 있고, 최신 선배열 예인 소나로 수중 표적 탐지·추적 성능도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이날 동해와 남해에서도 우리 해군의 실사격 훈련이 진행됐다. 동해 동방 해상에선 1함대 소속 신형 호위함(FFG-2·2800톤급) '동해함'과 '대구함'이 127㎜ 함포로, 유도탄고속함 '이병철함'(400톤급)이 76㎜ 함포로 대함 사격훈련을 했다. 대구함은 근접방어무기체계 60발을 이용한 대공사격도 했다.
또 남해 흑산도 서방 해상에선 3함대 소속 2500톤급 호위함 '광주함'이 127㎜ 함포를, 유도탄고속함 '김창학함'(450톤급)이 76㎜ 함포를 이용한 대함사격 훈련에 진행했다.
해군에 따르면 각 함대는 이날 실사격 훈련, 전술기동 등 해역별 작전환경과 주요 임무에 맞춘 고강도 실전 훈련을 했다. 이날 훈련엔 함정 13척, 항공기 4대 등의 전력과 약 1000명의 장병이 투입됐으며, 이종호 해군참모총장은 공중 지도에 임했다.
이 총장은 공군 제17전투비행단 청주공항에서 P-3C 해상초계기을 타고 이륙해 1함대가 훈련 중인 동해, 그리고 2함대가 훈련 중인 서해 상공에서 각 전대 지휘관들과 교신했다.
이 총장은 "끊임없는 훈련으로 적의 어떤 도발에도 단호하게 응징할 수 있는 확고한 대비태세를 확립해야 한다"며 "적이 도발하면 '쏴' 하고 쏠 수 있는 전투준비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총장은 "정신무장을 강화해 승리할 수 있는 대비태세를 갖춰야 한다"며 "새해 첫 훈련에 수고한 전 장병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새해 복 많이 받길 바란다"고도 말했다.
hg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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